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의 마지막을 담당하는 2019년이 저물어 간다. 단순 인기나 판매량 등으로만 정리하면 음원 강자들과 아이돌 음악들로만 수렴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한국 가요계의 양상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으므로 시대와 상황에 맞는 키워드를 선정하여 각 키워드 별로 2010년대를 정리하려 한다.
두 번째는 ‘힙합/알앤비의 주류화’이다. 1990년대의 ‘새로운 물결’이었던 힙합과 알앤비 장르는 트렌드의 바람을 타고 2010년대 초·중반의 중심 주제로 등장했다.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영향력을 부정할 수는 없겠으나, 이들의 약진은 쇼미더머니보다 훨씬 큰 파이와 내실을 형성했다. 비주류 감성을 표상하던 ‘힙합 전사’ 등의 수식어는 사라지고, 누구나 쉽고 편하게 힙합/알앤비 곡을 듣는 시대가 왔다. 2010년대 말에 이르러서 이게 트렌드 키워드라고 말하기가 살짝 민망할 만큼.
참고로 이 리뷰는 한국힙합이나 알앤비의 본질적 변화나 발전을 다루는 장르 탐구적인 글이 아니다. 힙합과 알앤비 음악이 대중음악의 주류로 올라서는 양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곡들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2010년대 힙합/알앤비’를 거론할 때 빠질 수 없는 “디 에닉도트 The Anecdote” 같은 음반이나 ‘엑스엑스엑스 XXX’ · ‘오프온오프 offonoff’ · ‘지바노프 jeebanoff’ · ‘키스 에이브 Keith Ape’ 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이다.
작사: 개리 / 작곡 · 편곡: 길
정규 7집 “AsuRa BalBalTa”(2011.08.25.)
2011년 발매된 정규 7집은 6집부터 시작된 ‘인디계와의 협업’ 기조를 유지 및 확장한 음반이다. 야한 암시를 잔뜩 품은 <TV를 껐네>를 선공개하며 이목을 끌었고, 다양한 뮤지션과의 협업으로 다채로운 작업물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회상> · <죽기 전까지 날아야 하는 새> · <격산타우> · <독기> 등이 나름 인기를 끌었다.
다채로운 구성 속에서 결국 눈에 띈 건 <나란 놈은 답은 너다>였다. <발레리노>와 <헤녀떠남>을 잇는 사랑 테마로, 피처링 참여한 하림의 다채로운 음악 세계를 온전히 포용하는 대신 보컬로서의 면모를 부각하며 대중성 확보에 주력했다. ‘리쌍’ 하면 떠오르는 어둡고 거친 음악이 사라져 아쉬워하는 의견도 많았으나, 차트와 언론이 여전히 리쌍을 찾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대중적인 성공 전략’에 맞춘 사랑 음악과의 접점을 찾다 보니, 피처링 참여한 하림은 보컬로만 남아야 했다. 하림의 기량과 음악 세계를 기대한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울 만한 트랙이었다.
세간의 말처럼 이들이 ‘비즈니스’ 관계였든 어쨌든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활동 중지를 맞았다. 온라인 탑골공원에서는 ‘엑스틴’과 ‘허니 패밀리’ 시절의 풋풋한 모습부터 ‘리쌍’의 전성기 시절까지 볼 수 있지만, 함께 선 둘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그리워하는 것도 힘들게 됐다. 그래서 ‘그 시절’의 이름이다. 그러게 음주운전을 왜 해서.
작사: 빈지노 / 작곡: 진보
미니 1집 “24 : 26”(2012.07.03.)
'빈지노'는 타고난 예술가이다. 재기발랄한 발상의 토대 위에서 낮은 톤으로 부드럽게 랩을 전개하며, 미술에 조예가 깊은 덕에 그의 가사에는 장면과 색채가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다.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플로우 설계를 통해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감각적인 이미지 묘사와 멜로디컬한 후렴부를 통해 스타일리시한 힙합 음악을 완성했다.
2000년대 후반의 ‘슈퍼루키’ 빈지노는 모두의 기대대로 성공했다. 피처링 참여한 <락스테디 Rocksteady>(에픽하이)에서 쫄깃한 랩을 선보였고, 재즈 힙합 그룹 ‘재지팩트’를 결성하여 “라이프스 라이크 Lifes Like”(<아까워> 수록)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솔직하면서도 젠틀한 태도는 이전까지 ‘힙합’의 이미지에 부여되던 [+강함]의 속성과 거리가 멀었고, 특유의 젊은 색채와 감각 덕분에 기존의 힙합과는 멀다고 인식되던 여성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대중과 빈지노가 가까워진 곡은 <나이키 슈즈 Nike Shoes>, <부기 온 앤 온 Boogie On & On>, 그리고 <아쿠아 맨 Aqua Man>이다. 특히 <아쿠아 맨>은 빈지노의 성공 요인이 집약된 곡이다. 사랑 노래로 대중적인 공감대를 높였지만 그 안에서도 ‘어장관리’를 주제로 선택해 신선도를 높였다. 매체 발달로 인해 (특히 젊은 층의) 문장이 간결해졌는데, 이러한 언어 습관을 잘 반영하고 구구절절을 피함으로써 젊은 감각의 청취층에게 인기를 끌었다. 뛰어난 장면 묘사와 유려한 전개, ‘헤엄’을 포인트로 설정하는 후렴부 구성 등은 빈지노의 음악뿐만 아니라 빈지노라는 사람에 대한 호감도까지 높였다. 2000년대까지의 힙합이 목적 지향적이었다면, 빈지노가 열어젖힌 음악은 뚜렷하고 감각적인 스타일 구축이 핵심이었다.
작사: 배치기 / 작곡: 랍티미스트, 이지호
정규 4집 Part.2 (2013.01.14.)
2005년 데뷔 후 ‘배치기’는 ‘붓다 베이비’ 및 ‘스나이퍼 사운드’의 일원으로 한동안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그 인기는 2000년대 말에 수그러들었다. <두 마리>(2012)와 <뜨래요>(2014)가 나름의 성과를 거두긴 했으나 <눈물샤워>(2013)의 흥행(가온차트 연간 2위, 멜론차트 연간 4위)을 설명할 정도는 아니다. 배치기라는 이름이 그렇게 힘이 세지도 않고, 음악적으로도 새롭지 않았기에 다소 ‘뜬금포’처럼 보였다. ‘뽕끼’ 가득한 멜로디와 아코디언 연주, ‘에일리’라는 믿음직한 보컬, 적당히 기술적인 랩 구성 등 익숙한 요소들로 배합된 이 곡은 일종의 복고 힙합이었다.
이유는 당시의 음악적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음악계는 ‘소녀시대’의 정규 4집과 “무한도전 – 박명수의 어떤가요” 등 강력한 팬덤을 등에 업은 전자 음악이 한 흐름을, 그리고 그 현상의 반작용으로 여겨지는 발라드 음악이 반대편 흐름을 형성해 두 시류가 충돌하고 있었다. <아이 갓 어 보이 I Got A Boy>(소녀시대)와 <강북멋쟁이>(정형돈)가 모든 차트의 상위권을 휩쓸었고, 그 아래에 <싫다>(백지영) · <되돌리다>(이승기) · <굿바이 투 로맨스>(써니힐) · <혼자라고 생각말기>(김보경) 등이 포진했다.
이 시기 힙합은 후자의 흐름을 따라 <눈물>(리쌍) · <시작이 좋아>(버벌진트) · <스페셜 걸>(인피니트 H) 등 서정적인 곡들이 흥행하고 있었다. <눈물샤워>는 바로 이 흐름을 타고 흥행했는데, 계절이 바뀌고 ‘조용필’ · ‘싸이’ · ‘다비치’ · ‘케이윌’ 등이 컴백하기 전까지 약 3개월 동안 이어졌다.
작사: 테디, 태양 / 작곡: 테디, 디피(Dee.P), 레베카 존슨(Rebecca Johnson)
정규 2집 “Rise”(2014.06.03.)
‘보컬 어필’ 승부수와 ‘대중성 확보’의 노림수
‘태양’의 행보는 팀 내에서 좀 독특했다. 솔로 활동을 제외하면 유독 전면에 나서는 일이 없었고, 예능 · 연기 · 사업 등으로 분야를 확장하지도 않았다. 조용하고 꾸준히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았고, 미국 흑인 음악의 본질적 탐구 및 재해석에 집중했다.
장르적인 탐구를 통해 찬사를 받았지만, 분명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멀어지는 부작용 또한 있었다. 따라서 와이지는 대중성 확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2014년 와이지에서는 <컴백홈>(투애니원) · <200%>(악뮤) · <공허해>(위너) · <헤픈엔딩>(에픽하이) · <나는 달라>(하이 수현) 등이 연이어 발표됐다. <눈, 코, 입>은 <200%> 다음 차례였다.
<나만 바라봐> · <웨딩드레스> · <웨얼 유 앳 Where U At> · <링가 링가> 등으로 이어지던 솔로 커리어에서 <눈, 코, 입>은 누가 봐도 흐름을 비튼 행보이다. 그럴 필요가 있었다. 보컬 · 랩 · 퍼포먼스를 모두 해내는 ‘전천후’ 유닛임을 증명했지만, 앞선 커리어와 비슷한 곡들만 계속 발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젠가는 큰 틀에서 흐름을 한 번 바꿔야 했고, 그 시기에 알앤비 보컬로서의 기량을 어필한다면 더 장기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언젠가는 던져야 할 승부수의 타이밍이, 와이지가 고수하던 대중성 확보의 타이밍과 절묘하게 맞아 들었다.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쏟아진 호평은 와이지 특유의 계산법이 (이런 방면으로는) 옳았음을 증명했다.
작사: 자이언티 / 작곡: 자이언티, 서원진, 전용준, 쿠시 / 편곡: 서원진
디지털 싱글 “양화대교”(2014.09.22.)
사실 ‘자이언티’는 ‘음원 강자 편’에서 다뤄도 될 만큼 음원 파워가 강하다. 데뷔 싱글인 <클릭 미 Click Me>(2011)는 별 반응을 얻지 못했으나, ‘프라이머리’ · ‘사이먼 도미닉’ 등의 음반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유명해진 뒤 발매한 <그냥> · <꺼내 먹어요> · <노 메이크 업 No Make Up> · <노래> 등이 연달아 성공하며 명실상부 ‘음원깡패’의 지위에 올랐다.
자이언티는 노래와 랩을 넘나들며 말하듯 노래하는 창법을 구사하는데, 초기에는 특유의 날카롭고 시니컬한 음색 때문에 감정이 담기기 힘들 것처럼 여겨졌다. 빈지노만큼 멜로디컬한 것도 아닌 듯하고, 로꼬만큼 선명하지도 않으며, 크러쉬만큼 감미롭지도 않다는 초기의 비판과 우려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자이언티는 <양화대교>를 통해 그러한 우려를 반박했다. 규모를 줄인 음악, 진솔한 가사, 스토리 텔링, 감수성이 어우러져 폭넓은 공감을 형성했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에서 아무도 문법적 오류를 지적하지 않듯, 자이언티의 보컬에 아무도 기술이나 성량을 논하지 않았다. ‘진심을 담을 줄 아는 가수’에게 대중은 귀와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자이언티가 담고자 하는 감성과 음악적 방향성은 더 큰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작사: 타블로 / 작곡: 타블로, 초이스 37 / 편곡: 초이스 37
정규 8집 “신발장”(2014.10.21.)
정규 8집으로 ‘에픽하이’는 그간의 혹평과 설왕설래를 말끔히 씻었다. 에픽하이가 그간 구축해왔던 폭넓은 감성을 보란 듯 되찾았고, 단순 말장난에 그치지 않는 의미심장한 펀치라인과 날카로운 메시지 전달을 통해 에픽하이의 저력을 증명했다.
<헤픈엔딩>은 대중이 갈구했던 ‘에픽하이스러운 감성’의 정점에 있다. 타블로의 자의식이 강하게 투영된 <스포일러>는 팬층에게 강하게 어필했고, 진입장벽을 낮춘 <헤픈엔딩>은 보다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묵직한 건반과 은은하게 펼쳐진 현악의 조화가 귀를 사로잡고, 지나온 세월과 감정을 함축해 읊조리는 ‘조원선’의 보컬이 에픽하이식 감성을 완성했다. 헤어짐을 세밀히 들여다보고 섬세하게 완성한 가사를 차분하지만 빈틈없는 랩으로 구현한 에픽하이는 이제 ‘노련하다’는 어휘가 잘 어울리는 그룹이 됐다.
2012년, 2014년, 2017년, 2019년.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여전히 대단한 ‘에픽하이’는 2010년대에도 꾸준히 ‘열일’했고 성공을 이어갔다. 그 대표적인 색채가 ‘에픽하이의 사랑 테마’이며, <연애소설>과 <술이 달다>가 이어 받은 테마의 정점에 <헤픈엔딩>이 있다.
작사: 사이먼 도미닉 / 작곡: 사이먼 도미닉, 그레이 / 편곡: 그레이
디지털 싱글 “사이먼 도미닉”(2015.08.12.)
‘혼자만 알던’ 곡이 모두의 ‘떼창’을 부르기까지
‘슈프림팀’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린 ‘사이먼 도미닉’의 솔로 컴백 곡 <사이먼 도미닉>은 낮고 묵직한 톤, 따라 부르기 쉬운 후렴부, 진솔한 자기 고백이 어우러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가수 본인의 이름이 제목과 후렴을 차지하고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낸 곡이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광경은 의미심장했다. 동료의 잘못을 감싸고 돌아서가 아니라, 미운 동생이지만 함께한 세월과 우정을 미처 저버릴 수 없다는 뉘앙스였기에 ‘기억할 건 내 이름과 이센스, 팀 포에버’의 가사는 설득력을 얻었다.
사실 이 곡은 셀프 리메이크이다. 원곡은 2008년 발매한 솔로 믹스테이프에 수록된 <보너스 트랙 (사이먼 사이먼)>이다. 2015년 버전보다 빠르고 날카로우며, 당시 쌈디의 하이톤 래핑과 화려한 랩 스킬로 인기를 끌었다. 이 버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2015년 버전의 <사이먼 도미닉>은 호불호가 갈렸다. 패기와 에너지 가득했던 곡이 완전히 바뀌었기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7년의 기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기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이먼 디-오-엠-아-엔-아-씨 오오’의 후렴을 많은 대중이 알게 된 것은 의의가 있었다.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서인지, 쌈디는 공연장에서 2008년 버전의 원곡 비트를 꺼내들곤 한다. <사이먼, 사이먼>과 <사이먼 도미닉> 사이의 행간은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한 또 다른 과정을 설명한다.
작사: 딘플루엔자
작곡 · 편곡: 딘플루엔자, 하이홉스(김미소, 이원석, 김한상, 김주선, 조대희)
디지털 싱글 “인스타그램”(2017.12.26.)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 달리 ‘딘’은 온도가 높은 음악을 했다. <히얼 앤 나우 Here & Now> · <아임 낫 쏘리 I’m Not Sorry> · <디 D> · <넘어와> 등에서 뿜어져 나오던 열기와 온기는 의외로 <인스타그램 instagram>에서 차갑게 식었다. 최소한의 온도마저 잃어버린 <인스타그램>은 얕게 읊조릴 힘만 남은 채 번아웃을 겪는 보통의 현대인들을 연상시킨다.
당연하게도 딘의 노래를 들으면 음색 · 분위기 · 감성에 집중하게 되지만, <인스타그램>은 유달리 특유의 철학적 사유가 돋보인다. 복잡해진 현대 사회의 정보 과잉 때문에 혼란을 겪고, 그리고 세상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는 사각 화면 속으로 침전하는 개인의 방황과 우울을 4분 남짓한 노래에 오롯이 담아냈다.
자신의 오랜 커리어를 보기 좋게 말끔히 정리한다든가, 자신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든가 하지 않으므로 딘의 행보가 눈에 아주 잘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딘은 어느 순간부터 음악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음악적 기반과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대중과의 급진적 타협 없이 자기 색을 고수하는 그의 음악 행보는 단순히 알앤비의 주류화에 편승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작사: 우원재, 로꼬, 그레이 / 작곡 · 편곡: 그레이
디지털 싱글 “시차 (We Are)”(2017.09.04.)
혹자의 말대로 전화위복인지는 모르겠으나, 우원재는 <시차>를 통해 “쇼미더머니 시즌 6”에서의 호평을 확장하고 혹평을 물리쳤다. <시차> 자체가 화려한 무대보다는 일상에 더 잘 어울린다는 의견, ‘그레이’의 프로듀싱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으며 대체로 합리적이다. 그러나 밝은 타입의 ‘로꼬’와 대비되는 우원재 특유의 어두운 가사가 이 곡의 핵심이자 완성이었다. 한쪽에서 섹스와 플렉스를 반복하며 진입 장벽을 쌓아 올릴 때, 반대편에 선 우원재는 생활 속 아이러니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이를 특유의 냉소와 독으로 풀어냈다. 동일하게 약속된 시간 계획을 상징하는 ‘강의실’에서 시작하는 랩은 경쟁 사회를 거부하며 ‘다른 시간 속의 삶’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너네와 달라서 우월하다’는 식의 스웨거가 아니라, ‘자기만의 꿈과 계획을 사는 삶’을 짚어낸 시각 또한 찬사를 더했다.
<시차>라는 역대급 트랙을 남겼지만, 우원재의 행보는 지금부터이다. 한껏 어두웠던 그의 캐릭터를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 기대치가 생기기 시작했다. ‘배신 않는 이름’이 되기 위해서는 더 증명해야 한다. 다행히 우원재에게는 <시차>를 함께 한 로꼬와 그레이, 소속사 ‘에이오엠지 AOMG’의 구성원들, 그리고 다른 많은 ‘정면교사’와 ‘반면교사’가 존재한다.
작사: 마미손 / 작곡: 마미손, 예요(이진호 · 옥재원) / 편곡: 예요(이진호 · 옥재원)
디지털 싱글 “소년점프”(2018.09.14.)
꽉꽉 채운 구성의 <별의 노래>로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싱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로 발라드까지 섭렵하며 시대적 조류를 읽는 시야를 입증했다. 약 1년 간 조용했던 ‘마미손’의 최근 열일이 반가운 이유는 <소년점프>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2010년대에 접한 음악들 중 개인적으로는 ‘전범선과 양반들’을 상회하는 충격을 받았더랬다.
복면과 불구덩이로 대표되는 강렬한 등장 한 방은 “쇼미더머니 777”이나 힙합계가 담을 수 없는 인재임을 직감케 했고, 노나먹기와 권모술수의 비좁은 판을 과감히 벗어나 자기만의 트렌드를 정착시켰다. 자전적 이야기를 ‘클리셰’로 설명하는 패기, 만화 감성 가득한 기승전결, 피처링의 참맛을 일깨운 ‘배기성’의 후렴과 그 음색을 믿고 설계한 록 편곡, B급 감성 가득한 뮤직비디오까지 모든 요소가 파격이다. 가사대로 ‘매우 거짓말’ 같은 조합을 과감히 밀어붙였다. ‘악당’으로 지목한 이들이 갖는 힘과 주목도를 전부 빨아들인 모습은, 특정 캐릭터를 흡입하면 그 캐릭터를 닮고 능력을 습득하는 ‘커비’를 연상케 한다.
<소년점프>는 단순한 ‘밈 meme’이나 트렌드 이상의 ‘통찰’이다. ‘한국 힙합 망해라’를 외치는 패기는 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1차적으로는 ‘사이다’ 발언의 청량감과 ‘똘끼’에 감탄했지만, 이제 대중은 그 사자후의 저변에 깔린 마미손의 통찰과 근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딱히 흠잡을 데가 없다. 기계를 이길 수 없다는 점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