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Jul 16. 2019

이태원 골목 속 오아시스 - TRVR

405번을 타고 한국의 친퀘테레 절벽 같은 구불구불한 이태원동길 사이를 달리며, 옛날부터 가보고 싶었던 카페 중 하나인 TRVR을 드디어 방문했다. 평소에 인스타에서 인테리어며 소품, 패키지 디자인까지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기대를 잔뜩 하면서 갔는데, 역시 실망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쁜 건물 색이라니. 사장님이 낡은 건물을 사셔서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도 고치셨다고 읽었는데, 필름 카메라에 그 따듯한 느낌이 잘 담긴다.

전체적으로 편안한 느낌의 인테리어 (나난님의 꽃다발이 한몫했다). 요즘 집을 새로 꾸미려고 가구를 이것저것 보고 있는데, 평소에 좋아하고 사고 싶어 하는 물건들은 많았지만, 이 모든 가구와 소품들을 조화롭게 배치한다는 게 이렇게 힘들지 몰랐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어딘가를 방문하면 평소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을 것들을 주위 깊게 보게 된다. 특히, 어느 한 곳도 튀지 않게 자연스러운 공간에 가면 유심히 관찰하게 되는데, TRVR 안은 해가 지면서 큰 창문으로 들어오는 금빛 햇살까지 편안하게 녹아들어 카페의 일부분이 되는 것 같아 빛이 가게 한 바퀴를 빙 둘러 나갈 때까지 그 따듯함과 가게의 모습을 담으려 계속 셔터를 눌렀다.

대학교 때 유럽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핫초코를 시키면 진짜 초콜릿을 녹여서 우유와 섞어주는 것이 너무 신기했었다 (지금은 한국도 대부분 그렇게 하지만). 겨울에 여행하면 아이스라테를 찾기도 힘들었는데 심지어 핫초코는 별로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 곳들이 많아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맛을 좋아한다.

TRVR의 글래스고 와일드 초콜릿은 3가지의 카카오를 블렌딩 하여 만들었다는데 달콤하면서, 진하고 쌉싸름한 카카오의 맛이 잘 잡혀있어서 한 모금 마시고 계속 입맛을 다시게 한다. 또 패키지가 너무 예뻐서 다 마신 후 깨끗이 씻어서 꽃을 꽂아두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TRVR 채용 공고가 인스타에 올라왔는데, 어떤 분께서 "턱수염도 조건인가요" 하고 물어보셨다길래 무슨 말일까 했는데 직원분들이 정말 다들 턱수염이 있으셨다. 취향이 비슷하신 분들일까.

TRVR의 건물 2층에는 직접 제작한 물건을 판매하는 스토어가 있는데, 캔버스, 가죽, 워크웨어 등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천국에 가까운 곳이다. 런던에 살 때 쇼디치에 가면 꼭 'Labour and Wait'이라는 다양한 가정용품, 문구, 빈티지 옷 등을 파는 편집샵에 방문했는데, 기본과 실용성에 충실하면서 평생 쓸 수 있는 멋진 제품들을 가득 채워놓은 곳들은, 요즘 같은 fast fashion 시대에 더욱더 그 가치가 특별해지는 보물 같다.*

*글 하단에 있는 웹사이트 링크와 인스타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해가 질 때 즈음 길을 걸어서 이태원역으로 내려갔다. 영화 기생충에 나온 것 같은 멋있는 저택들을 보면서 감탄하고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 일까 상상하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 필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게 하는 집들은 일층엔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벽돌 집들이겠지.


상호명: TRVR

주소: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 44가길 45 (이태원동 207-32)

영업시간: 화-금 9-21, 토-일 10-21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fe_trvr/

웹사이트: http://trvr.cc/

매거진의 이전글 현대미술관 폐관 시간, 문이 열리는 레스토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