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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isy Jun 13. 2022

비 오는 날, 한우 물회

눈치게임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특히 그 분위기와 사람의 감정을 빠르게 느끼고 대화로도 분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친구들은 이따금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이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하는데 라는 탄식을 내뿜기도 한다. 어려서 눈치를 많이 본 사람이 눈치가 빠르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나는 그렇게 눈치를 봤는지 잘 모르겠지만 상황과 타인의 마음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것 같다.

 

 나는 두 번째 혼자하는 여행지로 경주를 다녀왔다.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경주로 내려갔다. 일부러 따뜻한 온돌을 느끼고 싶어 한옥 게스트 하우스를 잡았는데 보일러가 고장인가 보다. 너무 추워 감기 기운이 올라왔다. 왜 이렇게 춥지 하고 문을 열어보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분명 비 온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니 이틀 동안 비가 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우산을 사러 간다. 


 4월 말, 따뜻할 줄 알았던 경주는 비로 젖어들었고 꿈꾸던 자전거 여행은 포기하고 뚜벅이 여행을 하게 되었다. 시간마다 한 대씩 오는 버스를 기다리기도 하며, 느리게 찬찬하게 경주여행을 즐기고 있다. 경주 오기 전 맛집이라고 두 군데를 봐 뒀었는데 한 집은 여행 일정이었던 월화가 휴무였다. 여행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 중 하나다. 또 다른 집을 가볼까 하고 교통편을 찾아보았다. 마침 내가 가고자 했던 목적지로 가는 길 중간 쯤 한우 물회 맛집으로 유명하다는 함양집을 갔다.  


 비는 제법 오고 있었다. 따뜻할 줄 알았고 옷도 가볍게 입고 왔는데 너무 추웠다. 나는 한우 물회를 먹기로 하고 갔기에 주문을 하려고 손을 들면서 옆에 있는 메뉴판을 슬쩍 스캔해 보려고 했는데 곰탕이 보였다. 아 이런 날에는 그냥 '따뜻한 국물이 최곤데'라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결국 한우 물회를 시켰다. 시키고 나니 '아!..... 곰탕... 먹을걸 그랬나....?' 생각과 동시에 빠르게 나오는 음식들. 한우물회를 언제 또 먹어보겠어 하며 나오는 한우물회를 반기기로 했다.     

한 입을 먹고 보니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다시 손을 들고 주문을 했다. 

 "여기 따뜻한 물도 한 잔 부탁드립니다."

 뜨거운 물로 몸을 녹이며 차가운 한우 물회를 한입, 뜨거운 물 한 모금 번갈아가며 마셨다. 

  '아... 망했군....'생각했다.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면 됐었는데 이상했다. 니는 블로거들의 눈치를 본 것일까, 식당 이모님의 눈치를 본 것일까, 한우 물회를 먹겠다고 결심한 나의 눈치를 본 것 일까.  그 순간 나는 도대체 누구의 눈치를 본 것 일까?


 아직은 혼자만의 여행이 서툰가보다. 30여년 동안 나와의 여행이 고작 두 번 이라니 그동안 내가 나를 돌보지 못했나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나를 더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와 함께 지내는 연습, 내가 나를 데리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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