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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샬장 Dec 17. 2022

고양이 버스가 왔으면 좋겠어

 


어린 시절, 비디오 대여점에 어머니를 따라가 만화영화를 빌려 보는 일은 일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에 하나였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작은 사내아이가 유일하게 조용해져 쉴 수 있는 시간이 바로 그때였다는 것을 지금의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어주며 유튜브를 틀어주는 아내를 바라보며 이제야 이해한다.


그때의 영웅들이 여전히 기억 속 깊이 새겨진 탓인지 아직까지도 취향이 당시의 수준에서 멈춰버린 나는 여전히 만화 영화를 좋아하고, 장난감에 집착하는 몸만 커진 어린아이가 되었다.   


저작권의 개념이 빈약하던 80년대에서 90년대를 이르는 시기의 국내 콘텐츠 시장은 온갖 조악한 해적판이 난무하던 시절이었기에 추억이란 핑계로 애정하던 브라운관 속의 캐릭터들의 장난감을 사모으는 이제야 제대로 된 이름을 알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본 문화가 본격적으로 개방되던 90년대 중후반은 마침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인데, 당시에 청계천과 용산 등지에서 누군가 구입해온 조악한 화질의 불법 복제 비디오테이프는 온 학급을 1년 내내 돌곤 했는데, 어서 내 차례가 오길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당시 비디오테이프 안에 들어있던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들은 무척 인상 깊었고, 이 스튜디오의 창립자의 손을 거쳐 어릴 때 보았던 '미래소년 코난'이나 '엄마 찾아 삼만리', '플란더스의 개'와 같은 만화 영화들이 만들어져다는 것을 알았다. 이 당시에 봤던 화면 속의 모습들은 감수성 깊숙이 꽤 깊게 각인이 되어 이미지 제작자가 된 지금에도 프레임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스스로도 깨닫는 경우가 꽤 잦다.     


어쩐지 나의 아이에게도 비슷한 기억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 종종 TV에 그 당시의 만화 영화들을 틀어놓곤 하는데, 아이는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화려한 화면과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는 것을 더 즐거워하는 것이 눈에 보여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밤의 시골길을 가다가 밝게 빛나고 있는 버스 정류장을 발견했다. 아이에게 '저기 버스 정류장을 봐봐. 멀리서 고양이 버스가 오고, 마치 토토로가 나올 것 같지 않아?'라고 물었건만 아이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마침 곁에 카메라가 있길래 사진을 한 장 찍고 돌아오니 아이는 그새 잠이 들었다.


어쩐지 뽀로로보단 토토로가 기억 속에 남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평화롭게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아이가 좋아하면 그만이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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