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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흔 Jan 23. 2022

아들을 지우고 비로소 내가 되었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을 때부터 이름이 싫었다

딸 이름에 새긴 아들


진부한 이야기다. 딸, 딸, 그리고 또 딸이었다. 엄마가 세 번째로 딸을 낳은 날, 곁을 지키던 외할머니는 이를 어쩌나 발을 동동 굴렀다. 도저히 사부인에게 이 비보를 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더랬다. 끝내 소식을 들은 할머니가 아이갸이, 예엠병, 했을 것이 음성지원으로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어른들이 내가 태어나서야 딸인 줄 알았던 걸 보면 후미진 시골이라 태아의 성별을 미리 몰랐겠지 싶다.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알고 여아를 선택적으로 낙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시기였다. 내가 태어난 해 여아 100명당 남아 숫자는 113명이었다. 하지만 우리 동네는 병원이 아닌 읍내 조산원에서 애를 받을 정도로 ‘찐’ 시골이었다. 그 덕분에, 그 탓에 나는 살 수 있었다.


아빠는 항렬자가 적용되지 않는 딸들 이름 끝 글자에 나름의 돌림자를 넣어 통일성을 줬다. 큰언니 이름은 ○☆이고 작은언니 이름은 △☆이다. 모두 아빠가 지었다. 아빠는 탄식하는 어른들의 반응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꼈던 걸까? 그 책임감을 내 이름에 풀었다.


셋째 딸인 내 이름은 ‘자(子)☆’이 되었다. 또, 다시, 딸이 나오자 아빠는 이름에 ‘아들’을 넣어 넷째도 낳을 것이고, 반드시 아들을 낳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표명했다. 그 이름이 주술처럼 효험을 발휘한 것인지, 하늘이 엄마를 불쌍히 여긴 것인지 넷째는 정말로 아들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의 상징과도 같은 ‘딸 셋, 막내아들 하나’의 가족 구성원이 완성되었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도망가고 싶었다


이름을 언제부터 싫어했는지 모르겠다.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나이부터 이름이 싫었다. 아빠는 자기 결정이 자랑스러웠던 건지 뭔지, 물색도 없이 어릴 때부터 내 이름에 담긴 히스토리를 수도 없이 읊어주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니. 내 이름이 다른 사람도 아닌 한심한 저놈을 위해 지어진 거라니. 성차별이니 페미니즘이니 하는 말도 아직 몰랐던 초딩 시절에도 엄청나게 열받는 일이었다. 내가 동생을 유난히 미워하고 괴롭힌 건 미안하지만 탄생 비화와 명명 비화 탓도 있었다.

이름이 김삼순이 아니어도 개명이 하고 싶을 수 있다.

자기 이름을 싫어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비참한 기분이다. 사춘기가 되어 남아선호사상, 성차별 같은 개념을 알게 된 뒤에는 내 존재와 이름 자체가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자☆이라는 이름만 보자면 특별히 촌스럽거나 특이하진 않다. 하지만 그 뜻과 목적은 너무나도 후지고 잔인하다. 끝녀, 말순, 필남 하는 인격 모독적 이름들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나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과 진심으로 동병상련을 느꼈다. 아빠는 ‘아들 자’를 마지막 글자에 넣을라다 엄마가 말려서 가운데로 넣었으니 다행으로 알라고 했다.


이름은 자신보다 타인이 더 많이 사용하는 명사다. 친구와 다른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나라는 사람은 고유하고 단지 의도치 않게 포장지가 좀 구릴 뿐이지만, 타인이 볼 땐 내가 곧 그 포장지로 보일 테니. 매일 매일 숨고 싶고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다. 이름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이름이 운명을 좌우하진 않더라도


아빠는 당연히 개명에 반대했고 난 딱히 조르지도 않았다. 그저 부모 동의 없이도 개명을 할 수 있는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대학 재수를 하면서 입학 전엔 새로운 이름으로 바꿔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철학원이나 작명소엔 가기 싫었다. 미신 때문에 남이 생각한 이름을 돈 주고 받는 건 어쩐지 멋없는 느낌이라. 남이 지어준 이름 때문에 불행했으니까, 내가 지은 이름을 갖고 싶었다.


근데 또 너무 아무것도 모르고 운 없는 이름을 지어서 나중에 조금이라도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수능 공부하며 틈틈이 성명학도 살짝 공부했다. 태어난 사주 오행에서 부족한 기운을 이름의 훈으로 채워주고, 길한 음과 획수를 맞춰주는 게 대애애애충 터득한 성명학의 원리였다.


1년 동안 이름을 짓고 고치고를 반복하다 수능이 끝난 겨울 개명을 신청했다. 요즘은 간단히 셀프 신청해도 승인이 잘 되는 편이라지만 그땐 아주 이상한 이름이 아니면 승인이 확실하지 않았기에 대행소에 서류를 맡겼다. 돈은 작은언니가 장하다고(?) 빌려줬다. 두어 달 지나 승인이 떨어졌고 내가 지은 이름으로 대학생이 됐다.


사실 이름이 바뀐다고 내 삶이나 운명이 획기적으로 바뀌진 않는다. 이름 때문에 될 일이 망하거나 안 될 일이 성공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어디서든 자기소개할 때, 누가 나를 부를 때, 작업하고 바이라인을 달 때 전과 달리 떳떳하고 뿌듯하고 평온하다는 것이다. 이 기분의 차이가 확실히 나를 달라지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 뿌듯한 이름이 내가 만든 결과물이라니! 이름이 운명을 바꾸진 못해도 자존감에는 확실히 영향을 준다. 직접 지은 이름이라면 효능감도 제곱이다. 개명 고려하는 사람에게 셀프 작명을 추천하는 이유다.

앤에 E가 꼭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내 이름엔 子가 절대로 없어야 한다. ⓒ NETFLIX

아빠는 몇 년 동안 나의 개명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선 개명 후 통보했기 때문인가. 아마 본인의 결정을 딸이 무시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잊을 만 하면 삼순이도 아닌데 좋은 이름을 왜 바꾸냐고 한소리 했다. 어이는 없었지만 대거리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이름이 진짜 내 이름이니까.


이름을 바꾸고 나서 진짜 내가 되었다. 아들이 아니어서 아쉬운 딸이 아니라, 비로소 그냥 나 자신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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