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14 특별한 기획이 아닌 당연한 기획

당연한 거 아냐? 왜 이 생각을 못했지?라는 반응

by Yoo

꽤 오랜 기간 특별함이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특별한 방식.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나만의 독창적인 해결책. 나의 기획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놀라는 모습. 이러한 종류의 이미지가 저에게 좋은 기획의 이미지였습니다. 이러한 이미지의 반응을 상상하며 기획을 선보이곤 했습니다.


한편 가장 듣기 싫었던 반응은 그거 예전에 했던 것 아니야? 당연한 이야기 아니야? 그거 생각하냐고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거야?라는 상식이나 평범함의 반응이었습니다. 때문에 기획을 할 때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과거의 모든 시도록 가능한 복기하고 그것과 다르게 접근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특히 내가 과거에 했던 것을 그대로 가져와서 차용하는 것을 자기 표절이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제가 좋은 기획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마음. 그 마음이 특별한 기획이 좋은 기획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기획을 연구하는 사람의 마음. 나만의 오리지날리티와 다름을 추구하는 연구자로 커리어를 시작했기에 새로움이 없으면 의미가 적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기획자로 시간을 조금씩 더 보내고 있으니 듣고 싶은 말과 듣기 싫은 말이 완전히 반대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에는 다른 이들이 나의 기획에서 새로움이나 특별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식과 당연함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새로움이나 특별함으로 뾰족하게 부각되는 것 이아닌 상식과 당연함으로 자연스럽게 묻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획을 바라보는 시선의 중심이 기획을 하는 나에서, 기획이 돌아가는 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특별하고 새로운 기획의 결과물을 보고하고 승인받는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보고를 하면 실행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획과 실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음을 수없이 경험하면서 되게 하는 기획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면서 특별하고 새로운 기획보다는 상식적이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기획이 되게 하는 기획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기획이 되는 과정은 많은 이해관계자의 받아들이는 과정이고 상식적이고 당연해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기획을 지향하며 느낀 것은 이것이 훨씬 더 어려운 길이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한데 안되고 있는, 즉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느끼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한데 안 되는 일은 사실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정말 당연히 이미 되고 있었겠지요. 따라서 당연해 보이지만 안되고 있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사실은 오히려 안 되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러한 일을 당연함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달인의 반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방의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 사람은 달인일 확률이 높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요.


당연하지 않았던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하면 큰 파급력이 즉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왜 이 생각을 못했지? 그건 당연한 이야기 아냐?라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기획은 실행이 됩니다. 당연한 기획이 되는 기획인 이유는 특별하고 새로운 기획은 더 하는 기획이지만 당연한 기획은 덜어내는 기획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함을 내보이는 쉬운 방법은 그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기존과 다른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새로운 개념의 렌즈로 기존의 현상을 바라보며 빈 곳을 채우는 방식으로 기획을 하게 됩니다. 새로움은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생각을 개몽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하나입니다. 실무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작게는 서운함 크게는 경멸까지 느끼며 좌절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새로움을 다른 이에게 전달할 때는 뾰족하게 드러내지 말고 당연함으로 덮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새로움을 뾰족하게 드러내려 하는 있어 보임과 인정의 욕구를 조금은 내려놓자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함을 추구하는 기획이 굉장히 나이브하게 이야기하면 조금 없어 보일지라도 그것을 추구하는 용기를 갖자는 이야기입니다. 기획에서 기획자를 조금은 덜어낼 용기를 내는 것이 어쩌면 되는 기획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14화2-13 가치 생성과 전달의 디커플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