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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현수 Mar 26. 2021

19. 엄마의 식물

방울토마토와 스파티필름



저의 어머니 말로 “막대기를 꽂아도 꽃이 핀다”는 봄입니다. 정말로 막대기 같기만 하던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연녹색 여린 잎과 분홍 꽃잎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저의 어머니는 고추 모종이든 상추 씨든 ‘키워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사 와 옥상에 심으시는데, 제가 식물을 다루는 일을 시작하고 난 언제가 부터는 ‘키워도 먹을 수 없는’ 식물을 사 오셔서는 불쑥 분갈이를 맡기셨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계절이 왔고, 어머니는 이번엔 스파티필름 두 포트를 내밀며 옥상에서 놀고 있던 큰 화기에 합쳐 심어 달라 부탁하셨습니다. 응? 하는 표정을 짓자 “이런 건 네가 잘하잖아, 부탁해!”라는 말로 응수하시는 어머니. 



처음 가드닝을 배운다 했을 때 어머니는 제가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건지 정확히 이해를 못하셨고 그저 당신의 시아버지를 닮아 ‘얘가 식물 돌보는 걸 좋아하나 보다’ 싶으셨답니다. 때문에 어머니가 처음 그런 부탁을 하셨을 때는 드디어 이 일의 전문성을 인정하신 건가 싶어 내심 기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식물 작업 때문에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즐거워도 하는 제 모습을 보며 단순한 취미 활동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듯 보입니다. 작년 말, 제가 그간 촬영해온 식물 사진으로 만든 엽서를 정식으로 스마트 스토어에 등록하자 가장 먼저 구매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에게 팔아주시겠다며 몇 개 더 달라는 귀여운 청과 함께.



저에겐 아직도 미스터리인 것이 어머니가 심는 식물들입니다. 먼저 흙. 제가 신경 써서 보기 전에 어머니는 집 앞 공원에서 대략 흙을 퍼와 기존 흙에 섞어 사용하셨습니다. 막흙을 쓰면 벌레도 있을 거고 영양도 적으니 살균되고 영양도 잘 배합된 분갈이용토를 쓰라고 권해드렸습니다. 당연히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고 ‘어디 한번 해줘 봐’ 하는 시선이었습니다.



눈으로 보여드리면 되겠다는 생각에 같은 식물을 어머니가 쓰시던 흙, 제가 사용하는 흙에 각각 심고 저 혼자만의 임상에 돌입했습니다. 결과는 참패. 상추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무슨 일인지 어머니 흙에서 자란 아이들이 훨씬 크고 빠르게 자랐습니다. 이제는 어머니께 흙을 권하지 않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스티로폼 화분도 늘 눈에 거슬리는 존재입니다. 농사를 망치든 말든 매해 열심히 무언가를 기르시기에, 화훼시장에서 텃밭용으로 나온 긴 화분을 사다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스티로폼을 버리시겠지 기대하고 지켜봤지만 매년 거기서 길러진 방울토마토나 고추가 식탁에 다시 올라옵니다.



어머니는 이런 제 얘길 들으면 “마음껏 햇빛 보고 비 맞으며 자라니까” 하고 웃으시지만, 한번 임상에 실패하고 난 뒤 어머니와 저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식물은 건드리지 말자’는 약속이 생긴듯한 느낌입니다. 각자 물을 주는 주기와 방식이 달라 서로의 식물에는 흙이 쩍쩍 갈라지는 정도가 아니고서야 물도 주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새로 부탁하신 스파티필름은 당연히 제가 쓰는 흙과 제가 추천하는 화기에 심겼습니다. 해둔 걸 보시고는 역시나 더 큰 화기를 썼어야 한다고 또 한 마디 하셨습니다. 이번엔 잘 자라줄까요? 부디 그러기를 바라며 봄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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