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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샬장 Nov 20. 2019

봄날의 고래를 본 적이 있나요.

고래 매니아임을 자처한다.


특별히 버킷리스트와 같은 것을 정해놓고 지내본 적은 없다. 남들은 하고 싶은 것을 빼곡히 적어놓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에 어떤 희열을 느끼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 몇 가지로 한정 짓는 것도 싫고 버킷리스트란 단어도 낯간지럽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나 염원이라고 할만한 몇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우선순위라 할 수 있는 것은 뭐니 뭐니 '눈 앞에서 고래 보기'일 것이다.  

나의 고래 사랑은 유별나서 주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지경인지라 만화를 그리는 친구 하나는 나에게 고래를 타고 있는 나의 모습을 캐릭터화해서 선물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 캐리커쳐는 지금 이 곳 브런치의 프로필 사진을 비롯해 온라인상의 모든 곳에 쓰이고 있다.


얼마 전엔 아이가 선물 받은 3D 펜을 뺏어다가 처음 만들어본 것이 돌고래 조각상이었고, 고래로 만든 굿즈나 액세서리라면 사족을 못쓰고 군침을 흘리는 탓에 공공연한 고래 덕후라고 불리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다. 그럼에 불구하고, 고래를 직접 본다는 것을 시도해본 적은 없다. 고래란 동물은 어쩐지 나에겐 비현실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제주의 서쪽으로 가면 돌고래를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을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난 지극히 동물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집에는 주워온 개와 고양이를 길렀었고, 주위에 분양을 해왔다. 그렇게 온 동물들은 천수를 다할 때까지 살았으며, 나의 친구였다. 하지만 그럼에 불구하고 난 근래 꽤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인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 관해서 관대한 입장이다.


동물원의 기원은 무려 1752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올라간다. 왕족의 관상용으로 만들어졌던 동물원은 이후로 동물의 보호, 연구, 교육, 관람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세상에 지어지게 된다. 나는 나의 아이가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그리고 책과 TV를 통해서만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마주하고, 경외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나의 유년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꽤 큰 아쿠아리움이 있었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었던 그 아쿠아리움은 나에겐 놀이터였다. 그리고 그 아쿠아리움에서 자란 나는 바다와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성장을 했다.


아이에게 사라져 가는 빙하에 고통받는 북극곰을 설명하기 위해 북극을 함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플라스틱에 고통받는 바다거북이를 설명하기 위해 가이아나의 바다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물이 닫힌 공간에서 받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관해 모르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는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냐며 비난을 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동물로 어떤 방식으로든 이득을 취해왔고, 동물원 사업도 사라지기 힘든 사업의 형태일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이 동물의 보호와 교육과 같은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는 형태로 이용해야 하는 것이 오히려 옳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이제 제법 물고기 이름을 외울 수 있게 된 아이는 아쿠아리움을 다녀와서는 입에 '바닷속 친구들'을 외치며, 물고기 장난감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의 그 경험이 희석되기 전, 나는 아이와 함께 돌고래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제주의 서쪽에 위치한 동일리 포구로 갔다.

  

제주의 서쪽을 가다.


동일리 포구에는 '디스커버 제주'라는 업체에서 돌고래 탐사선을 만들어 돌고래 탐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제주 토박이 노련한 선장의 인도로 80% 이상의 확률로 돌고래를 목격하는 것이 가능하고, 탐사 실패 시 재탐사의 기회를 준다는 것도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제주의 돌고래는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로 제주 전역에 약 100마리가량이 서식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연안에 서식하는 특성 덕분에 운이 좋은 사람들은 몇 번이고 마주쳤다는 제주의 돌고래를 나는 마주한 적이 없다. 낚시를 배워 한동안 열심히 낚시를 한 탓에 바다를 바라보다 혹여라도 마주칠까 기대를 해봤지만 어쩐 일인지 나에게만은 그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다.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아이와 함께 난 행운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포구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듣고는 배에 앉았고, 배는 꽤 빠른 속도로 바다를 갈랐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시간이 흐를수록 실제로 고래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내 가슴은 속절없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달렸을까? 이내 배의 엔진이 꺼지고 선장이 바다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눈을 가늘게 뜨자 저기 멀리서 몇 개의 검은 점이 바다 위로 올라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것 같다.   

 

그건 야생 돌고래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아이도 연신 '아빠, 고래.'를 외친다. 선장은 돌고래를 위협하지 않고, 배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돌고래 무리의 측면에서 기다리자고 했다. 그건 선장의 노련함 이전에 돌고래를 보호하는 단체에서 정한 규약인 듯했다. 선장은 사람을 좋아하고, 궁금증이 많은 돌고래의 특성상 배의 곁으로 올 거라며 사람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돌고래 떼들은 이내 배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마주한 돌고래들은 생각보다 컸으며, 수족관 안에선 볼 수 없었던 우아한 움직임으로 배 주위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등이 수면 위로 나올 때면 깊은 숨을 몰아쉬며 물줄기를 뿜어댔고, 사람을 보려는 듯이 고개를 빼꼼하고 내밀어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듯이 배의 아래를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했고,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지근거리에 있는 돌고래의 움직임에 혼을 빼앗길 지경이었다. 쉴 새 없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지만 미천한 실력으로 돌고래의 움직임을 따라가기란 역부족이었다.


고래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카메라 뷰파인더 안으로 돌고래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나를 사진으로 담기가 쉽진 않을걸?'이라며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나를 보고 장난치는 듯한 그 돌고래의 표정이 얄밉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의 남방돌고래들은 제주의 방언으로 수애기라고 불리며 제주 사람들에게 친숙한 존재였고, 제주의 해녀들에게 종종 장난을 거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실 제주의 해녀들은 수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열심히 물질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툭툭하고 쳐서 돌아보면 돌고래가 장난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언뜻 낭만적으로 들릴 이야기지만 제주의 남방큰돌고래의 성체는 2.6m에 이른다. 심지어 물속에선 물체의 크기가 1.4배 크게 보이니 2.6m의 돌고래는 물속에서 3.6m로 보이게 된다. 그 거대한 생명체가 뒤에서 툭툭 치는데 어느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해녀들 사이에는 홀로 떨어진 수애기를 보면 상어가 나타날 징조이니 어서 자리를 피하라는 이야기도 전해져온다고 한다. 근거가 밝혀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만큼 제주 사람들에게 제주의 남방큰돌고래는 친숙한 존재였다.


여담이지만 제주의 낚시꾼들도 제주 돌고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돌고래가 나타나면 바닷속 물고기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도망가기 때문이라는데, 나처럼 어복 없는 사람들은 돌고래가 없어도 제대로 된 물고기를 낚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니 확인은 불가능하다.


처음 탐사선을 마주했을 때는 생각보다 작은 배의 크기에 믿음직한 인상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기동성을 가지고 돌고래의 등을 쓰다듬을 수 있을 듯 가까이 마주할 수 있는 배라는 것을 알고는 이 배가 탐사선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큰 배 위에서 돌고래를 내려보는 것으로는 이 감동을 마주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한참을 돌고래를 쫓아 셔터를 누르기를 반복했다.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 가운데서 기껏 건진 사진은 돌고래 등짝 사진 몇 장이 전부다. 바다에서 춤을 추는 돌고래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역동적이었으나 카메라에 담지 못해 내심 아쉬웠다. 그런 마음을 읽은 듯이 선장은 '찍기 어렵죠? 어째 큰 카메라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일수록 돌고래 모습은 못 담아내더라고요.'라며 웃어 보인다. 돌고래를 마주하기 전에는 카메라를 챙기며 도감에서나 봤을 법한 돌고래 모습을 찍어야지라고 자신감 넘쳐했는데, 앞에서 펄쩍 뛰어오르는 돌고래를 보며 오래간만에 불타오를만한 피사체를 만났다는 느낌이 온다.


이 기억이 각인되길 바란다.


실제로 마주한 야생의 돌고래에게선 빛이 났다. 실제로 물에 젖어 반들반들한 등은 햇살을 받아 빛이 났으며, 이따금 마주치는 눈 속에서도 활기에 넘쳐 빛이 새어 나왔다. 돌고래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나를 붙들고 밀당을 하였고, 돌고래를 마주하고 있는 시간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몽롱하게 지났다.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지 모른다는 속담이 있었던가? 돌고래는 나를 홀렸다.


위에서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의 존폐와 관련해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언급했었다. 내가 봤던 돌고래 무리 가운데는 불법 포획되었다가 풀려난 7마리 돌고래 가운데 한 마리가 함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야생 상태에서 40년을 살아가는 돌고래가 갇혀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4년 남짓밖에 살지 못하는 것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 순기능을 활용하자는 의미인 것이다.



지금은 연신 바닷속 친구들과 돌고래를 외치고 다니는 이 아이에게 이 날의 기억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이 남아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날 이 아이에게 돌고래는 수조 속 비현실에서 바닷속 현실이 되었고, 그게 기억 끝자락에라도 남아 작은 파장을 일으켰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면 욕심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야생의 돌고래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며, 계속 아름다운 존재로서 남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제주에서 꿈에 그려오던 야생의 돌고래를 마주했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그 순간은 아름다웠으며, 언젠가는 혹등고래와 흰수염고래까지 실제로 만날 수 있을 거란 고래 덕후로서의 희망이 생겼다.


꽤 쌀쌀해졌다. 하지만 고래를 만났던 그 순간은 찬란한 봄날이었다.

'봄날의 고래를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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