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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현수 Apr 12. 2021

20. 식물의 속도

Speed / Plant



최근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지인을 만났습니다. 그 도전을 위해 수강하는 전문 교육 과정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20대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그 도전을 더 힘들어하더라는 얘길 해주셨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으면 도전이 더 가벼울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더라는 겁니다. 오히려 그보다 열 살 이상 많은 자신보다 더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도 더 많이 받는다며, 이런 이야길 하셨습니다.


“이 코스를 수료한다고 해서 바로 성과가 생기진 않잖아요. 성과는 그 이후에 자기가 만드는 거지. 근데 이 친구들은 과정을 수료하면 바로 어떤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더라고...”


대화 속에서 약 5년 전 가드닝 전문가 과정을 듣기 시작한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5 , 20 마지막 해를 보내던 저에게는 가드닝이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회사 일만으로 미래를 가꿀  있을까 의심했었고 회사 일에서 빠져나와  곳도 필요했습니다.  대상을 찾던 제게 식물은  맞는 해답처럼 다가왔고(관련 : 사진으로부터)  6개월에 걸친 교육 과정 내내 희망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전문가 과정이니까  과정을 마치면 전문가로서 바로 일을 시작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겁니다.


전문가 과정 마지막 수업에서 선생님은 “앞으로도 진도 체크할  종종 만나요라는 작별인사를 건네셨는데, 당시에는 무슨 '진도' 말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브랜드 이름을 고민하는   개월, 고심 끝에 겨우 이름을 정해 SNS 시작하길  개월. 그때가 돼서야  '진도' 이런 진도를 얘기함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자본이 투입된 복합 문화 공간이 저와 같은 이름을 용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은 건 이름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가정환경에 적합한 식물을 추천/제공하는 시범 서비스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테스트해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어떤 증상을 보이다가 죽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으로는 미안했지만 머리로는 많이 배웠습니다. 식물을 제 개인 공간에서만 테스트해보다가 환경이나 인테리어 조건이 다른 여러 공간에서 테스트해볼 수 있던 기회이니 아주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가격 책정을 잘하지 못했고 정식 서비스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전문가 과정을 마칠 때 그렸던 건 브랜드 론칭과 동시에 저만의 서비스를 선보이는 모습이었는데, 현실은 몇 해가 가도록 이름도 없이 시범 서비스 수준에 머무른 겁니다.




변화는 계절이 바뀌듯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오래 고민해온 브랜드 이름을 한번 포기하고 나니 거창한 브랜드명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어두운 마음으로 한동안 손을 고 지내다, 실질적으로   있는 것부터 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겨우 정신을 차린 ,  이니셜 hsl 작업을 뜻하는 works 붙여 'hslworks'라는 이름을 걸고 블로그 열었습니다. 그리고 여태껏 작업해온 식물을 하나하나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기록을 남기다 보면 지나온 과정들을 스스로 돌아보는 기회도 될 테고 그러면 하고자 하는 일에 관해 좀 더 그럴싸하게 대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됩니다. 식물이 그러하듯, 정체되어 있는 듯 보여도 자신만이 눈치챌 수 있는 속도로 움직이는 저의 한 걸음 한 걸음을 기록해보겠습니다.


브런치 연재(프롤로그)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네이버 블로그가 작업물을 정리해두는 포트폴리오 성격을 갖는다면 브런치는 그 뒷이야기를 해보자는 정도로 결을 나누기만 했습니다.


 야욕 없이 써둔  '기대' 차츰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작업해온 식물을  소개하려다 보니 식물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게 되었고 그렇게 촬영해둔 사진을 활용해 온라인 몰을 열었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일들을 소개하다 보니 '식물 디자이너' 보다는 '식물 작업자'라는 표현이 말맛을  살려준다는 것을 깨닫고 소개글을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결실은 글을 써 내려가며 ‘브랜드명' 정하게 된 겁니다.




식물의 속도 (Speed / Plant)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식물을 대상으로 하기에, 오래 지켜보고 신중히 작업합니다.


가정해봤습니다. '만약 예전에 정한  이름을 뺏기지 않고 그대로 썼다면 어땠을까?' 오래 고심해서 지었다해놓고 황당하게 들릴  있지만, 정말 만에 하나 그랬다면 너무 창피할  같았습니다.  안에  콘텐츠가 전혀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미는 좋았지만 결국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으로 오래 해왔던 작업에 대한 생각을 비로소 하나의 이름으로 담을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아주 오래 걸렸지만 스스로에게 당당한 이름이어서 다행이라 여깁니다. 이제는 hslworks가 아닌 '식물의 속도'라는 브랜드 이름으로, 하지만 늘 그랬듯 식물의 속도로 유유히 작업해 보겠습니다.








연재는 계속되지만, 새로운 매거진을 통해 인사드리려 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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