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고향을 이야기할 때가 있는데 이 고향이란 한 단어에 누군가는 태어난 곳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집 안 대대로 살아온 곳을 이야기하기도 해서 어디를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가 항상 고민이다.
나는 대부분 아버지가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이야기하는 편인데, 어쩐지 고향을 이야기하며 빽빽한 빌딩이 가득한 도시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시골이 고향이라고 이야기하면 "아, 그런 곳에서 자랐단 말이지?"란 반응을 보는 것이 더 그럴싸한 것 같다는 이유이다.
사실 내가 고향이라고 부르는 그곳은 드문드문 방학 때나 가끔 내려갔던 곳인지라 아주 작은 단편으로만 기억이 남아있는데, 몇몇 마을 풍경들은 유독 문득문득 떠오른다.
간식을 사러 가기 위해선 시끄러운 기계가 돌아가며 매캐한 고춧가루 냄새를 풍기던 정미소를 귀를 막고 지나야 했고, 옛스러운 취향의 과자들 몇 개만이 매대 위에 듬성듬성 놓여있던 가게에서는 신중하게 간식을 하나 고르고는 '여기요.'를 몇 번을 외치야 뒤편의 미닫이 문이 열리며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오는 할머니에게 동전을 건넬 수 있었다. 그렇게 산 과자며 아이스크림을 들고 맞은 편의 시골 학교 운동장, 논밭 옆에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있던 작은 개울에서 뛰놀던 기억은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유년의 아련함이다.
헌데 막상 떠올려보면 오랫동안 간직해오며 고향이라 이야기하는 곳에서의 이 기억들은 고향의 어르신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며, 그마저도 갈 일이 사라져 유년 시절의 몇 년, 몇 번의 방학 안에서 며칠에 불과한 경험으로 멈춘 짧은 기억에 불과하다.
그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으쓱대며 시골이 고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유년 시절 기억의 시시콜콜함은 생각보다 소중할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가장 번화한 곳에서 태어나, 도시의 가장 번잡한 곳에서 자라다 지금은 시골 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아이는 시간이 지나 자신의 고향을 이야기할 때, 과연 자신의 고향을 어디라고 이야기할까?
고향(故鄕)
1.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
2.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3.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4.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한 곳. (표준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