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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현수 Mar 01. 2021

17. 사진으로부터

이야기의 시작일지도 모를 순간들


저에게는 대학생 때부터 즐겨온 취미가 하나 있습니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한두 계절 지나 현상해보는 것. 찍을 땐 별게 아니었어도 그렇게 시간차를 두면 꼭 선물 같은 순간으로 느껴졌습니다. 대학생 때 교양 과목으로 택한 사진 수업 중 학과 사무실에서 실습용으로 빌린 필름 카메라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졸업 후 일을 시작하고도 필름은 계속 쌓였습니다. 학생 땐 필름을 구입하고 현상하는 비용이 부담이라 욕심껏 찍지 못했는데 취업 후엔 출사 횟수는 줄었을지언정 현상된 사진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에게도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고민스러운 때가 왔고, 한 친구는 지금껏 찍은 사진을 좀 살펴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했습니다. 필름을 구입하고 촬영해 현상하는 수고로운 과정을 감안하면, 대략 이런 말과도 같았습니다. “한 컷 한 컷 신중히 찍은 결과들이니 네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붙든 곳이 어디였는지 보렴.”




 

 

 

 

 

 



사진 속에는 다양한 계절에 서있는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이 발견으로부터 약 3개월 후 가드닝 공부를 시작했고, 다시 그로부터 3년이 흐른 후 개인적인 식물 작업과 더불어 가드닝 클래스, 식물을 주제로 한 글쓰기가 자연스레 이어져 왔습니다.



"언제부터 식물을-"로 시작하는 질문에 깨끗한 답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래전 나무를 사진 속에 담기 시작했을 때. 그 사진들을 보며 식물이라는 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던 때. 가드닝 수업을 듣기로 결심하던 때. 많은 '때' 중에 언제를 콕 집어 이야기하는 건 그저 결과론적인 의미 부여 같아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을 파고들다 보면 카메라를 막 들고 다니던 시절부터 이어진 식물 사진들이 있습니다. 언제가 처음이라 단정하긴 어렵지만 식물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이 사진이기 때문에 작업의 시작점을 식물 사진이라 여깁니다.



식물을 공부하기 전/후 식물 사진에 변화가 있다면 좀 더 식물의 줄기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줄기는 나무가 지나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면서 계절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곳. 단단한 줄기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가지들을 보면 뼈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선과 선으로 이어진 나무의 형태를 이해하는 것이 식물 사진에서도 식물을 만질 때에도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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