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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ul 16. 2024

책을 읽는 세가지 관점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의 전략'을 읽고

좋은 소설은 세가지 층위를 갖고 있어야한다고 들었다. 예를들어 '82년생 김지영에서는 현재라는 층위가 있고, 주인공 김지영이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할때의 층위, 그리고 그로부터 훨씬 전인 어린시절이라는 세개의 층위가 존재한다. 이번에 내가 읽은 오에 겐자부로의 책 '소설의 전략'은 소설은 아니지만 세개의 관점을 가지고 책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관점에서 책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책이 가치있다는 뜻 아닐까.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오에 겐자부로라는 무거운 이름.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바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1935년 일본 출생의 소설가이다. 199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는 그의 책 중에서는 아주 오래전에 '인생의 친척'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두 자녀가 자살을 하고, 엄마는 둘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살아남아 둘의 죽음을 받아들여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로 기억한다.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었던만큼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가 내 뇌리에 각인되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그랬던 그에 대해 이번 기회를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도 됐지만 책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제목을 보면 소설을 잘 쓰기위한 전략집 같은 느낌이고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을 읽어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앎'이 아닐까 한다. 앎은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부의  제목에 나와있기도 하고 1부의 첫번째 글 초반에도 언급된다. 즉, 그가 소설쓰기에 대한 강연을 하고난 뒤 관계자들과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 이야기가 소설의 영역에서 앎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그러면서 그러한 대화를 통해 발전시킨 생각들을 적어보고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이 좀 어려운데, 여기서 '앎'이라고 하면 책읽기를 통한 앎을 말하는 것 같다.


목차를 보면 20여편의 글들의 묶음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그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들에 대해서 썼다. 그리고 몇몇 작가들은 반복되어 언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니것이나 윌리엄 블레이크, 미르치아 엘리아데와 같은 작가 혹은 학자들이다.


몇몇 작가들이 반복되어 언급되는 이유를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그는 2,3년 동안 한 작가의 작품에 몰두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런만큼 그가 그 작가들에 대한 고민과 사유가 깊다는 것도 알 수 있고, 그가 쓰는 것 만큼이나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또한 놀라운 점은 그의 독서편력의 방대함이다. 여기서 그와 나의 접점이 생기는데, 다른 작가들은 처음 들었거나 이름만 들어봤는데,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내 마음 속에도 깊이 자리한 학자이다. 내가 읽은 책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민속학에 심취해있을 때 아마도 '샤머니즘'을 읽었을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 또한 엘리아데에 깊이 심취해 있었던 것을 보면 그와 나는 넓게보면 동양적인 사상을 공유하거나 적어도 공감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 소설 읽기의 관점이 이 책의 첫번째 층위라고 한다면, 지금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두번째 관점이 될 것이다. 바로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발견하는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가 어떻게 소설을 써왔는지에 대해서 만큼이나 어떻게 책을 읽어왔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한작가의 책을 2.3년씩 읽는다는 것, 그리고 그의 아들이 장애아로 태어난 뒤로 그의 소설에도 장애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반영했다는 것 등을 보면 그가 한가지의 화두에 깊이있게 빠져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매우 유머러스하다. 그가 자살시도를 하고 실패했다는 데 대해서 그의 동료가 "어떤 일을 실패하다니 당신답지 않다"고 한일이나, 그의 아내가 "현재 집필중인 소설이 있어서 당장은 자살을 시도하지 않을 거"라고 담담히 그들의 말을 옮긴 부분에서 웃을수는 없지만, 그의 유머감각을 발견하기엔 충분할 것 같다.


중간중간 반핵에 대한 목소리도 내고 있고, 읽다보면 그가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 책을 읽는 세번째 관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책이 쓰인 시점의 시대를 보는 것이다.


초반에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오래전에 쓰인 책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그가 책을 대하는 진중함이 '요즘 사람'같지 않아서이다. 소설가이지만 철학서, 시, 민속학서 등 읽는 책의 스펙트럼이 넓은것이 (내 생각이 맞다면) 철학과 인문학이 학문의 중심이었던 과거의 지식인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소설 맨 마지막을 보니 이 책은 1984년무렵 어느 잡지로 생각되는 곳에 연재된 글의 모음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쓰인 책인 것이다.


또한 이 책을 보면 그가 '핵무기'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갖고있는 것을 여러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앎'과 함께 이 책의 전반에 흐르는 어두운 공기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그도 그럴것이 일본인의 관점으로보니 1980년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터진지 불과 30여년밖에 안된 시기이다. 얼마전 '오펜하이머'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이 책에서도 언급이 되니 묘했다. 오펜하이머가 강의하는 대학에 들른 일 등이 언급되었다. 그는 오펜하이머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핵에 대해서 여러번 언급이 되었지만 그가 핵무기에 대해 고민이 깊은데 대해서 내가 공감이 잘 안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얼마전에 독일에 살았던 홀로코스트 생존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자서전 '나의 인생'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 '소설의 전략'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점이지만 유대인으로서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와 일본인인 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한국인인 내가 기억하는 혹은 느끼는 2차 세계대전이 각각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에 겐자부로의 입장에서는 핵의 위협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또하나의 재미라면 재미고 난관이라면 난관인 점을 언급하고 싶다. 바로 번역의 껄끄러움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때 일본어를 약간 배워보고 한문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말하자면 번역하신분이 일본어에서 쓰인 한자어의 음을 그대로 옮기신 것 같은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대공황이라고 번역할 부분을 '대불황'이라고 옮긴 것 같은 부분 말이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이해가 잘 안가서 여러번 읽은 문장이 많다. 하지만 일본어를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를 유추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해가 잘 안되는 글을 '해독'하는 것이 나의 오랜. 고상한 취미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느정도 각오가 필요해보인다. 하지만 읽고나면 요즘 술술 잘 읽히는 책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소설의 전략의 관점으로 볼 것인가, 오에 겐자부로를 발견하기 위해서 볼 것인가, 시대의 거울로 볼 것인가. 혹은 내가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다른 관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에 겐자부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할 책임은 분명하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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