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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고돈쓰고 Sep 11. 2022

비브라토, 잘만 할 수 있다면


무려 한 시간이나 손가락 관절과 씨름했다. 앉았다 일어서는 무릎관절도 아니고 단지 앉은 상태에서 엄지를 뺀 나머지 네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였을 뿐이데 등허리에서 땀기운이 났다. 굳은 관절을 말랑말랑 풀어야만 한다. 기술을 익힌다는 게 불에 달구어 익힌다는 거였나, 어느새 선선해진 가을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방안은 후끈해졌다. 비브라토가 뭐길래. 덩크슛, 한번 할 수 있다면~ 이승환의 노래가 떠올랐다. 나도 한번 주문을 외워볼까.


야발라바히기야 모하이마모 하일루라~~


마음이 급해졌다. 유튜브에서 취미 바이올린 5년 차인 직장인의 유연한 손놀림에 못이겨 애절하게 울어대는 바이올린을 보고 나는 그야말로 화들짝 놀랬다. 5년 차 맞아? 두 배나 연차가 높은 나로서는 당연했다. 학교로 따지자면 입학하기도 전의 후배인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실력도 연차순이 아닌 걸까. 확실한 건 나이순으로 관절이 굳는다는 게다. 물렁한 관절만이 살길인데.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도 안 하는 그냥 방구석 취미생일 뿐이라는 것에 탓을 돌리기엔 너무 옹색하다. 이 우물 안 개구리에게 유튜브는 우물 밖 세상이었다. 급기야 십 분씩 했던 비브라토 연습을 우물 밖 스케일급으로 한 시간이나 늘렸다. 비브라토는 얼굴에 바르는 화장 같다. 생얼이 순수해 보일진 몰라도 세련미는 없듯 생소리에 울림을 더해야 듣는 이에게 분내 나는 감성을 전달하는 법이다. 요즘엔 초딩도 화장한다던데 십대에 들어선 나의 바이올린 선율에 이젠 분칠 좀 해야겠다.


이제껏 바이올린을 상수로 대했던 내 마음은 돌이켜보니 변수였다. 옛 현악부 동문들이 부추겨 나이들었어도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옛 추억도 쏠쏠하고 지판을 누르는 손가락이 제법 섬세해 보이기도 하면서 재미를 붙이다가 어느새 나의 취미1호로 등극하였다. 혼자 심심하면 찬송가나 동요를 끄적이며 킬링타임을 위한 장난감도 되었다. 한발 한발 내딛다 보니 이미 출발점에서 멀어졌고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밑천으로 비발디나 모짜르트를 만나게 되면서 내 인생의 반려 악기로 삼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는 더 큰 그림으로 나를 다독였다. 바로 노후대책... 당시 '1만 시간의 법칙'에 관련된 책을 읽은 터라 바로 바이올린에 적용하였다. 하루 3시간씩 10년을 연습하면 무엇을 하든 아마추어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한 해 두해 갈수록 배우는 자세는 진지해지면서 취미를 넘어 특기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바이올린 켜는 노인이라...


노후에는 얼마나 시간이 남아돌까. 얼마나 무료할까.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일상도 쪼그라들 때면 분연히 일어나 바이올린을 켠다. 눈이 침침하다면 외워서라도 연주한다. 순간의 즉흥적인 감성을 날것인 말이나 몸짓 말고 악기를 통해 발산한다. 젊었을 적 연습하느라 틈틈이 투자한 시간을 자기만족이라는 이자를 붙여 되돌려 받는 순간이다. 이렇게 결이 다른 시간을 보내며 무료함도 달래고 외로움도 날린다. 투자는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바이올린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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