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시즌이다. 캐나다와 프랑스는 취소되었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를 돌아 그랑프리 6차전이 일본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여자 싱글 ‘유영’ 선수가 초청을 받았다. 11명의 일본 선수들 틈에 유일한 한국선수인 것이다.
쇼트 대회당일 아침에서야 소식을 접하고 종일 긴장하며 지냈다. 모처럼 열리는 피겨대회일 뿐만 아니라, 일본에 홀로 출전하는 무대라니 그녀의 긴장감을 조금은 나눠지고 싶었다. 이름붙이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한일전’이다.
유영은 27일 첫 날, 쇼트에서 「미션 클레오파트라」 OST에 맞추어 이집트 여왕으로 변신하겠다고 했다. 헤어와 의상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일본으로 건너가 자가격리를 마친 후 다시 링크장에 섰을 때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음악이 시작되기 전 고요해진 링크장은 그녀의 스케이트 활주소리만 쉬익쉬익쉭 크게 울려 퍼졌다.
음악이 흐르고 매혹적인 연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첫 점프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4회전도 가능한 선수인데, 3바퀴 반을 도는 트리플 악셀에서 넘어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점프도 무너졌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감을 수도 없었다. 3분 연기를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은 어디선가 보았던 익숙한 장면이었다.
2년 전에 피겨를 그만둔 아이의 발은 아직도 성하지가 않다. 굳은살과 함께 뼈에 기형이 왔고, 스케이트를 신을 때는 실리콘 패드를 끼워 넣어야 했다. 티눈은 말할 것도 없다. 그보다 아이는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는 말을 그만두고도 한참 후에야 했다. 놀이방 매트 두께의 패드를 엉덩이에 끼워도 소용이 없었다.
빙질 관리가 잘되지 않았던 그 해 여름, 점프연습 후에는 속옷까지 축축하게 젖어버릴 정도였다. 수업도중에 매번 장갑을 갈았는데, 벗어 던지고 간 장갑을 짜면 차가운 물이 줄줄줄 흘렀다.
잠든 아이 옆에 앉아 발가락부터 엉덩이까지 구석구석 주물러본다.
‘그래, 얼마나 아팠니?’
다음날 프리가 남아있지만, 메달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쇼트 최하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순서대로 펼쳐진 쇼트에서 유영은 12명 중 11번째였지만 다음날 프리에서는 첫 번째 순서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도 당차게 부담을 이겨내고 평소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종합 7위로 막을 내린 이번 그랑프리 6차전. 파이널을 앞두고 더욱 힘내서 연습해주기를 바란다.
이제 피겨 팬이자 우리 집 해설위원으로 거듭난 첫째.
‘아이야, 너는 나의 영원한 그랑프리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