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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현수 Nov 19. 2020

10. 뜻하지 않던 성과

식물에게 자연의 시계를 돌려주다




작년 이맘때 머릿속에 그리던 일들을 떠올려보니 올해가 얼마나 일을 벌이기 어려운 해였는지 새삼 느낍니다. 클래스를 더 자주 열어보려던 계획도, 작은 작업실을 열어볼까 하던 구상도 허무하게 져버렸지만 개인적으로 ‘올해의 성과’라 여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작업 중인 식물들에게 자연의 시계를 되돌려준 것입니다.



집에 식물을 들인 분들 대다수가 그렇듯, 저도 제가 관리하고 작업하는 식물들을 대개 실내에 두고 지켜봐 왔습니다. 특히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엔 모든 식물을 실내로 들여놨고, 일평균 온도가 10도가 넘는 완연한 봄이 되어서야 안심하고 선별적으로 반실내(베란다/복도)에 내놓곤 했습니다. 식물 입장에선 혹독한 더위나 추위에 놓일 위험은 없지만 자연의 계절감은 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처음 이 일을 배울 때부터 실내 환경을 가정하고 흙이며 화기를 선택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지냈던 데에는 ‘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던 경험도 있습니다.



가령, 해가 뜨거운 날에는 잎이 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고 예상보다 흙이 빠르게 말라 불과 하루 사이에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날그날의 기온, 습도에 따라 관수가 필요한 시점이 끊임없이 달라진다는 건 그만큼 관리의 난이도가 높아짐을 의미합니다. 벌레도 문제였습니다. 실내라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봄에서 여름까지 습도가 점점 높아질 때는 실내보다 반실내(복도/베란다)에 둔 아이들에서 특히 벌레를 많이 탔습니다. 바깥에 두었다가 식물이 상해를 입는 경험을 단 한 번만 겪어도 어린아이 대하듯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관리자로서의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실내 - 반실내가 허용 최대치이던 제 식물들에게도 코로나 19가 찾아왔습니다. 작업실을 내볼까 하던 구상이 영 현실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자 주어진 공간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옥상을 적극 이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날이 풀리는 봄이면 복도에 내놓던 친구들을 올해는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잘 적응하는 게 보이니 자신감이 붙어 더 많은 친구들을 옥상으로 데리고 갔고, 그렇게 뜻하지 않던 ‘실외 적응 실험’이 시작됐습니다.



가장 크게 반응을 보인 건 고광나무(Philadelphus schrenkii Rupr.)였습니다. 2018년 봄에 제게 온 이 친구는 사계절을 무던하게 지냈지만 2019년에는 꽃을 맺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친구에게 초봄부터 비와 햇볕을 주자 잎의 밀도와 크기가 1.5-2배가량 증가했고 5월엔 흰 꽃이 피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구골나무 ‘사사바’(Osmanthus heterophyllus 'Sasaba'). 워낙 안정적으로 자라던 친구라 여러 가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새 잎이 나오는 모습이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포기해야 하나 싶던 동백나무 ‘쿠자쿠’(Camellia Japonica 'Kujaku')도 계속 새 잎을 내고 있습니다.



꽃을 낸 고광나무(좌)와 구골나무 ‘사사바’. 구골나무 ‘사사바’의 사진에서 형광 빛 연두색 잎이 모두 올 봄에 동시다발로 나온 새 잎.



의도하지 않은 야외 실험에 대부분의 식물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할 줄이야. 제한적인 빛을 보던 아이들이 이제야 살겠다는 듯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껏 적당한 햇볕, 안정적인 환경을 지향했던 것이 무안해졌습니다.



과거 제 공간에 방문했던 친구가 “참 네 식물들도 너 같다”라고 말했을 때 어떤 의미인지 몰라 그냥 흘려들은 적이 있습니다. 안정적이고 과하지 않은 것을 선호하는 관리자, 그 아래에서 자란 아이들에게서 느껴진 차분함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의연한 식물들은 자연의 시계에 맞춰 잎의 색을 바꿨고 관리자인 저 역시 그 덕분에 올해 계절의 변화를 가장 실감 나게 느끼고 있습니다. 실내 환경뿐 아니라 실내/외 환경 모두에서 식물을 관리하는 감은 덤으로 얻은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이 즐거움을 겨울에도 지속하고자 옥상에 작은 온실을 설치했습니다. 식물들의 겨울 이야기도 이곳을 통해 차차 공유해보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모든 식물이 강한 햇볕과 비바람을 견딜 수 있거나 선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작업 중인 식물 중에서도 다시 실내로 들여온 친구가 있습니다. 관리 중인 식물이 빛을 얼마나 선호하는지, 거친 환경에는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겨울엔 몇 도까지 월동이 가능한지 따져보고 그에 적합한 공간에 비치하실 것을 권장합니다.


정확한 정보 검색을 위해서는 정확한 학명을 아는 것이 첫 번째이며, 안내해 드린 바 있는 국립수목원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외에 농촌진흥청 운영의 웹사이트 <농사로>에서도 ‘광요구도’, ‘배치 장소’, ‘물주기’ 등 관리자가 알아야 할 필수 점검 사항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학명을 찾는 방법에 관한 포스팅


*언급된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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