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나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이제 막 40대로 들어선 나는, 나라는 사람으로 살면서 인생의 중반에 들어선 이제야 나의 몸과 마음, 생각이 좀 편안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전까지는 '나'를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크고작은 트라우마로 힘들어하기도 했고, 나는 어떤 모습이어야할지 알 수 없었으며, 사실 많은 순간 내가 부끄럽고, 다른이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에 자신이 없었다.
다른이들도 나처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을 하면서 이렇게 자신의 본 모습, 스스로에게 편안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타고난 성이 자신이 생각하는 자아상과 맞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그런 이들은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서 타고난 성을 자신이 원하는 성으로 바꾼다고도 한다. 오늘은 그 과정을 담은 책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바로 트랜스젠더 모델 먼로 버그도프의 '젠더를 바꾼다는 것(Transitional)'이라는 책이다. 처음에는 트랜스젠더 모델의 이야기라고 해서 호기심에서 읽게 되었다. 어떤 이유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자 했을까,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일가 등등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 책은 단순히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었다. 흑인이면서 남성이었다가 여성으로 살게된 그녀는 백인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흑인으로서, 그리고 성적소수자로서 느끼는 사회 속의 뿌리깊은 차별을 책 속에 녹여낸 것이다.
책을 들여다보면, '사춘기'라는 챕터와 함께 저자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면서 시작한다. 영국 태생인 저자는 흑인 아빠와 백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다. 그녀의 가족이 살았던 공동체는 평화로워보이지만, 백인들이 주류인 곳으로 흑인인 그녀는 늘 왠지모르게 감시받는 느낌을 느꼈다고 한다. 그녀는 집에서 온갖 곤충과 동물을 기를만큼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지만, 남자로 태어났음에도 '너무 여자같아 보이는'면 때문에 친구관계에서 어려움을 많은 겪었던 것 같다. 이렇게 그녀가 살았던 공동체에서도, 또래관계에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던 그녀는 그때부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받아주는 공동체를, 그녀가 닮아가고픈 롤모델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이전까지는 미디어에서 이성애이야기만을 다루었다면 점차 시대가 변하면서 동성애 이야기도 미디어에서 다루게 되었다는데, 1999년 저자가 12살일때 TV에서 동성애를 주제로한 '퀴어 애스 폭크(Queer as Folk)'를 방영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성적소수자의 문화에 호기심반 관심이 있었던 나는 대학생 때 어렴풋이 그 드라마를 본 기억이 난다.
아직 트랜스젠더가 드물었던 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그녀는, 어린시절 남자를 좋아하는 자신을 '게이'라고 생각해왔다고 한다. 대학생이 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게이문화를 경험하고, 또한 그러는 와중에 트랜스젠더들을 만나게 되면서 점차 자신도 그들중 한명임을 깨달아갔던 것 같다. 그녀는 영국에서 살았지만 우리는 비슷한 시대의 흐름을 탔던 것 같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2000년대 초반 무렵에 한국에도 '하리수'씨가 등장하고 그러면서 한창 트랜스젠더가 이슈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전에는 그저 자신의 타고난 성을 바꾼다는 것에 대해 '그럴수도 있구나'하면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면 지금은 당시에 그녀가 얼마나 대범한 선택을 했었는지,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사회적인 편견과 시선, 사람들의 가시돋힌 말에 시달렸을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읽으며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자신의 모습이 사회에서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적었던 그녀는 끊임없이 자기혐오에 시달리고, 자해를 했으며, 그녀와 비슷한 생각으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하고 또한 그것을 실행에 옮긴 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내가 트랜스젠더의 마음을 전부 이해할수는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치심'이나 자기혐오'는 내게도 익숙한 감정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는데, 아마도 여성으로 살면서, 자라오면서 은연중에 사회에서 수치심을 심어주고 강요했던게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저자가 흑인이기도 하지만 여성으로서도 느꼈던 사회 속에서 차별받은 이야기들은 나도 깊은 공감이 되었고, 그래서 이 책을 단순히 성정체성에 관한 것이 아닌,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대단한 것은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유려한 글솜씨로 문자화했다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사회속의 인종과 여성차별에 대항해서 목소리를 내면서 공론화하고 사회를 바꿔나가는데 기여를 하고있다는 점이다. 대다수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반기를 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에게 알려짐으로 해서 살해나 강간 협박을 받고 미디어 속에서나 밖에서 그녀를 향하는 수많은 날카로운 말들을 감내해야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그녀가 여장부라서, 그런 것을 덤덤히 감당할만큼 대담하기 때문애 가능했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생각에 그것은 그녀의 생각이 옳고, 그것을 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같았으면 온갖 협박속에서 나를 드러내면서 꿋꿋히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런지 모르겠다. 다만 그녀가 살았던 힘겨운 삶 속에서 글쓰기가 그녀에게 고통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 하나의 수단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번역이 썩 매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트랜스젠더나 패미니즘에 관심있는 사람 이외에도 자신의 삶을 써보고 싶은 사람도 읽어보면 좋을만한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