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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샬장 Dec 19. 2022

밤하늘의 별 빛 같지 않니?


종종 지인들과 누가 더 아름다운 밤하늘을 마주한 적이 있냐며 티격태격할 때가 있다. 대체로 밤이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다가 거나하게 취해 술집 밖에서 마주한 밤하늘을 보며 나누는 이야기이니만큼 자신이 예전에 봤던 밤하늘이 더 멋졌다며 우겨대기에 쓸데없이 언성이 높다. 어쩐지 그 대화의 끝은 누가 더 멋진 해외여행을 하면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봤냐는 형태로 변질되곤 한다.  


근데 그게 술에 취해 내뱉는 쓸데없는 소리라고 치부하기엔 근거가 없지도 않다. 한국은 대체로 산악 지형을 피해 사람들이 밀집해 도시 형태를 이룬 곳이 많기 때문에 도시에서 뿜어내는 빛으로 인한 '광해(光害 혹은 빛공해)'를 일반적인 주거 형태에서는 피하기가 쉽지 않다.


땅덩이가 좁은 나라라서 그렇다고 치부하기엔 사실 한국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지도의 도법 때문에 작아 보이는 것이지 사실 그리 작은 나라도 아니다.(한국은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같은 국가보다 2배 이상 넓은 국토 면적을 가지고 있다.) 다만 광해를 피하기 위해선 도시를 피해 높은 곳을 올라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관측자스러운 면모를 갖추지 않고는 해외에서 보았던 만큼의 별을 보기 쉽지 않은 것이 그 이유다.


내가 가장 많은 별을 보았던 순간은 수능을 막 마치고, 실기 시험을 기다리던 시기였다. 친구가 간단한 아르바이트나 하자며 불렀는데, 그 아르바이트는 단역 배우를 하는 것이었다. '커피숍에서 커피나 한 잔 마시는 시늉을 하거나 길거리를 걷는 시늉만 하면 TV에 얼굴도 나오고 돈도 벌 수 있단 말이지?'라고 생각했는데, 여의도 방송국 앞에 집결하자마자 코에 가짜 수염을 잔뜩 붙이고는 관광버스에 태워져 끝없이 달려 어딘지도 모를 산속에 내려졌다.


대충 맞는 낡은 옷을 입고, 창 하나를 쥐고 보니 내가 맡은 배역은 대하 사극의 번호도 없는 수많은 신라 병사 중 하나였다. 성벽 위에서 쳐들어오는 고구려 병사들을 보면서 함성을 질러대는 것이 연기의 전부였는데, 그래도 저 뛰어야 하는 고구려 병사를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대기를 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렇게 추운 날씨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기약 없는 대기를 하며 오들오들 떨면서 보았던 하늘에는 쏟아질 것만 같이 가득한 별들이 빛나고 있었고, 은하수는 당장이라도 물고기가 튀어 오를 듯 선명하게 강을 이루고 있었다.


청춘에 대한 고민에 괴로웠다지만, 사실은 반짝반짝 빛나던 그 시절이 투영되어 기억이 포장되었다고 하더라도 괜찮다. 나에게는 사하라 사막의 밤보다 문경 어딘가 산 위에서 보았던 그날의 밤이 더욱 아름다웠던 평생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곳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광해에서 자유로운 곳은 아니다. 어두워지면 멀리 밤바다에는 하나, 둘씩 고기잡이 배의 불빛들이 켜지는데, 그 빛이 모여 밤하늘의 별들보다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면 별들은 모습을 감춘다. 다만 그 모습이 광해라고 부르기엔 꽤나 예뻐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별들처럼 보이는데, 아이와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종종 멈춰서 그 모습을 함께 보다가 오곤 한다.


아이도 혹시 시간이 지나 이 순간을 기억할 때면 기억이 미화될 만큼 특별했던 한 때로 기억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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