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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테머 Oct 18. 2019

지금은 그런 시대잖아요.

자기애 가득한 이들의 표현욕



 2019년.

나는 세상에 11일 늦게 태어난 행운으로 29번째 해를, 친구들은 30번째 해를 맞았다.


 미디어를 비롯한 각종 매체는 '30'이라는 숫자를 다루는 게 제법 재밌나 보다 싶었다. 내가 서른 살과 가까워지기 전에는 말이다. 그저 저 언니 오빠들의 이야기로만 느껴졌던 게 어느새 코 앞이다. 서른이 되면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흘려 들었던 것들을 몸소 느낄 수 있는 때가 된 것이다

서른이 뭐 별거람. 29살의 성인이 한 살 더 먹어 30살이 되는 게 대체 뭐 그리 대수람.

서른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것들이 참 유난스럽고 요란스럽다고 생각했다. 헌데 요즘 주변을 보니 영 아무 의미 없는 시기는 아닌가 보다 싶다. 꽤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는 걸 보면.


 

-회사를 떠나는 이들.


 올해 나는 옷가게를 냈다. 내 양 옆으로는 친구들이 각각 카페와 뷰티숍으로 역시 올해에 자리를 잡았다. 내 오랜 친구 하나는 3년 정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며칠 전 서울에 배달 전문 떡볶이 가게를 오픈했다. 또 한 명의 친구 역시 5년을 다니던 회사와의 작별을 준비 중이다. 다른 한 친구는 전보다 더 나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을 했지만, 퇴사 후 곧 있을 결혼식 준비에 한창이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내 동생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줄곧 회사생활을 해왔지만, 올해 퇴사를 하고 현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우리-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 회사를 박차고 나오기 시작한 건 올해가 처음. 우리는 왜 하나 둘 회사를 떠나는 걸까.

 

 나만해도 벌써 몇 번째 일인지 모른다. 고작 스물아홉, 성인이 된지는 채 10년도 안된 나이임에도 꽤 다양한 일을 경험해본 편이다. 다행히 내 부모님은 나의 선택을 존중할 줄 아는 열린 사고를 하는 분들이기에 좀 더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었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의 갈등이 꽤나 있는 걸로 안다. 부모님 세대의 '직장'은 평생직장이라 여기고 다닐 만큼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으니 그 세대를 살아온 그들이 보기에는 업종도 바꿔보고 이직도 해보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우리네 모습이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시대는 그렇지 않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또 다르다. 하루하루 당황스러우리만큼 급변하는 세상에서 과연 평생 한 직장에 머무르며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간간이 친구들을 만나면 대화할 주제가 너무 많아 2차로, 또 3차로 자리를 옮겨가며 수다를 떨어도 집에 가는 시간이 다가오는 건 늘 아쉽다. 각자의 관심사와 취미가 너무 다양해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더러는 그 덕에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기도 한다. 좋아할 만한 것들과 쉽게 즐길 것들이 너무 많은 시대가 아닌가. 골프, 필라테스, 스피닝, 클라이밍, 살사 댄스, 수영, 러닝, 서핑, 웨이크보드, 볼링... 나와 내 주변인들의 취미만 늘어놓아도 벌써 단어 10개는 채워질 만큼 말이다. 그뿐인가? 주기적으로 모여 즐기는 술과 음식을 거를 수도 없는 노릇이며, 하루가 멀다 하고 재미있는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극장가와 공연장들을 지나칠 수도 없다. 가끔 사회생활에 지친 것 같으면 국내 여기저기로, 가끔은 해외로 나가 바람도 쐬어줘야 제맛이다. 그러다 문득 너무 열심히 살았다 싶은 날에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이불속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손을 힘껏 뻗지 않아도 될 정도의 거리에 간식을 잔뜩 깔아놓은 채 미처 보지 못한 드라마를 몰아보며 쉬어주면 그제야 제법 인간답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렇게 회사 일 말고도 할 일이 많다. 이런 우리에게 엄청난 노동과 업무량을 쥐어주고 그 모든 걸 빼앗아 간다?

‘평생직장'이라는 단어와 멀어지는 순간이다.


 대가족에서 핵가족화가 되는 즈음 태어난 우리는 대부분 하나, 둘, 많으면 셋 정도의 형제자매와 자랐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부모들은 몇 안 되는 자식을 귀하게 키웠다. 형제가 많았던 옛날에 비해 우리는 많은 것을 누리며 자라온 게 사실이다. 많은 희생을 강요받지 않았고, 많이 박탈당하지 않았다. 성장기를 그렇게 보낸 우리 세대들은 어쩌면 그런 영향으로 자기애가 강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나의 행복'을 중시한다. 아마 이게 우리가 회사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이리라.

내 행복과 가치 실현에 회사가 방해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것을 너그러이 감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직업정신이 투철하지 않고 이기적인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나의 행복과 나의 가치 실현을 포기하고 희생할 만큼 회사에 몸과 마음을 바쳐 일을 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게 우리 세대들의 가감 없는 현실이다.-‘우리 세대’라고 표현했지만 가치관에 따라 혹자는 회사에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을 수 있고, 투철한 직업 정신을 가졌을 수도 있다.- ‘YOLO’ , ‘워라벨’ 같은 단어들이 근래 핫한 키워드로 떠올라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일 것. 결국 시대적인 메시지를 품은 키워드들이 아닐까?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

제 행복은 건드리지 마세요.



-우리의 모순.


 스타일리스트 일을 하던 시절 내가 가장 즐겁게 했던 작업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패션 웨딩 화보.

웨딩 매거진의 화보 촬영은 꽤 많이 했다. 예비 신부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면 입고 싶은 드레스로 가장 많이 꼽히는 고가의 드레스 브랜드들이 주 협찬사였다. 이 드레스는 신상이니 꼭 찍어달라는 부탁의 말과 비즈가 하나라도 떨어진 채로 반납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눈빛 대화를 동시에 주고받는 일부터, 이 샵 저 샵에 스케줄을 잡고 촬영 컨셉에 맞는 드레스를 고르고 다니는 일은 내가 결혼을 앞둔 신부인 것처럼 고되고 힘들다. 실제 예비 신부들이 타겟 독자인 웨딩 매거진 촬영은 말 그대로 웨딩드레스를 좀 더 예쁘게 보여줘야 하는 촬영이다 보니 현장에서도 그다지 큰 재미와 감흥이 없다. ‘예쁘다’,’화려하다’ 정도의 감탄사만을 자아낸달까. 그러나 패션 웨딩화보는 다르다. 내가 맞춘 착장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촬영 중 하나였던 그 작업은 촬영 컨셉을 들었을 때부터 설레었다.


'탈(脫) 틀'. 틀을 벗는 것.


우리나라 결혼의 허례허식에 혀를 내두르는 내가 반가워할 만한 촬영 컨셉이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곱고 얌전하게 서있는 신부의 모습을 버렸다. 드레스에 운동화를 매칭 하기도 해 보고 파격적인 컬러의 드레스를 선택하기도 했다. 촬영에 임하는 우리는 단순히 신부의 패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와 틀을 벗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패션의 힘을 빌어 전달해보고 싶었다.


 화려하지만 막상 불필요한 것들만 넘치고, 치레하기 바쁜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다. 결혼을 한 친구들도, 결혼을 앞둔 친구들도 거진 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전해 내려온 결혼 문화를 더 키운 게 우리 세대란다.


 정사각 프레임 안의 이미지 하나로 많은 것을 표현하는 시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올리고, 글을 쓰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요즘이다. 좋아요 개수와 팔로우 수에 의미를 두기도 하고, 이젠 돈을 주고 사고파는 이들까지 생겼다. 소위 '핫플'이라고 불리는 카페에서 일했을 때는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할 사진을 찍기 위해 해외에서 방문하는 손님들도 많았을 정도로 우리는 보여주기에 혈안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 아, 이제야 우리가 결혼 문화를 고착시켰다는 말이 조금 이해가 된다. SNS에서 몇 번 마주쳤던 사진들이 떠오르면서 좀 더 납득이 된다.

결혼이 화두인 게 자연스러운 나이라 결혼 관련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곤 하는데 주로 누구는 어디서 결혼식을 한다더라, 예물로 뭘 받았다더라, 드레스가 얼마라더라, 예단을 얼마나 해오라더라.... 등등 굳이 알 필요도 없고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것들 투성이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결혼식을 어디서 하는지 예물로 무얼 받았는지 드레스가 얼마인지 그들에겐 초미의 관심사이자 이야기할 거리가 되니 말이다. 이것저것 사진으로 기록하고 SNS로 공유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 결혼을 준비하며 개인 소셜 계정에 보여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렇게 검색 한 번이면 나와 비교할 데이터가 쏟아져 나오는 게 실상이다.


악습을 고착화시킨 건 결국 우리 세대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표현의 자유와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에서 SNS는 누구나에게 허락된 표현의 장임은 확실하다. 정사각 프레임안에 나를 담을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가지는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기도 하고!


길게 말했지만 결국 우리는 자신의 소중함도 알고 본인을 사랑할 줄 알아서 혹은 사랑하기 위해서 각자의 방법을 찾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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