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보다 Dec 27. 2019

[2010년대 리뷰] 케이팝 음악과 아이돌


2010년대의 마지막인 2019년이 저물어 간다. 시기와 상황에 맞는 키워드를 선정하여 각 키워드 별로 2010년대 가요계 전체를 리뷰하려 한다.


일곱 번째는 ‘아이돌’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아이돌 음악이 대세를 이룬 한편, 아이돌의 과도한 양산과 그로 인한 생명 단축, 선정적인 마케팅 등 부정적인 논의 또한 활발해졌다. 정체기를 맞는 듯하던 아이돌 음악은 소셜 미디어와 동영상 사이트를 타고 ‘케이팝’이 되어 해외로 퍼져 나갔다. 다양한 장르적 시도를 통해 음악적인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전문화된 안무와 무대 구현을 통해 세계 음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매력적인 컨텐츠가 될 수 있었다.


아이돌 가수와 그 음악이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다만 아이돌이 너무 많으므로 모든 아이돌을 실을 수는 없었으니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비스트 Beast <비가 오는 날엔>

작사: 최규성 (블랙아이드필승), 용준형 / 작곡 · 편곡: 최규성 (블랙아이드필승)

디지털 싱글 "비가 오는 날엔"(2011.05.12.)


'큐브 엔터’를 책임졌던 남자 아이돌 그룹. 충분한 연차가 쌓인 후에는 ‘하이라이트’로 이름을 바꾸고 커리어를 새로 써야 했지만, 이들이 가요계에서 잊히기에는 너무 커진 뒤였다. 2010년에 <쇼크 Shock> · <숨> · <뷰티풀 Beautiful>로 활동해 입지를 굳힌 뒤 발표한 정규 1집은 선공개곡 <비가 오는 날엔>과 활동곡 <픽션 Fiction>으로 쌍끌이 흥행을 기록했다. 이 시기의 성공과 향후 기대치를 뒷받침할만한 후속 활동이 <아름다운 밤이야>와 <섀도우>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 점은 아쉽지만, 조직적인 팀워크와 탄탄한 멤버별 역량을 선보이며 남자 아이돌 최전선에 이름을 올릴 위치까지 올라갔다.


<미스터리> 또는 <쇼크> 등의 휘황찬란함 대신 감성과 음색을 선택한 <픽션>의 승부수는 보기 좋게 성공했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과거의 이름이 된 ‘비스트’를 지금까지도 되살리는 것은 <비가 오는 날엔>이다. 멤버들의 탄탄한 음악적 역량, 역할 배분, 곡 소화 능력 덕에 ‘발라드’라는 승부수를 띄울 수 있었고, 보기 좋게 적중했다. 비 오는 날의 감성을 잘 표현해 <우산>(에픽하이)과 <비도 오고 그래서>(헤이즈) 사이의 ‘장마 연금’으로 자리 잡았다. 구 비스트 현 하이라이트도, 작곡 팀 ‘블랙아이드필승’의 일원인 ‘최규성’도 대단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트랙.






티아라 T-ara <롤리폴리 Roly-Poly>

작사 · 작곡: 신사동호랭이, 최규성 (블랙아이드필승) / 편곡: 김진환

미니 2집 "존트라볼타 워너비"(2011.06.29.)


<티티엘 TTL> · <보핍보핍> · <너 때문에 미쳐> · <왜 이러니>로 주가를 올리던 ‘티아라’에게도, <핫이슈> · <뮤직>(이상 포미닛) · <미스터리> · <픽션>(비스트) · <보핍보핍>(티아라) · <체인지> · <버블팝>(현아) ·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아이유) 등으로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던 ‘신사동호랭이’에게도 전성기의 상징과 같은 곡. 한 달 전에 개봉한 영화 “써니”의 복고 열풍에 얹혀 갔다는 혐의를 벗지는 못했지만, 적절한 ‘뽕끼’가 품은 감칠맛 · 복고풍의 포인트 안무 · 잘 어울린 스타일링 등으로 점차 <롤리폴리>만의 독자적 성공을 일구기 시작했다. <야야야>라는 무리수와 오답을 즉시 극복하고 이룬 성과였기에 더욱 값졌다.


<롤리폴리>의 성공이 값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이름이 <롤리폴리>만큼 다시 빛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일한 작곡가 조합이 선보인 곡들만 나열해 보자. <롤리폴리>의 찬란한 성공 공식을 적절히 변주한 <러비더비>는 꽤 성공했으나, <섹시 러브> 때에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보였고, <넘버 나인>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티아라 입장에서는 (물론 외적인 논란이 가장 컸지만) 그룹 활동을 지탱할 수 있는 음악적 기량이나 프로듀서 선택에 대한 문제도 분명 존재했다. 신사동호랭이는 <위아래>(이엑스아이디) · <러브>(에이핑크) · <뿜뿜>(모모랜드) 등의 잭팟과 나머지 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 2011년을 상징하는 곡인 동시에 가수와 작곡가 모두의 커리어 하이인 곡. 물론 ‘블랙아이드필승’으로 잘나가고 있는 최규성은 예외다.






씨스타 Sistar <러빙유 Loving U>

작사: 이용환 · 박장근 · 함준석 (이단옆차기)

작곡: 이용환 · 챈슬러 (이단옆차기) / 편곡: 챈슬러 (이단옆차기)

여름 스페셜 1집 "Loving U"(2012.06.28.)


씨스타’는 데뷔 이후 시원한 가창력과 특유의 건강미를 앞세워 여름의 강자로 올라섰다. 14곡(유닛 포함)의 활동곡 중 무려 9곡을 6~8월 사이에 발표해 활동했다. 2010년 6월 데뷔 후 2012년 4월까지 ‘용감한 형제’의 곡으로만 6번 활동하면서 ‘용형’의 페르소나 이미지를 획득했고, 용형 특유의 전자음과 업템포 댄스는 씨스타의 상징이 됐다.


한껏 섹시미를 더한 <나혼자>를 선택한 것은 한편으로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웠다. 그보다 더한 압권은 2개월 만에 컴백한다는 것, 기존의 여름 이미지로 돌아간다는 것, 그리고 처음으로 용형이 아닌 다른 작곡가의 곡으로 활동한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러빙유>는 활동기였던 7월은 물론 8월에도 역주행하며 음악 방송 1위를 선사할 만큼 오랫동안 흥행했다. 그러나 단일 곡의 흥행보다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쳐 씨스타의 오랜 성공을 이끌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물이 오른 작곡 팀 ‘이단옆차기’의 곡들은 기존 ‘용형’의 색깔보다 한층 멜로디컬했고, 이게 씨스타와 잘 어울렸다. 덕분에 <기브 잇 투 미 Give It To Me> · <아이 스웨어 I Swear> · <셰이킷 Shake It> 등의 히트곡들을 연이어 작업할 수 있었는데, ‘용형’ 단일 프로듀서 체제를 유지했다면 이와 같은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샤이니 SHINee <셜록 Sherlock>

작사: 조윤경

작곡 · 편곡: 토마스 트롤슨(Thomas Troelsen), 루피오 샌딜랜즈(Rufio Sandilands), 로키 모리스(Rocky Morris), 토마스 에릭센(Thomas Eriksen)

미니 4집 "Sherlock"(2012.03.19.)


음반 단위의 완성도를 보면 정규 3집을 선택해야겠지만, 단일 임팩트는 <셜록>이 단연 앞선다. <셜록>은 그간 여성 팬층만을 타깃으로 삼던 ‘샤이니’ 특유의 청춘 만화 속 소년 이미지를 잊게 만드는 곡이었다. 긴박한 전개 · 강하게 지르는 보컬 · 체계적이고 복잡한 안무 등 지금까지의 샤이니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을 소화함으로써 각 멤버의 기량 향상을 증명하고 그룹의 활동 폭을 넓히는 계기로 작용했다. 향후 전개된 과감한 여러 시도들을 팬들과 대중이 납득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분명 <셜록>의 강렬한 한 방이 존재했다.


‘SM 엔터테인먼트’에도 호평이 이어졌다. 별개의 곡들을 섞어 하나의 곡을 만든다는 ‘하이브리드’ 전략 또한 발전된 모습을 보였고, <링딩동> · <루시퍼>로 매몰되지 않는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샤이니라는 ‘작품’을 기대케 했다. <셜록>은 샤이니에게도, 에스엠 엔터에도 새 장(場)과 같았다.






소녀시대 <아이 갓 어 보이 I Got a Boy>

작사: 유영진

작곡: 사라 룬드백(Sarah Lundbäck), 윌리엄 시미스터(William Simister), 앤 주디스 위크(Anne Judith Wik)

정규 4집 "I Got a Boy"(2013.01.01.)


<아이 갓 어 보이 I Got a Boy>는 '소녀시대'에게 언젠가는 꼭 필요했던 변화를 상징한다. <다시 만난 세계> · <소녀시대> · <키싱 유> · <지 Gee> · <소원을 말해봐>로 이어지던 시기가 지났고, 활동의 지속성 확보를 위해 컨셉 변화는 필연적이었다. 그래서 <런 데빌 런>부터는 ‘소녀’ 탈피와 ‘걸크러시’ 장착을 시도했고, 이는 <훗>과 <더 보이즈 The Boys>를 거쳐 <아이 갓 어 보이>에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 곡은 ‘에스엠 엔터’의 자부심과 강박 또한 그대로 나타낸다. 에스엠은 스스로가 씬의 리더라는 자부심, 항상 새로워야만 한다는 강박을 동시에 떠안고 있다. 이른바 ‘송캠프’ 시스템을 통해 외국 작곡가들에게 곡을 맡기고, 가요계에서 낯선 화음과 사운드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앞선 <셜록> 리뷰에서 지적한 하이브리드 시도가 이 곡에서는 훨씬 확장되었다. 좋든 싫든 ‘새롭고 낯선’ 것만은 분명했다.


아이돌 음악이 침체되던 시기에 이 곡만은 날아올랐다. 소녀시대 팬덤 ‘소원’의 화력을 여지없이 증명했고, 에스엠 특유의 강박증은 선구적 시도라는 자부심으로 보상받았다. 동시에 이 곡은 소녀시대 활동곡 중 가장 높은 진입 장벽을 쌓았다. 에스엠 특유의 ‘해체와 융합’ 기조가 너무 세밀해져서 대중이 알아채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수많은 것들을 실험하면서 왜 랩 스타일은 에스엠 특유의 그것을 고수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특유의 번역투와 구어체가 지적됐던 종전의 가사 문제가 더 심해졌다. 해외에서만큼의 호평이 국내에서 보이지 않은 이유는 한국과 한국인들이 음악적으로 뒤처져서라기보다는, 가사를 들은 한국어 모어 화자들이 느낄 당혹감을 비(非) 한국어 화자들이 몰라서가 아니었을까.






에이핑크 Apink <노노노 NoNoNo>

작사 · 작곡: 신사동호랭이, 쿠파(송진근) / 편곡: 신사동호랭이

미니 3집 "Secret Garden"(2013.07.05.)


귀를 사로잡는 리드미컬한 후렴부와 익숙한 전개의 전형성이 흥행을 이끌었다. <몰라요> · <마이 마이 My My> · <허쉬 Hush> 등 말랑하고 수줍은 청순 컨셉을 고수하던 ‘에이핑크’가 드디어 <노노노>로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을 연상케 하는 뉴잭스윙을 기반의 걸그룹 음악을 들고 나왔는데, 그간의 활동에 비추어도 특별한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으나 결과는 사뭇 달랐다.


원인은 시장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짧아지는 의상 ·과장된 몸짓 · 선정적인 가사에 지친 대중은 일종의 ‘건전한’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이때 에이핑크가 포착됐다. ‘제 살 깎아먹기’라는 비판까지 듣던 섹시 경쟁이 임계점에 도달하자, 익숙하기 그지 없던 청순 컨셉이 오히려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에이핑크가 <노노노> · <미스터 츄> · <러브> · <리멤버> 등으로 성공을 이어가자, 기획사들은 청순 컨셉의 신인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섹시 광풍이 몰아치던 걸그룹 시장이 언젠가는 바뀔 것으로 보였지만, 결정적 한 방은 <노노노>라는 작은 바람이었다.






엑소 EXO <으르렁 (Growl)>

작사: 서지음

작곡: 신혁, 김형규(DK), 조던 카일(Jordan Kyle), 존 메이저(John Major), 자라 라파예트 깁슨(Jarah Lafayette Gibson)

편곡: 신혁, 조던 카일(Jordan Kyle), 존 메이저(John Major)

정규 1집 리패키지 "XOXO (Kiss & Hug)"(2013.08.05.)


<마마> · <늑대와 미녀>는 팬덤을 쌓아올린 반면 분명한 진입 장벽이 존재했다. ‘엑소’의 성공 시기가 <늑대와 미녀>부터인지 <으르렁>부터인지 평이 갈리는 이유이다. 그러나 <으르렁>의 엄청난 흥행을 부정하거나 이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 아이돌 소비층의 케케묵은 논쟁인 ‘세대 구분 논쟁’에서 엑소와 <으르렁>은 어떤 세대로 편성되든 뚜렷한 기점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녀 앞에서 ‘검은 그림자’가 깨어난다는 대중적 내용과 무난한 전개, ‘으르렁’을 반복하는 후렴, 중독성을 유발하는 전자음 등의 요소들은 철저히 ‘대중화’에 초점을 맞춘 에스엠 기획의 성공이었다. 원테이크 형식을 차용한 뮤직비디오는 팀의 동력과 에너지를 선보였고, 독특한 화음의 후렴부는 에스엠 음악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늑대와 미녀> 퍼포먼스의 우수성을 역설해도 듣지 않던 대중을 돌려세운 건 <으르렁>의 대중성과 감칠맛이었다. 알게 모르게 청중이 에스엠 특유의 기획형 아이돌과 화음에 익숙해진 것도 한 몫 했고, 때마침 보이그룹 시장에 새얼굴이 필요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걸스데이 Girl’s Day <썸띵 Something>

작사: 이용환 · 박장근 (이단옆차기)

작곡: 이용환 · 챈슬러 (이단옆차기) / 편곡: 챈슬러 (이단옆차기)

미니 3집 “Every Day III”(2014.01.03.)


2010년대 초·중반은 섹시 경쟁이 임계치에 도달하던 시기였다. ‘원더걸스’ 이후 걸그룹을 양산하기 시작하던 기획사들은 ‘소녀시대’ · ‘투애니원’의 성공과 대형 기획사들의 기획력 및 기득권 앞에 고민한다. 돌파구는 섹시 컨셉이라고 판단한 기획사들은 이내 경쟁적인 섹스어필을 시작했고, ‘씨스타’ · ‘애프터스쿨’ · ‘시크릿’ · ‘스텔라’ · ‘라니아’ · ‘현아’ · ‘나인뮤지스’ · ‘헬로비너스’ · ‘에이오에이’ · ‘이엑스아이디’ 등 수많은 걸그룹들이 섹시 컨셉을 들고 나왔다.


깜찍 또는 발랄한 컨셉을 고수하던 ‘걸스데이’는 <반짝반짝>(2011) 외에는 성과가 없었다. 데뷔 3년만에 섹시 코드로 선회한 걸스데이는 멜빵 춤의 <기대해>를 앞세워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년 뒤 걸스데이는 고혹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썸띵>으로 어마어마한 흥행을 기록한다. 레트로 풍의 곡 구조와 보컬이 강조된 편곡, 그리고 <기대해> · <여자대통령>으로 형성된 예상과 기대를 벗어난 방향 설정이 맞물려 걸스데이의 대중적 성공을 낳았다. 섹시 컨셉으로 떴으나 곡이 잘 뽑혀서 기록적인 성공을 쟁취한 사례. 당시에는 ‘말은 많지만 여전히 섹시가 통한다.’는 사실의 증명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결론적으로 <단발머리>(에이오에이)와 더불어 섹시 컨셉으로 이룩한 사실상 마지막 히트곡이 되었다.






투애니원 2NE1 <컴백홈 Come Back Home>

작사: 테디 / 작곡 · 편곡: 테디, 최필강 · 디피 (퓨처 바운스)

정규 2집 "Crush"(2014.02.27.)


2009년 <파이어 Fire>로 데뷔한 후 한동안은 ‘진격의 투애니원’이었다. <캔트 노바디 Can’t Nobody> · <박수쳐> · <고 어웨이 Go Away> · <내가 제일 잘 나가> 등의 히트곡들에는 견고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가끔씩은 내밀한 감정들을 앞으로 내밀었고, 이색적이면서도 진한 그들만의 감성은 ‘또다른 투애니원’으로 대중에게 어필했다. <아파>를 시작으로 <론리 Lonely> · <어글리 Ugly> 등이 그랬다.


감당 못할 정도로 아티스트를 많이 보유한 것이 문제였을까. 팬과 대중의 요구와 달리 와이지는 투애니원에 미온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2014년에 시행한 대중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투애니원의 정규 2집이 발표됐으나 내용물은 부실했다. 예전만큼 기민하거나 참신한 움직임이 없었고, 프로듀싱 의존적인 투애니원은 테디 전담 체제의 한계를 보였다. 그 와중에도 <컴백홈 Come Back Home>은 힘을 받아 흥행했다. 보컬이 중심을 잡는 후렴부와 친숙한 멜로디가 대중과 친숙했고, 오랫동안 투애니원의 활동에 목말랐던 팬들의 열띤 호응이 더해졌다. ‘에프엑스’와 더불어 대형 기획사 수납의 상징이 되어버린 투애니원의 마지막 히트곡. 다만 곡 자체의 완성도는 오리지널보다 언플러그드 버전이 훨씬 깔끔하다.






여자친구 <시간을 달려서 (Rough)>

작사 · 작곡 · 편곡: 이기, 용배

미니 3집 "Snowflake"(2016.01.25.)


‘에이핑크’로 발원한 청순 컨셉의 유행을 본격적으로 확장한 것은 ‘여자친구’였다. 안타까운 무대 사고는 끈기 · 성실성 · 프로 의식의 상징이 되었고, 직캠으로 주목받은 <오늘부터 우리는>은 밝은 에너지 · 매력적인 후렴부 · 파워풀한 안무 등 음악적인 매력을 어필하며 역주행까지 도달했다. 다만 <유리구슬>과 <오늘부터 우리는>의 레퍼런스가 매우 유사했기에 이를 또 반복할 것인지, 후렴부에 비해 곡 자체의 구조가 아주 탄탄한 편은 아니었기에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았다. 그렇다고 그제야 ‘파워청순’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대중에게 너무 낯선 모습을 보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을 달려서>는 가장 효과적인 타개책이었다. 전작까지의 밝은 이미지와 달리 서정적인 분위기를 내세워 신선하게 접근한 동시에, 적절한 힘과 빠르기를 유지하여 특유의 힘 있는 안무와 잘 어울렸다. ‘유주’를 중심으로 한 보컬 분배 및 편성도 한층 발전했고, 몰아치는 현악과 강렬한 일렉기타 소리로 ‘파워’라는 그룹의 색깔을 유지했다. 각 절들 또한 음률의 오르내림과 감정적 기승전결을 통해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불필요한 외국어를 배제하고 순수 한국어로만 작성함으로써 정서적 깊이와 몰입감을 높였다. 중소 기획사 · 신인 걸그룹 · 주 전공(일렉트로니카)을 버린 프로듀서들이 이렇게나 빠르게 성장할 줄 누가 알았을까.






트와이스 Twice <치얼 업 Cheer Up>

작사: 샘 루이스(전기현) / 작곡 · 편곡: 라도 (블랙아이드필승)

미니 2집 "Page Two"(2016.04.25.)


청순 컨셉의 유행이 시작될 때, ‘트와이스’는 청순과 발랄의 한 끗 차이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증명했다. <우아하게>와 유사한 곡 구조 위에서 여러 장르를 섞어 변칙적인 흐름을 설계한 점, 고음과 중독성을 고려한 후렴을 통해 곡의 음악적 소비를 유도한 점, ‘친구를 만나느라 샤샤샤’ · ‘조르지마’ 등의 킬러 포인트를 심어 그룹의 캐릭터 어필을 노린 점 등이 고루 맞아떨어졌다. 혹자는 제이와이피 특유의 언론 플레이를 지적하고 일부 동의하지만, 제이와이피 소속 그룹들은 분명 회사의 이름에 가리지 않는 고유의 색채를 가졌다.


2010년대 초·중반 아이돌 음악의 여기저기에 ‘신사동호랭이’와 ‘이단옆차기’가 등장했던 모습을 ‘블랙아이드필승’이 이어가려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숨>(비스트) · <헬로>(허각) 등 장르적 제한을 받지 않았던 이들은 <터치 마이 바디>(씨스타)로 주목받기 시작한 뒤 <치얼 업>으로 스타 작곡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트와이스의 <티티 TT> · <라이키 Likey> · <팬시 Fancy> 등을 작업한 것은 물론, <내가 설렐 수 있게> · <1도 없어> · <%% (응응)>(이상 에이핑크) · <롤러 코스터> · <벌써 12시>(이상 청하) 등을 히트시키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마마무 Mamamoo <데칼코마니 Decalcomanie>

작사: 김도훈, 솔라 · 문별 · 화사 (마마무) / 작곡: 김도훈 / 편곡: 김도훈, 박우상, MGR(박용찬)

미니 4집 "Memory"(2016.11.07.)


안무와 캐릭터 어필에 집중하던 대부분의 아이돌과 달리, '마마무'는 아이돌 성향이 짙어진 ‘브라운아이드걸스’를 보듯 전통적인 보컬 그룹과 아이돌 걸그룹의 특성을 동시에 흡수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들은 ‘비글미’라 불리는 특유의 캐릭터성 또한 갖추고 있었다.


양자간에 미묘한 조율을 이어 오던 마마무는 <미스터 애매모호>와 <1cm의 자존심> 등에서 보인 재기발랄한 면모는 잠시 미뤄두고, <피아노 맨> · <넌 is 뭔들>에서 선보인 특유의 힘에 집중했다. 긴장을 유발하는 전개와 후렴부의 보컬 어필을 통해 곡의 구조적 완성도를 높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이 곡으로 ‘김도훈’의 프로듀싱 능력이 재증명되기도 했다.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에 그치지 않고 경쟁자들에 대한 우월성을 증명하려는 듯 마마무는 뛰어난 보컬 퍼포먼스를 이어 갔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 <별이 빛나는 밤> · <너나 해> · <윈드 플라워> · <고고베베> · <힙>으로 연이은 흥행을 기록했다. 제37회 청룡영화상에서 선보인 <데칼코마니> 무대는 마마무의 가창력, 센스, 당당한 면모, 그리고 ‘축하’에 걸맞은 태도가 단적으로 증명되며 호감도를 올린 훈훈한 장면이었다.






레드벨벳 <빨간 맛 (Red Flavor)>

작사: 켄지 / 작곡 · 편곡: 대니얼 시저(Daniel Caesar), 루드위그 린델(Ludwig Lindell)

여름 미니 1집 "The Red Summer"(2017.07.09.)


에스엠 엔터의 2010년대를 돌아볼 때, 음반은 ‘에프엑스’ 정규 2집 ”핑크 테이프 Pink Tape“가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송캠프 시스템, 장르적 확장, 새로운 컨셉 시도 등 놓친 것이 없는 명반이었다. 단일 음원으로 눈을 돌리면 <으르렁>(엑소)과 <빨간 맛>(레드벨벳)이 떠오른다. 남자 아이돌계에서 ‘방탄소년단’의 상승과 ‘워너원’의 출현 이전까지 ‘엑소’는 홀로 질주했는데, 이는 당연히 <으르렁> 덕분이었다.


<빨간 맛>은 ‘레드벨벳’이 이미 <아이스크림 케이크> · <덤덤> · <러시안 룰렛> · <루키> 등으로 성공을 거둔 뒤에 발표되었기에, <으르렁>과는 역할이 달랐다. 이 시기 레드벨벳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있었다. 첫째는 ‘레드’에 비해 지지도가 약한 ‘벨벳’ 컨셉의 대중 설득 방안이었다. 이 문제는 차후 <피카부>와 <배드 보이>를 통해 극복했다. 둘째는 독특한 화음과 통통 튀는 ‘레드’ 컨셉의 신선도 저하를 극복할 장기적 복안이었다.


<빨간 맛>은 두 번째 문제의 훌륭한 해결책이 되었다. 독특한 화음이나 반복적인 후렴부가 형서하던 일정 정도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대중성에 포커스를 맞췄다. ‘빨간 맛~’ 한 방으로 정리되는 압도적인 후렴부, 파격적으로 간소화한 사운드 위로 부각된 멤버들의 보컬과 리듬 악기, ‘여름’과 ‘빨간’ 색의 선명한 이미지를 교합한 훌륭한 컬러 마케팅 등이 시너지로 작용했다. 계절 음악 시장이 위축되는 사이 대다수의 청중이 잊어가던 ‘여름맛’을 훌륭히 살려 대중성을 획득했다. 레드 컨셉의 신선도를 억지로 유지하기보다는 대중적으로 친숙해지려는 전략이 들어맞았으며, 동시에 팬덤 경쟁이 치열한 아이돌 시장에서 다른 팬덤과 일반 대중까지 끌어들이는 성과를 거두었다.


 * 웬디 님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워너원 Wanna One <에너제틱 Engergetic>

작사: 후이 · 우석 (펜타곤) / 작곡: 후이 (펜타곤), 플로우 블로우 / 편곡: 플로우 블로우

미니 1집 "1×1=1(To Be One)"(2017.08.07.)


‘프로듀스 시리즈 조작 사건’이 2019년 후반을 강타하긴 했지만, 검찰에 따르면 데뷔 멤버들을 포함한 해당 프로그램 출연자들에게는 죄가 없다. 따라서 2010년대 후반의 화려했던 ‘워너원’의 기억과 영향력을 굳이 삭제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치밀하게 구성되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에너제틱>을 통해 멤버별 기량(고음 · 음색 · 안무 · 표정 등)을 효과적으로 부각하고, 고난이도의 퍼포먼스를 통해 성실한 신인의 자세와 팀워크를 증명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효과적으로 부각했고, 덕분에 대중적 설득력까지 갖췄다. 당대 남자 아이돌의 전형성 안에서 ‘프로듀스의 후광’ 외에는 새로울 것이 없을 것이라던 일각의 회의적 논조를 돌려놓을 정도의 퀄리티였다.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다만 워너원의 후속 활동들은 <에너제틱>을 넘은 적이 없다. 의도적으로 톤을 낮추고 대중성을 확보하려던 <뷰티풀>의 퀄리티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때부터는 대중보다 팬의 비중이 앞서기 시작했다. 열성적인 팬들이 <약속해요> · <켜줘> · <봄바람> 등을 차트 위로 착실히 배달했지만, 대부분의 곡들은 <에너제틱>이나 <뷰티풀>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실한 기획과 매니지먼트 · 각종 논란에 대한 무신경한 대처 등을 ‘부메랑’으로 맞았던 시간들을 논외로 하더라도, 워너원이 가장 찬란했던 순간은 <에너제틱>이었다.






청하 <롤러 코스터 Roller Coaster>

작사 · 작곡: 블랙아이드필승, 전군 / 편곡: 라도 (블랙아이드필승)

미니 2집 "Offset"(2018.01.17.)


청하’의 위치는 여러모로 독특하다. 아이돌 업계에 드문 솔로 가수이고, 팬덤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대중성을 갖췄으며, 실력을 갖춘 연습생들이 출연한 ‘프로듀스 101’ 안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춤 실력으로 주목받았다. 신드롬 성향이 강했던 ‘아이오아이’가 끝난 뒤 홀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와이 돈츄 노우 Why Don’t You Know>의 시원한 색감과 청량한 이미지는 프듀에서 청하 팬들이 그렸을 그림의 충실한 반영이었다. 캐릭터 구축은 물론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확보한 뒤에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했다.


<롤러 코스터 Roller Coaster>가 갖춘 익숙한 구조와 복고적인 멜로디는 청하의 대중성을 확장하는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김완선’ · ‘엄정화’ · ‘이효리’ 등의 선배들만큼의 원숙한 아우라를 뿜어내지는 않지만, 그들 혹은 그 이상을 기대케 하는 출중한 안무와 뛰어난 컨셉 소화 능력을 유감없이 선보이며 자신의 성장세를 입증했다. 게다가 앞선 선배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청하의 특장점인 ‘영롱한 음색’이 안정적으로 어필했고, 결국 퍼포머를 넘어 음원 강자의 지위까지 획득할 수 있었다. 한층 농염해진 <벌써 12시>의 성공은 <롤러 코스터>의 토대 위에서 완성되었다.






방탄소년단 <아이돌 IDOL>

작사 · 작곡: RM (방탄소년단), 방시혁, 피독(Pdogg), 슈프림보이(Supreme Boi), 알리 탐포시(Ali Tamposi), 로만 캄폴로(Roman Campolo)

정규 3집 리패키지 "Love Yourself 結 'Answer'"(2018.08.24.)


여기저기서 ‘방탄소년단’의 성공 신화를 쉼없이 다루고 있다. 단순히 ‘수선을 떤다’고 표현하기에는 작금의 성과가 매우 혁신적이긴 하다. BTS의 해외 인기와 인지도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지만, ‘21세기의 비틀즈’라는 칭호를 한국이 아닌 영국 현지에서 썼다는 사실은 분명 ‘단순한 특이 현상’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유명한 스포츠 칼럼의 제목을 빌려 표현하자면, ‘우리는 BTS의 시대에 살고 있다’.


<페이크 러브 Fake Love>가 진중해진 방탄소년단의 태도 변화를 나타내는 동시에 구조적 완결성을 획득했다면, <아이돌 Idol> 방탄소년단과 케이팝 음악의 현재를 상징한다. ‘예술가든 아이돌이든 그 어떤 정의에서도 우리는 자유롭다’는 식의 태도, ‘You can’t stop me lovin’ myself’의 후렴부는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의 핵심 주제인 ‘자기애’의 직설적 표출이다. 자유분방함과 질서를 동시에 갖춘 안무, 세계의 여러 장르를 섞은 독특한 시도는 세계 속에서 케이팝 음악이 소비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뚜렷한 주제 의식은 방탄소년단의 성공 요인이며, 특정 국적이나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독특한 정체성은 케이팝 음악의 성공 요인이다.


지콤 음악과 라틴 팝 위에 흐르는 ‘덩기덕쿵더러러’는 꽤 이채롭다. 지금까지도 많은 한국 언론은 ‘세계 속의 한국’을 거론하며 ‘국위 선양’ 등의 어휘를 선택한다. 이런 낡은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케이팝 음악의 성공 요인 중 하나인 무국적적 지향을 나타내거나, 혹은 국적·성별·인종 등의 계층 구분을 탈피하려는 현 세대의 사고 방식을 반영했다고 보는 편이 옳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2010년대 리뷰] 인디 음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