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의 마지막인 2019년이 저물어 간다. 단순 인기나 판매량 등으로만 정리하면 음원 강자들과 아이돌 음악들로만 수렴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가요계의 양상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므로 시대와 상황에 맞는 키워드를 선정하여 각 키워드 별로 2010년대 가요계를 정리하려 한다.
네 번째는 ‘드라마/영화 삽입곡 열풍’이다. 이전에도 드라마/영화가 흥행하면 오에스티가 사랑받는 경우는 흔했지만, 2010년대에는 양질의 OST가 순차적으로 발표되며 음원 차트의 최상단을 점령하는 현상이 다수 발생한다. 때로는 작품의 후광을 받아, 때로는 작품보다 더 큰 이름이 되어 기억 속에 남은 OST들을 짚어 보기로 한다.
작사: 김종천 / 작곡: 김종천, 최철호
KBS2 드라마 "추노"(2010.01.06. ~ 2010.03.25.)
2010년대를 연 드라마. 고풍스런 귀족의 삶이나 존경받을 만한 전문 직업인들의 삶을 조명하던 기존의 사극 풍토를 비틀어, 가장 낮고 거친 이들의 이야기를 조명해 호평을 이끌었다. 퓨전 사극임에도 고증과 작품성에 대해 호평을 받은 몇 안 되는 작품. ‘이대길’ 역을 맡은 ‘장혁’과 ‘천지호’ 역의 ‘성동일’은 향후 연기 인생이 걱정될 만큼의 열연을 선보였다.
<낙인>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곡이다. 드라마 OST는 가수가 주도하지 않는 음악으로 ‘흥행 공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낙인>은 드라마의 거친 성격 · 흥행 공식에 맞춰 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임재범'의 음색에도 잘 어울려 호평을 얻었다. 따라서 <고해>와 <너를 위해> 이후 대중적 인지도가 낮아지던 임재범이 존재감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곡과 함께, 사극과는 상극으로 여겨졌던 힙합 장르의 <민초의 난>(MC 스나이퍼) 또한 호평을 얻었다. 한창 시기에도 재미없는 랩이라며 비판을 받았지만, 특유의 시적 가사와 낮은 목소리가 거칠고 투박한 분위기의 “추노”와 잘 어울렸다.
작사: 나나 / 작곡 · 편곡: 이관(13)
MBC 드라마 "개인의 취향"(2010.03.31. ~ 2010.05.20.)
발매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야 이 곡의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지만, <말도 안돼>는 발매 후 꽤 오랫동안 종합 차트 중상위, OST 차트 상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작사·작곡가들이 OST 전담이 아니라 윤하와 호흡을 맞춰봤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큰 위화감 없는 음악을 탄생시켰고, <오늘 헤어졌어요> 이후 윤하 특유의 밝은 분위기를 원하던 이들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었다. “개인의 취향”이 아주 거대한 인기를 끌지는 못했기에 이 곡의 임팩트가 그리 강하지는 않았지만, 꽤 오랫동안 사랑받은 트랙.
작사: 김형근 / 작곡 · 편곡: 서재하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2011.05.04. ~ 2011.06.23.)
2010년대의 마지막을 ‘동백이’로 마무리한 ‘공효진’, 2010년대 중반에 예능인 겸 요리사 이미지를 획득한 ‘차승원’의 케미가 돋보였던 ‘홍자매’ 특유의 가벼운 로맨틱코미디. 최고 시청률 21%(닐슨코리아 전국)를 기록할 정도로 쏠쏠하게 흥행했으며, 이에 힘입어 <두근두근>도 꽤 큰 인기를 누렸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도 노래는 들어봤을 정도로 여러 방송에서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였으며, 따라서 배경음악 퀴즈 등에서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곡은 ‘주비’ 홀로 불렀으나 ‘써니힐’로 가수 이름을 등록했는데, 이 전략이 성공하며 써니힐의 인지도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한 달 뒤 써니힐은 <미드나잇 서커스>를 발매하며 본격적으로 흥행하기 시작했다.
작사: 장경수 / 작곡: 함정필 / 원곡: 함중아와 양키스 / 편곡: 장기하와 얼굴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범죄 영화, 시대물, 그리고 강렬한 캐릭터 쇼가 잘 어우러져 호평받았다. <풍문으로 들었소> 또한 1980년대의 부산을 배경으로 둔 영화, 1980년대 히트곡,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모든 요소가 정확히 들어맞았다. 영화가 지닌 특유의 블랙 코미디스러운 분위기와 장기하와 얼굴들의 해학·풍자적 캐릭터 또한 잘 들어맞아 호평받았다. 음악 예능과 OST 등에서 각종 리메이크/커버가 넘쳐났던 2010년대의 음악계 전체로 놓고 보더라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수작이며, 각종 패러디를 양산하고 떼창을 유도할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곡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곡을 들으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는 점에서 이 곡은 성공이다.
작사: 개미 / 작곡: 개미, 이건영 / 편곡: 1601(정승현)
KBS2 드라마 "학교 2013"(2012.12.03. ~ 2013.01.28.)
“드림하이”(2011)를 잇는 KBS2의 학교/청소년 드라마이자 오래 전 “학교” 시리즈의 시즌 5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전 시즌의 인물이나 출연 배우가 재등장하는 등의 연관성은 발생하지 않았고, 직전 시즌과 10년 이상 차이가 나면서 실제 학교 현장도 크게 달라졌기에 아주 긴밀한 연관성을 띤다고 보기에는 힘들어졌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학교’를 보여주려던 초기의 제작 의도에 맞춰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보였다. 어른들이 생각하거나 바라는 이상적 학생상 구현과 단편적 선악 구도 대립을 탈피하고, 각 인물의 입체적인 캐릭터 구현에 집중하는 동시에 교권 하락과 기간제 교사 등의 현실적 문제를 다루어 꽤 호평을 받았다.
<혼자라고 생각 말기>는 부침을 겪던 모든 등장 인물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 같은 곡이었다. 외로움이 화두가 된 현대 사회에서 보편성과 공감을 획득하여 단박에 흥행했다. 이후 ‘위로’를 다루는 각종 텔레비전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날개>(윤화재인)와 함께 꾸준히 신청되는 등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작사: 전창엽 / 작곡 · 편곡: 진명용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3.12.18. ~ 2014.02.27.)
‘린’은 여전히 자기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삽입곡 <둘이 하나>(2010)를 시작으로 2010년대에만 드라마 OST 10곡 이상을 불렀기에 OST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시간을 거슬러>(해를 품은 달), <러브 Love>(너도 인간이니?), <러브 스토리 Love Story>(푸른 바다의 전설) 등 수많은 곡들이 흥행을 거두었지만 단연 대표는 “별에서 온 그대” 삽입곡인 <마이 데스티니>이다. 복잡한 배경을 지닌 등장인물들의 우연한 만남이 일으키는 화학 작용을 다룬 드라마에 어울리는 노래 제목, 드라마의 큰 줄기인 사랑 이야기를 충실히 담아낸 가사 내용, 그리고 몽환적이며 매력적이지만 지나치게 튀지 않아 극의 몰입을 이끄는 린의 목소리가 더해져 퀄리티 높은 주제가가 탄생했다.
“별그대”는 드라마의 작품성 못지 않게 오에스티의 완성도 또한 주목받았다. <마이 데스티니>를 <별처럼>(케이윌), <별에서 온 그대>(윤하), <안녕>, <오늘 같은 눈물이>(허각), <너의 모든 순간>(성시경) 등 질 좋은 곡들이 연이어 공개됐고, 제50회 백상예술대상 OST상과 제9회 서울드라마어워즈 한류드라마 주제가상 등 각종 상을 휩쓸며 그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언젠가 한 번 쯤 다시 정주행해봐도 좋을 드라마임은 분명하다.
작사 · 작곡: 심현보 / 편곡: 박민서
KBS2 드라마 "연애의 발견"(2014.08.18. ~ 2014.10.07.)
시종 연애하는 것이 한국 드라마의 특징이라지만, 그 와중에도 ‘잘 만든 멜로 드라마’는 있다. “연애의 발견”은 신선하고 젊은 감각의 연출, 솔직하면서도 현실적인 캐릭터, 등장인물 간 연애의 견해차 및 갈등 관계의 맥락을 잘 짚은 대사 등으로 단순 시청률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든 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현실의 삶에 가까운 인디 음악가들을 OST 작업에 대거 기용했다는 사실이다. <묘해, 너와>는 그 정점에 선 곡이다. “연애의 발견” 특유의 시선과 호흡을 잘 대변한 곡으로, ‘심현보’ 특유의 섬세한 가사와 ‘안다은’의 또랑한 음색이 시너지를 형성해 인기를 끌었다. 인디 밴드 ‘디에이드’가 ‘어쿠스틱 콜라보’였던 시기 <묘해 너와>와 <너무 보고싶어>라는 단일 드라마 내 두 OST에 참여했는데, 두 곡 모두 성공하며 인지도가 꽤 상승했다.
작사: 로꼬, 최재우 / 작곡 · 편곡: 미친기집애(김노을), 똘아이박(박현중), 피터팬(김한국)
SBS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2015.04.01. ~ 2015.05.21.)
“냄새를 보는 소녀”는 원작 웹툰 팬들의 지지를 끌지 못했고, 드라마 자체로도 평범한 완성도를 보여 기대만큼의 흥행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주연 하나는 향후 눈에 띄는 흥행작이 없고, 다른 하나는 범죄 사실로 아예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을 잃음으로서 뒷맛조차 씁쓸해졌다.
다만 “냄보소”는 OST 하나는 제대로 남겼다. 2012년 “쇼미더머니”로 등장한 래퍼와 인지도 없는 아이돌 멤버의 조합은 큰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로꼬’의 또렷한 랩과 ‘유주’의 감미롭고 또랑한 목소리는 청자들에게 제대로 어필했고, 계절적 배경까지 들어맞으며 단숨에 음원 차트에서 흥행했다. ‘여자친구’의 첫 히트곡인 <오늘부터 우리는>이 당해 7월에 발매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유주가 목소리만으로 대중에게 어필했음을 알 수 있다. 눈에 확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곡도 봄마다 역주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드라마는 사라지고 OST만 남은 전형적인 예시.
작사 · 작곡: 이영훈 / 원곡: 이문세 / 편곡: 필터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11.06. ~ 2016.01.16.)
개인적으로는 “응답하라 1994”를 더 좋아하지만, ‘응답하라’ 시리즈의 완성은 “응답하라 1988”이다. ‘남편 찾기 서사’를 다시 들고 나왔지만 이를 식상하지 않게 연출했고, 오래전의 문화 컨텐츠와 유행어 등을 다시 유행시켰다. 지상파 드라마들과의 대결에서도 압승을 거두고, 케이블 채널로는 깨기 힘들 시청률 기록을 세웠다. 무엇보다 전 세대에 고르게 어필하여 분절화되는 현대 사회의 문화 소비 양상을 역행하며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흐름은 OST로도 이어졌다. 작중 시대 배경에 맞는 곡들을 리메이크하는 것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통이지만, “응팔”의 OST들은 전작들과는 비교도 힘든 성공을 거두었다. <청춘>(김필), <걱정말아요 그대>(이적), <혜화동 (혹은 쌍문동)>(박보람) 등 대대적인 흥행을 거둔 곡들이 연이어 발표되었고, 종영 다음날인 2016년 1월 17일에는 음원 차트 20곡 중 7곡이 “응팔” OST로 채워지는 등 엄청난 인기를 증명했다.
앞서 언급한 <청춘> · <걱정말아요 그대> · <혜화동 (혹은 쌍문동)> 중 어느 곡을 선택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개인적인 기준을 적용했다. ‘이문세’가 아니면 살리기 힘들 것 같았던 감성을, 예상 외로 ‘오혁’이 살려낸 <소녀>의 가치가 가장 커 보였다.
작사: 로코베리, 지훈 / 작곡: 개미 / 편곡: 1601(정승현), 1601A(박태현)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02.24. ~ 2016.04.14.)
‘인간으로서의 미덕과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마음 속 진짜 영웅’을 다룬다는 기획 의도가 나름 충실히 반영된 드라마. 각 직업군에 대한 현실성은 가차없이 잘라냈지만, 이를 통해 적당한 비현실성과 극적 재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각 인물이 추구하는 내적 가치에 대해 고찰하고 이 가치관이 어떻게 충돌하는지에 대해 다룬, 철학적이고 묵직한 드라마이다. 삶과 사람에 대한 진지한 고찰, 적당한 판타지가 뼈대를 이루고 여러 장르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제시되어 지상파 드라마의 체면을 살렸다. ‘각 직업군(특히 군인!!)에 대한 현실성’을 잣대 삼고 싶으면 못 볼 드라마이지만, 심도 깊은 주제 의식과 극적 재미를 성공적으로 구현했고 작가 본인도 판타지라고 인정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잘 만든 드라마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편 '거미'는 “히트” 삽입곡인 <통증>과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삽입곡인 <그대라서>가 성공하며 시작된 OST 성공 신화를 2010년대에도 이어 나갔다. <죽어도 사랑해>(대물)를 시작으로 <눈꽃>(그 겨울, 바람이 분다), <낮과 밤>(주군의 태양) 등 2010년대에만 10곡 이상의 OST를 부르고 대부분을 히트시키며 그야말로 OST계의 정점으로 군림했다.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를>이 일종의 ‘보너스 트랙’으로 보일 만큼 <You Are My Everything>의 성공은 대단했다.
“응답하라”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태후” 열풍은 음원 차트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올웨이스 Always>(윤미래), <에브리타임 Everytime>(첸 X 펀치), <이 사랑>(다비치), <말해! 뭐해?>(케이윌), <사랑하자>(에스지 워너비) 등 대부분이 차트 상위권에 올라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작사: 김미진 / 작곡 · 편곡: 1601(정승현), 1601A(박태현)
tvN 드라마 "또 오해영"(2016.05.02. ~ 2016.06.28.)
“연애의 발견” 풍의 로맨틱코미디인 줄 알았지만, 의외로 복잡한 설정과 전개를 이어갔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흥행 이후 케이블 드라마의 흥행 척도가 지나치게 상승된 감이 있지만, 케이블 채널의 월화드라마로서는 나쁘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가수 출신임에도 ‘서현진’과 ‘에릭(문정혁)’은 드라마를 이끌 만큼의 연기 호흡을 선보였고, 주변 인물들에 대한 입체적 조명과 역할 분담이 깔끔했다.
이 드라마 또한 OST들이 꽤 흥행했다. <사르르>(와블), <꿈처럼>(벤), <사랑이 뭔데>(서현진 X 유승우) 등 적절히 맛깔난 곡들이 연이어 발표됐다. <너였다면>은 주인공의 감정선을 담당하는 곡으로, 드라마 팬들은 물론 음원 사용층의 호응을 이끌었다. 정식 데뷔를 하기 전인데도 OST로 쓰일 만큼 ‘정승환’의 목소리에는 일정 이상의 신뢰가 확보되었고, 정승환 또한 데뷔까지의 공백을 이 곡으로 지낼 수 있게 됨으로써 가수와 드라마가 윈윈한 결과물이 되었다.
작사: 이미나 / 작곡 · 편곡: 로코베리
tvN 드라마 "도깨비"(2016.12.02. ~ 2017.01.21.)
2010년대 OST 최고 흥행작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는 “태양의 후예”로 거대한 성공을 이룬 ‘김은숙’ 작가의 작품으로, 설화를 뼈대 삼아 제작한 도깨비 · 저승사자 · 인간 소녀의 이야기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삶과 운명에 대해 다각적으로 고찰하는 판타지였다.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는 여러모로 특이한 곡이다. 남성 인물의 심정을 다루는 곡을 여성 가수의 목소리로 채움으로서 미묘한 중성성을 획득했고, OST를 넘어 단일 음원으로서도 폭넓은 설득력을 획득했다. 특유의 덤덤하고 차분한 어조의 가사와 힘을 뺀 ‘에일리’의 목소리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었고, <보여줄게>로 대표되던 에일리 음악의 또다른 색깔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이렇게 찾은 미묘한 균형과 절묘한 조화가 크게 어필했고, 계절적 배경과도 맞아 떨어지면서 역사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2017년 연간 차트를 휩쓴 것은 물론, 국내 모든 음원 중 최초로 2억 스트리밍을 기록하는 등 웬만한 대형 가수들의 히트곡 이상의 성적을 OST가 거두었다. 녹음 당시 에일리의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았던 것이 천운이라고 해야 할까.
작사 · 작곡 · 편곡: 김현우 (어깨깡패)
SBS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2018.02.20. ~ 2018.04.24.)
공감대를 노린 소재와 ‘김선아’ · ‘감우성’ 두 배우의 연기로 호평받으며 시작했지만, 중반부터는 작가의 힘과 아이디어가 떨어진 모습이 드러나며 초기의 호평을 깎아 먹었다. 결국 별다른 전환점을 맞이하지 못했고, 화제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종영해야 했다.
이 드라마도 최대 성과는 OST였다. <비>로 인디 매니아 사이에서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던 ‘폴킴’은 <모든 날, 모든 순간>으로 “열린음악회”에 오르는 메이저 급 가수가 되었다. 아이돌 가수들의 연이은 커버로 인해 역주행을 맞이하긴 했지만, 폴킴은 곡을 해석하고 소화하는 능력과 매력적인 음색을 갖추고 있었다.
아주 강한 임팩트를 전달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은은함을 바탕으로 차트 장기 집권에 성공했으며, 세대와 장르별로 분화되는 차트에서 ‘보편적 대중가요’를 찾는 이들에게도 매력적으로 어필했다. OST로 이름을 알린 뒤 <너를 만나> · <초록빛> · <마음> 등 자기 음악으로도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작사: 박세준, 지훈 / 작곡 · 편곡: 밍지션(김민지)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2019.07.13. ~ 2019.09.01.)
‘거미’ · ‘폴킴’ · ‘헤이즈’ · ‘십센치’ · ‘펀치’ · ‘청하’ 등의 초호화 군단이 ‘아이유 목소리 없는 아이유 드라마 OST’를 다채롭게 꾸몄다. 그 중에서도 세 번째 주자로 나선 ‘태연’의 목소리가 꽤 돋보였다. 앞선 두 주자가 모두 남성 보컬이었다는 점, 태연 특유의 차분하고 절제된 창법이 <사계>를 통해 빛을 발한 후였다는 점 등이 맞물려 <그대라는 시>의 섬세한 감정 표현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데뷔 초기부터 <만약에>(쾌도 홍길동, 2008)를 통해 OST에서의 강점을 어필한 바 있기에 태연의 목소리로 채워진 OST는 최소한 실패할 이유를 찾기가 더 힘든 조합이었다. 2019년 발라드 열풍의 전형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분위기의 곡이었기에 보컬로서의 매력 어필이 더욱 성공적이었다.
작사 · 작곡: 로버트 로페즈(Robert Lopez), 크리스틴 앤더슨(Kristen Anderson-Lopez)
영화 "겨울왕국 Frozen"(2013)
디즈니 특유의 대규모 발라드 구조, 기승전결 뚜렷한 멜로디, 전자음을 최대한 배제한 오케스트레이션 위주의 편곡, 성량 좋은 보컬을 메인으로 투입하는 모습 등은 디즈니 영화의 핵심 전략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이 전략은 미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성공한 ‘흥행 공식’의 충실한 재현이었는데, 2019년 <스피치리스 Speechless>(알라딘)와 <인투 디 언노운 Into the Unknown>(겨울왕국 2)의 성공 또한 이러한 셈법의 재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이 곡들이 어딘가 살짝 모자라게 느껴진 것은 2013년 <렛 잇 고 Let It Go>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위에 언급된 곡들에 결함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렛 잇 고>는 저 성공 요인에 더해 ‘따라 부르기 쉬운 파트’까지 존재했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영어를 모르더라도 온 세상이 ‘레리꼬’ 열풍이었다. <스피치리스>는 가사가 많고 복잡해서, <인투 디 언노운>은 음이 너무 높아서 쉬이 따라 부르기 어렵다. <렛 잇 고> 덕분에 <스피치리스>와 <인투 디 언노운>의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면 비약일까.
작사 · 작곡: 다니엘 브리스부아(Danielle Brisebois), 닉 래실리(Nick Lashley), 닉 사우스우드(Nick Southwood), 그렉 알렉산더(Gregg Alexander)
영화 "비긴 어게인 Begin Again"(2013)
한국에서는 이따금씩 음악 영화가 의외의 흥행을 거두곤 했다. 우선 디즈니 영화들은 음악을 강력한 무기로 내세운다. 또한, 은은한 분위기를 유지하다 <폴링 슬로울리 Falling Slowly>를 통해 감정적 절정을 이룬 영화 “원스”, 영화의 주요 장면마다 뮤지컬 요소를 넣었던 “레미제라블”과 “라라랜드”, 무명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스타 이즈 본”까지 음악 영화들이 의외의 흥행을 거두는 일은 심심찮게 발생했다.
“비긴 어게인”은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다. 상영 초기 제대로 홍보도 되지 않았고 대형 한국 영화들보다 상영관 수도 적었으나, 꾸준하고 지속적인 입소문을 통해 역주행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국내 개봉 2달여 만에 전국 누적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주제곡 <로스트 스타즈 Lost Stars>의 인기는 더욱 오래 지속되었는데, 특히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애덤 르빈’ 버전의 경우 12개월 연속 월간 차트 80위권을 수성(가온차트 기준)하며 오랫동안 사랑받았고, 지금도 카페 등에서는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키이라 나이틀리’ 버전의 미니멀하고 잔잔한 분위기도 좋다.
작사 · 작곡: 태미 와이넷(Tammy Wynette), 빌리 셰릴(Billy Sherrill)
원곡: 태미 와이넷(Tammy Wynette)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프렌치 터치”라는 음반 제목 답게, 컨트리 넘버를 프렌치팝 특유의 부드럽고 세밀한 정서로 바꿔 놓았다. 올드 팝에 익숙한 사람들이야 단박에 리메이크인 것을 알았겠지만, ‘어디서 들어 본 곡’ 정도로 받아들인 이들 또한 많았다. ‘태미 와이넷’ 버전이 카랑카랑한 음색을 바탕으로 강하고 단단한 소리를 직선적으로 뽑아낸다면, ‘카를라 브루니’ 버전은 곡과 가사를 부드럽게 감싸 은은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시청자들에게는 ‘정해인’ 얼굴이 떠오를 곡이고,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잔잔한 분위기의 카페 혹은 음악 애플리케이션의 자동 추천 목록에서 이따금씩 접할 수 있는 곡.
작사 · 작곡: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고, 구조적인 허점이 많은데다, 이 모든 결점들을 맨 마지막의 ‘라이브 에이드’ 장면으로 상쇄시키려는 의도가 보였기에 영화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그럼에도 승부를 걸었던 마지막 장면의 고증이 뛰어났고, 1985년의 실황 음성을 가져다 쓴 덕에 콘서트를 보는 듯한 효과를 줌으로써 관객들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섰다. n차 관람과 ‘싱얼롱’ 열풍이 일었고, ‘퀸’의 오랜 명곡들이 음원 차트를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994만 관객을 동원하며 아쉽게 천만 문턱을 넘지 못했으나, 그 인기는 정말 뜨거웠다. 관객 몰아주기를 통해 천만을 꾸역꾸역 달성하는 영화들보다 훨씬 큰 지지를 얻었다. 방송, 카페, 길거리 등 많은 곳에서 퀸의 명곡들이 흘러나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985년의 ‘라이브 에이드’ 실황 영상이 MBC에서 재송출되고, 퀸의 전기 다큐멘터리가 지상파 곳곳에서 방영됐다. 아직도 아무도 정확한 뜻을 모르는, 온갖 장르와 다양한 언어가 섞인 독특한 구조의 노래가 발매 44년 만에 록이 유행하지도 않는 한국에서 대유행을 탈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