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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가 Nov 29. 2019

모두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연 매출 2조 서점의 성공 공식, <지적자본론>


일본의 기업가 마스다 무네아키는 고객의 가치와 행복을 끌어올리는 기획을 하는 사람이다. ‘취향’을 대표하는 것이 ‘책과 음악, 영화’라는 점에 착안해 그것을 기준으로 삼고, 서점이라는 공간을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자기의 취향에 맞는 것들을 발견하는 거대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가 만든 복합 문화 공간 ‘츠타야’는 일본 내에 매장이 1400개나 있고, 연 매출이 2조원에 육박한다. 그리고 멤버십 회원 수는 무려 6천만 명(일본 국민의 2분의 1)이다. 책 시장이 점점 죽어간다고 하는 가운데 어떻게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 그건 책을 판 게 아니라 가치를 팔았기 때문이다.



    


가치를 팝니다


예를 들어, 눈앞에 이디*와 스타벅스 리저브가 있다고 치자. 이디* 커피가 싸고 입맛에 맞아도 머물렀다 가야 한다면 스타벅스 리저브로 간다. 아반*와 페라리의 문제가 아닌 이상 커피 값 조금 더 쓰는 것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일은 없다. 그렇다면 좋은 음악이 나오고 있고, 잘 교육 받은 직원이 내 기분을 망칠 일 없으며, 주변 사람들이 느긋해 보이는 리저브로 기꺼이 향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츠타야로 향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츠타야에는 취향에 맞춘 큐레이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여유, 느긋한 분위기가 있다. 파리 여행서를 여행서 코너에 가져다 놓지 않고, 그 자체를 하나의 코너로 구성한다. 그곳에는 여행서는 물론이고, 파리의 역사, 여행기, 파리의 풍경이 잘 드러난 소설까지가 모두 준비되어 있다. 의식이 어느 방향에로 흐르게끔 물길을 미리 내어 놓는 것이다. 이때 고객은 필요한 책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일관되고 편안한 하나의 흐름을 경험하게 된다. 그냥 서점으로 가겠는가? (최근에는 요가 교실 등도 함께 운영 한다고...!)


  최근 교* 문고와 영* 문고도 분위기가 이렇게 변했다 (이건 츠타야)



남의 신발을 신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런 기획을 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입장 되어 보기’를 거듭해 말한다. 판매자의 입장대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주 타겟이 되는 고객이 어떤 경험을 할지 그가 내리는 역에서 서점에 오기까지의 길부터 시작해 서점 내부 화장실 사용 경험까지 모두 직접 겪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과했다.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고, 이것도 알려주고 싶고, 저것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프로그램이 날을 거듭할수록 무거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예산부터 회사 특성상 한정지어진 조건까지 모두 고민해야 했다. 덜그럭 소리가 나는 멍청이 로봇 같은 기획물을 마주하고 있자니 고민이 몸으로 나타나 시름시름 앓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아니다 싶은 순간이 왔고, 나는 다 떠나서 그냥 초등학생의 기분이 되어 보기로 했다. 그때까지 내가 한 것을 버렸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어서 신청한 것도 아니고, 엄마한테 등 떠밀려 책상 앞에 앉은 아이가 어떤 기분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끝내게 될지 경험의 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겪어 보기로 했다. 그 때부터 무엇을 제거해야 하고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가 조금은 명확해졌다. 2주가량 고민해야 했던 것들이 하루 만에 해결되어 나는 마감 전날 막힘없이 기획 샘플을 만들 수 있었다.


할무니는 책 읽어요. 나는 케어 받고 있겠다멍. (주 고객층이 애완견이 있다는 점을 노려 펫 케어 시스템도 구비해 놓았다.)




기획자는 어때야 하는가


일단 자유로운 영혼들이어야 한다. 제멋대로 튀어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조직 분위기 속에서 개인택시처럼 움직여야 한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그의 다른 저서에서 이런 조직을 ‘무선 네트워크로 이어진 개인택시 집단’에 빗대었다. 고객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서로 간에 공감하며, 그것을 한 방향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휴먼 스케일’의 조직이 하나의 단위여야 한다. 그리고 이 조직은 서로 간에 약속을 지키고 감사할 줄 아는 신용으로 결속된 집단이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디자이너여야 한다. <지적자본론>의 표지에 새겨진 문구이다. 전문 교육을 받은 진짜 디자이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은 “설계와 기획”의 의미이다. 대상은 나의 상품과 함께 하는 인생의 어느 기간일 것이다. 만들어 놓고 골라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대 초반의 아이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하고 싶은가. 내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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