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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각화 Apr 23. 2024

아이마음

나 결혼 안 하고 엄마랑 살 거야

아이가 태어나 눈을 뜨지도 않은 채 그저 발달된 후각으로 엄마의 젖냄새를 찾아 그 무거운 머리를 들어 올리며 애쓰는 모습은, 태어나느라 힘겨웠던 소비된 에너지를 본능적으로 채우고자 하는 일차원적 살고자 하는 욕구일 것이다.


태내에서의 280일. 그 시간을 지나 이 세상의 빛과 함께 마주칠, 난생처음 느껴질 중력의 힘인 자신의 무게, 피부에 느껴질 공기의 흐름,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와의 첫 만남. 그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에게 위대한 만남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게 맺어진 천륜은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연.


엄마의 냄새와 손길, 태내에서 들었던 익숙한 음성, 서서히 눈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동공에 박히는 엄마 얼굴.


이 세상에 자신을 위해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고, 안아주고, 손잡아주는 유일한 내편과 같은 존재.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내면 해내는 대로 손뼉 쳐주고 웃어주며 응원해 주는 엄마. 열이 나면 밤을 새우거나 쪽잠을 자면서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의 구석구석을 닦아주며 간호해 주는 엄마.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아이는 자신이 엄마에게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을 선사하기 시작한다.


맘마

음마(엄마)

으빠(아빠)

따당해요(사랑해요)

하능마큼 땅마큼(하늘만큼 땅만큼)


그러다 제대로 된 문장으로 표현을 한다. 엄마를 녹여버리는 말.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울 엄마가 제일 예뻐

나 결혼 안 하고 엄마랑 살 거야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다. 

아무리 못났고 부족해도 우리 엄마가 최고이고,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우리 엄마들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 제일 예쁜 엄마, 이 세상 하나뿐인 최고의 엄마다.





아이마음에 대한 story


나도 그랬을 터인데, 내가 떠올리는 나의 기억은 다섯 살 언저리부터라 저런 최고의 말을 선사했는지 나 스스로에 대한 기억은 아쉽게도 없다. 


나의 바로 밑 동생과 나는 여덟 살 차이가 난다. 어머니는 맏며느리셨고, 아들을 낳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갖고 계셨기에 무궁무진한 노력 끝에 43세 때 막내를 하나 더 낳으셨다. 그럼에도 아들이 아닌 딸을 낳으시면서 딸 다섯으로 마무리를 하고 나서야 내 책임 아니라고 포기선언을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나의 동생. 나이차가 나다 보니 동생이 자라며 보여줬던 행동과 표현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동생도 자라면서, 앞서 나열한 단어들과 표현들로 엄마를 녹이는 최고의 말을 선사했다. 일하고 돌아와 너무 피곤하고 힘드시지만, 저 말 한마디에 피곤이 녹고 다시 힘이 솟게 해 드려 얼굴 한가득 웃음이 묻어나셨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이제 엄마보다는 친구와 더 가깝고 더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던 시점, 당시의 내 머리로 동생의 표현에 깜짝 놀랐었다. 

'저 정도이구나. 저런 표현까지도 하는구나' 라며.


"엄마, ○○이는 엄마랑 평생 살 거야. 결혼 안 하고 평생 엄마랑 살 거야. ○○이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어린아이들은 '나는'이라는 일인칭 시점의 말보다, 자신의 이름을 넣은 호칭을 사용하는 시기를 지나기도 하는데, 당시 저렇게 표현을 했었다.)


나는 어머니가 저 말을 듣고, 한순간 얼굴이 꽃처럼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나도 듣게 되었다. 

나의 아이 입으로 표현하는 저 사랑스러운 소리들을. 

옆에 누군가 나를 지켜봤다면, 아마도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졌을 거다. 당연히 얼굴에 꽃도 피었을 거고.


그런 말을 했던 동생은 결혼을 했고, 남매를 키우며 어느덧 마흔을 넘겼다.


결혼을 안 하긴.

어머니도 가끔 말씀하시지만, 나도 가끔 골려먹는다.

결혼 안 한다고 하더니 우리 다섯 자매 중 제일 어린 나이에 시집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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