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어느 구석에도 만족함이 없는 나의 문부정씨는 꾸준히 입사원서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덜컥 면접까지 통과하여 최종합격 연락이 온 곳은 광주광역시 첨단지구에 있는 회사다. 첨단 건너편에 친정이 있는 나는 대환영을 했다.
걸리는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장점을 볼록렌즈로 들여다보고 단점을 오목렌즈로 들여다 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왕이면 좋은 점을 부각하면서 긍정적으로 살고 싶다.
친정에 전화를 걸어 말씀드리니 잘됐다고 반기셨다. 마냥 좋아하시는 부모님께 아직 확실히 결정된 것은 아니니까 일단 모른 척 계시라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내 입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 내 오목렌즈에 비치는 군산에서의 아름다운 시간을 모른 체 할 수는 없다. 8년의 시간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감사로 가득하다. 막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큰 아이 피겨 스케이트도 삼 년 가까이 전주까지 다니며 여한 없이 시켜주었다. 손이 많이 가지 않은 둘째는 언니보다 키가 더 커버렸고, 지금쯤 나보다 더 클지도 몰라서 키를 안 재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엄마로만 살았던 나는 마흔을 앞두고 일어난 온갖 혼란과 우울을 다스리는 법을 찾았다. 한길문고 상주작가님을 만난 것이다. 작은 서점 지원사업을 통해 이렇게 자주, 다양한 작가님들을 만나는 삶을 살게 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읽은 책의 수보다 만난 작가님이 많은 달도 있다. 에세이 쓰기 모임을 통해서는 마감에 쫓기며 글을 쓰고, 어쩌다 보니 독립출판까지 경험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꿈만 같다.
2주 전, 최종 결정을 앞둔 문부정씨는 월차를 내고 광주에 갔다. 회사 상황도 파악하고, 걸리는 문제들도 확실히 확인해두고 싶어서였다. 광주로 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오목렌즈만 들이대고 보기에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직급이 낮아지는 데다 경력 인정도 되지 않아서 월급이 많이 줄어든다.
나는 렌즈를 바꿔 들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광주로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광주로 가느냐 군산에 가느냐의 문제로 다시 보였다. 그러니까 군산으로 처음 왔을 때를 떠올려 본 것이다. 부정씨는 내 설명을 듣자마자 그렇게 질문하니깐 명확하단다. 말하는 나도 그렇다.
첨단지구의 거리들과 도서관, 공원을 비춰보던 볼록렌즈로 군산을 들여다본다. 어쩐지 아까만큼 아름답지 만은 않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쿨하게 돌아서버리고 싶었던 얼굴들이 떠올라서다. 하필 상처주는 사람이 볼록렌즈에 잡힌다.
렌즈를 바꿔보자. 고향이라고 좋은 사람들, 마음에 맞는 사람들만 있었던가. 적당히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번갈아가며 들여다보고 그렇게 또 어우러져 살아야겠지. 반대로 부족하고 실수가 많은 나도 적당히 이해받으면서 때로 잊히면서 그렇게 살아가면 되겠지.
그럼 이제 다시 제대로 작별을 고하자. 광주 안녕. 잠깐이지만 덕분에 많이 설렜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