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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자매 Dec 27. 2019

치열한 리모델링과 그 후의 일상 8

정자매 하우스 야간개장

오징어 전구를 꺼냈다.

보광동에 살 때 손님들이 놀러 올 때마다 우리는 이 오징어 전구를 켰다.

보광동 집에 오려면 좁고 어두운 골목길을 30미터 정도 들어와야 했는데, 오징어 전구만 켜면 골목 전체가 마법같이 밝아졌다.


이번 집 마당에도 오징어 전구를 설치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오징어 전구를 옥탑방의 박스 안에 쑤셔 넣어 놓은 상태였고, 옥탑방에 가려면 계단을 열 개나(?)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실행이 쉽지 않았다(옥탑방은 계획대로라면 작업실로 잘 쓰고 있어야 하지만, 생각보다 올라가는 게 귀찮아 결국 잡동사니 창고로 쓰고 있다).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던 어느 날, 집 마당 의자에 편안히 앉아 그림처럼 책을 읽고 있던 독서모임 주인장 H 씨와 심리상담소 주인장 S 씨를 발견하게 된다. 도움을 줄 사람들이 있을 때 일을 벌여야 한다. 기회는 지금이었다.


후다닥 옥탑방에 올라가 몇 개의 박스를 뒤져 오징어 전구를 찾아냈다. H 씨와 2층 현관 난간과 옥상 계단을 연결했다. 그저 고정할만한 장소를 찾아 양끝을 고정하면 되는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다닥다닥 붙은 전구끼리 부딪혀 전구가 깨질뻔한 고비도 있었고, 생각보다 줄이 너무 무거워 전선을 놓칠뻔한 고비도 있었지만 무사히 연결했다.


마당을 높게 사선으로 가로지르도록 오징어 전구를 연결해놓고, 전원을 켜기 전에 마당에 테이블을 세팅해 놓았다. 테이블보도 깔고, 의자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드디어 전원 연결.


스위치를 켜자마자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조명 불빛에 묘하게 부조화를 이루던 마당의 식물과 테이블과 각종 소품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골목 끝에 있는 집이고, 외벽도 까만색이라서 밤에 보면 여기에 집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전구를 켜놓으니 집의 존재감이 부각되었다. '여긴 뭐하는 곳이지'하는 눈빛으로 마당을 들여다보고 가는 동네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그 날 오징어 전구는 한참 동안 켜져 있었다고 한다.

책이 더 잘 읽힐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여기까지가 10월의 마당 풍경이다.

오징어 전구를 설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이 찾아왔다. 마당에서 하던 독서모임은 칼바람에 자연스럽게 실내로 옮겨갔고, 사진으로 보이는 초록 초록한 나무들은 얼어버렸다(죽은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여름날 마당에 줄기차게 심어놓은 농작물들이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었던 보광동의 전철은 밟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되고 있다.


하지만 쓸쓸해진 마당에 귀여운 손님이 찾아왔다.

공사를 해주신 J실장님이 집을 고쳐주러 왔다가 새끼 고양이가 1층에 짐을 쌓아둔 곳으로 쏙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제보를 해준 것이다. 우리는 고양이라면 사죽을 못쓰지만 집을 자주 비워야 해서 키우지 못하고 있었다. 매일 동생과 카톡으로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키우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고 있었는데, 고양이가 (제 발로) 우리 집 창고로 들어오다니. 고양이가 우리 집 창고를 추위를 피하는 쉼터로 종종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리모델링할 때 보안상 CCTV를 설치해놓고 거의 확인을 안 하고 있다가, 고양이 구경하려고 동생과 CCTV를 확인했다(우리 집 CCTV는 고양이 관찰카메라로 사용되고 있다). J실장님이 집에 들어온 시간으로 CCTV를 돌려보니 고양이 세 마리가 (자기 집인 양) 정문을 통해 당당히 들어왔다. 얼룩이 황토색 고양이와 새끼 두 마리였다. 원래 이 집은 까만 고양이의 구역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까만 고양이는 집 옆 공터에서 목격되고, 우리 집에는 황토색 점박이 고양이와 그의 새끼들이 활개 치기 시작했다. 황토색 점박이 고양이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승리를 한 것으로 추정되었다(동물의 세계란 냉혹했다).

담을 통해 살금살금 들어오지 않는다. 이들은 당당히 정문을 이용한다.
J실장님이 도착하자 고양이가 창고에서 머리를 내밀고 실장님을 관찰하고 있었다. 심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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