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e Jul 08. 2019

줄서는 블루보틀에 대한 고찰

[블루보틀 3부작] 온갖 비판에 대한 비판 아닌 비판

한동안 블루보틀에 대한 이야기가 잠잠하다가 최근 다시 나오기 시작합니다.


서울 삼청동에 2호점이 지난주 생겼기 때문인데요. 한국에서, 블루보틀은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두 달 전쯤. 서울 성수동에 생긴 블루보틀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말에 조금은 회의적이었습니다. 출근길부터 실검 1위. 새벽 5시부터 줄섰다는 사람도 있고 입장을 위해 서너시간 대기는 기본인 것 같고 월차 내고 왔다는 사람도 있었죠.


블루보틀은 오픈 전부터 매장을 공개했는데 재밌는건 온갖 규탄(?)에 가까운 글이 쏟아지는 게, 저는 흥미로웠습니다.


왜 매장 인테리어를 하다 말았느냐.
공사장에 벽돌 쌓아둔 것 같다
왜 커피 경험이 전무한 사람을
블루보틀코리아 대표로 앉혔냐
도쿄 블루보틀보다 인테리어가 못한거 같다


모두 한 기업의 주주 정도는 되어야 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인테리어는 요새 유행하는 인더스트리얼로 컨셉 잡으니 그런거 같은데 가기 싫으면 안가면 되는 일이고 블루보틀코리아 대표 임명은 기업 마음입니다. 블루보틀은 공공기관도, 공기업도 아니니까요.


어찌됐던 간에 기업의 주주가 할만한 이야기를 기업과 아무 이해 관계가 없는 일반 사람들이 한다는 건, 그만큼 사랑 받는 브랜드이기에 가능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봅니다. 블루보틀이 2019년 한국에서 사랑받을만한 브랜드인지에 대해서요.



글쎄요.


예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블루보틀을 접했을 땐 신선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땐 스타벅스가 대세였기에 손으로 드립핑해준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아이디어였고, 인테리어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뉴욕 보스턴 DC 심지어 도쿄에도 블루보틀이 생겨났고 어딜 가도 처음 접한 블루보틀의 '그 감흥'은 덜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내에도 이러저러한 카페들도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블루보틀이 48시간 이내 로스팅한 원두를 쓴다지만, 이젠 한국에서도 매장에서 아예 바로 로스팅하는 로스터리 카페들 여럿 있고요. 물론 느림을 존중하는 블루보틀의 철학을 존중하지만, 미국에서조차 한국처럼 인산인해를 이룬 블루보틀은 제 기억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줄섰던 강남역 쉑쉑 버거도 언제 가듯 평균 이상으로 맛있지만 비슷한 수준으로 맛을 맞춰주는 버거집이 한국에 쉑쉑 말고도 이제는 좀 있고 커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을 듯 합니다.


다시 생각해봅니다.


요새 오히려 로컬/인디 커피점들이 다양하게 많아지고, 로스터리들도 많아지는데, 굳이 블루보틀에 사람들이 몰리는 심리는 뭘까요?



최근 익선동에 갔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요새 익선동은 불과 4,5년 전의 익선동과 또 달랐습니다. 삼청동처럼 개발됐으되 삼청동보다는 더 좁은 골목에 집집마다 줄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 그런걸 보면 줄서는 "경험"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 보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여행 목적지가 꼭 타지일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서울이라도 새로운 장소에서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블루보틀에 몇 시간 기다려 입장해도 여전히 '남는 장사'입니다.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모두 해외나 지방 여행가는 것보다 가성비 좋은 경험이죠.


구체적으론 이런 게 가능할 듯 합니다.


#1. 줄 서면서 아직 당도하지 않은 즐거움에 미리 설레일 수 있습니다


(여행도 가장 좋은 순간이 출발하기 바로 직전이라지요. 공항 가는 길은 늘 즐겁죠)


#2. 주변 사람들을 구경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을 때가 있습니다)


#3. 오랜 기다림의 끝에, 그 블루보틀 커피를 받아들었을 때 작은 성취감(?)도 들 수는 있을 듯 합니다


(게임을 잘해서 아이템을 얻은 듯한 느낌이랄까요)



삼청동이든 성수동이든 블루보틀 지나칠 때마다 항상 문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봅니다.


들뜨고 달뜬 표정의 사람들을요.


이들은 인증샷을 찍습니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혹은 혼자서...블루보틀 로고가 크게 그려진 테이크아웃 잔을 하늘을 향해 들고 사진을 찍고, 뿌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커피 맛이야 어떻든, 카페 인테리어야 어떻든, 사람들한테 이 뿌듯함과 이 행복함을 안겨줄 수 있다면, 블루보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듭니다. .


허세인들 어떻고,
SNS용 사진인들 어떻습니까.


인증샷 찍는 완전 행복한 표정 여럿을 보면서, 저도 덩달아 "블루보틀 인산인해"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은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엄마. 신문기자
유별나지 않게, 유난하지 않게,
아이를 기르고 싶습니다
일하는 엄마도 행복한 육아를!


매일 밤 뭐라도 씁니다

매일 밤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다음 글이 궁금하면 "구독하기"를

도움이 되셨다면 "하트"를 눌러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모닝 스무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