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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자매 Dec 31. 2019

치열한 리모델링과 그 후의 일상 9

홈메이드 곶감 만들기_3개월간의 여정

10월_감 따기 1차 시기

김장은 실패했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뭘 해볼까' 꼼지락대던 우리의 레이더망에 창밖의 감나무가 포착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주황빛이 비치는 정도였는데 어느새 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감을 따려면 담을 넘어가야 하는데 그게 귀찮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감이 익기 시작하자 까치를 비롯한 각종 새들이 홍시를 신나게 쪼아 먹기 시작했다. 저 조그만 부리로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어했는데 착각이었다. 새들이 몇 번 머리를 박고 먹다 보면 홍시가 달랑 반쪽만 남았다. 게다가 아무도 감을 따지 않아 감이 넘쳐나니 새들도 홍시를 골라먹는 것이 아닌가. 푸드덕 거리며 이 홍시 저 홍시 전부 집적대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감을 따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거실 창 너머로 보이는 감나무

휴일 매우 즉흥적으로 시작된 감 따기였으므로 우리는 잠옷 차림이었다. 오래전에 배송 왔지만 택배 상자 그대로 방치해놓았던 5미터짜리 감 장대도 조립했다. 담을 넘기 위해 사다리도 설치 완료.


문제는 담이었다. (용감한) 동생은 높은 사다리를 성큼성큼 올라가 담 너머로 빠르게 안착했지만, (세상 제일 쫄보인) 나는 사다리를 몇 계단 올라보지도 못한 채 다리를 부들거리며 포기했다. 높은 사다리에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그렇게 1차 시기는 담 너머 동생이 감 따는 모습을 촬영하며 종료.

동생의 팔 근육이 인상적이다. 장대가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떠올리게 한다.
감따기 1차 수확분

한 바구니 소복하게 담길 정도로 감을 따니 그 맛이 궁금해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감 하나를 깨끗하게 씻어 크게 베어 물었다. 달큼하고 아삭한 단감의 맛을 기대했는데 아뿔싸. 떫어도 그렇게 떫을 수가 없었다. 급하게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단감이 익는다고 홍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두 종자가 완전히 다르며, 대봉은 홍시로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홍시는 아이스크림 그릇에 담아먹었다. 아이스크림보다 달콤했다.

11월_감 따기 2차 시기

바로 감을 딸 줄 알았지만 역시나 우리의 게으름 때문에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잎들은 눈에 띄게 쪼그라들고 꽤 많은 감들이 홍시로 변하고 있었다. 더 지체하다가 홍시가 되면 장대로 딸 수 없겠다는 판단에 즉흥적으로 2차 감 따기가 진행되었다. 나는 이번에도 담 넘기에 실패했다.

2차 감따기는 동생 출근 직전 긴급하게 진행되었다

11월_감 따기 3차 시기

완연한 겨울이 왔다. 이번에는 마지막 감 따기라는 생각으로 작업복을 챙겨 입었다. 이번에는 나도 담 넘기에 성공했다. 감 장대는 듣던 대로 꽤나 무거웠다. 장대 끝에 육손이(?) 같은 장치가 달려있는데 감을 그 속으로 쑥 밀어 넣고 빙그르르 돌려주면 감이 가지에서 떨어졌다. 감이 가지에서 톡 하고 장대로 떨어지는 그 느낌이 재밌어서 둘 다 무아지경으로 감을 땄던 것 같다. 홍시를 잘못 건드려 옷에 홍시 폭탄을 맞기도 했지만 수확은 즐거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감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몇 번 하다보니 속도가 붙었다. 본투비 촌부같은 모습이다.
육손이. 처음에는 한개씩 따다가 나중에는 한번에 세개씩 따기도 했다.
감들이 한가득

12월_곶감 만들기

감을 실컷 따서 베란다에 놓아두었는데 거의 줄어들지 않고 방치되고 있었다. 감 따기는 재밌었지만 감에 생각보다 손이가지 않았다.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기념품처럼 감을 선물해주었다. 그래도 감은 크게 줄지 않았다. 넘치는 감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동생이 곶감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우리는 그렇게 생애 첫 곶감 만들기에 돌입하게 된다.


먼저 감을 꼭지만 남겨두고 껍질을 깎은 후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소독한다. 그리고 곶감 걸이에 예쁘게 걸어서 바람이 잘 드는 그늘에 말려주면 끝. 곶감 만들기는 단순했지만 품이 많이 들었다.

베란다에 감을 걸어놓았더니 갑자기 시골 할머니집으로 변했다

그리고 12월 31일 현재_곶감의 근황

곶감 40개는 순조롭게 만들어지고 있다(물론 매일 하나씩 빼먹어서 개체수는 줄고 있다).


이마트에 갔다. 예쁘게 말린 곶감 20개의 가격은 고작 9900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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