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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샬장 Dec 14. 2022

어설픈 캠핑과 일출


친구와 술을 한 잔 마실 생각으로 외박을 통보하고 나왔다. 도시에서 살던 때야 조바심을 느끼면서도 한 잔 더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결국 TV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야 들어가 눈총을 받기 일쑤였건만, 시골 살이의 외박은 방구석에서 지인들과 술 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을 청하고는 아침에 슬그머니 돌아오는 것이니 고작이니 오히려 걱정할 것이 없다.


노총각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친구는 고양이와 잡초가 가득한 마당에서 콜록거리며 숯에 불을 붙이고 있다. 나름 캠핑 분위기를 내겠다며, 화롯대와 랜턴까지 갖다두었건만 캠핑용품 매니아인 나의 눈에는 어설프기 그지없다.


전구가 가득한 작업실에서 굳이 가스 랜턴으로 조명을 켜고, 캠핑용 의자와 테이블을 꺼내어 쓰고 있는 나는 자칭 '캠핑용품' 매니아이지 '캠핑' 매니아는 아니다. 진짜로 야외에서의 캠핑은 엄두도 내지 못하면서 기분만 낸다고 캠핑용품을 애지중지하는 나의 모습이 진짜 캠핑 매니아의 눈에는 얼마나 어설플까?


진짜 캠핑 매니아가 곁에 없는 김에 친구에게 랜턴은 무엇을 쓰고, 랜턴 걸이가 어쩌고 저쩌고부터 시작해서 장황한 일장 연설이 들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는 눈 앞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이 탈까봐 걱정인지 한 눈에도 내 이야기가 잠시도 귀에 머물지 않는 것이 보인다.


포기하고 상추 위에 삼겹살과 쌈장을 얹어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소주를 입 안으로 털어넣는데, 빗방울이 어렵게 피운 숯 위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둘러보니 파라솔이 잡초에 묻혀 속절없이 마당 한 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고기 위에 우산을 펴고 쪼그려앉아 지나가는 소나기이길 빌어보지만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결국 어설픈 캠핑은 그렇게 황급히 끝나고 말았다.


친구의 집 안으로 들어가 비를 털어내고는 TV에 초점없이 눈을 고정시킨채로 남은 음식과 술을 마시려니 흥이 나질 않는다. 할 것도 없는데 잠이나 자자고 쇼파 위에 벌렁 드러누우니 고작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올빼미형 인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잠을 이룰 수 있는 시간도 아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는 우리 집 아이도 안자겠다.'라고 친구에게 투덜거리는 것을 마지막 기억으로 순식간에 잠이 들어 깨어보니 새벽이다.


손을 더듬어 불을 켜보니 친구는 먹던 것과 비에 젖은 식기들을 모두 정리하고 잤는지 깔끔하다. 더 자는 것은 힘들 것 같아 자는 친구를 깨우지 않고, 슬그머니 친구의 집에서 나왔다. 잠시 차로 달리자 멀리서 동이 터온다. 점점 밝아지는 바다를 마주하고 차를 잠시 멈춰본다. 언제나 일출은 낯설다. 간밤의 비구름이 지나가는지 해는 구름에 가렸지만, 그 사이로 비추는 햇살의 모습이 꽤 아름답다.


친구의 캠핑과 바베큐는 그렇게 끝이 났고, 다시 차에 올라 뜨는 해를 뒤로 하고 어설픈 캠핑 용품이 가득한 작업실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전날의 어설픈 캠핑은 어쩐지 그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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