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이정모 관장님의 신간이다. 이정모 관장님 말씀이 본인이 과학과 관련 없는 일을 한다면 일 년에 한두 권 정도는 과학 교양서를 읽는 것을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꾸준히 과학 관련 책을 읽으려고 하고, 이왕이면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어 골랐다. 관장님 특유의 유머가 가득해 키득거리며 읽게 된다.
교감 선생님이 교장이 되려면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조건은, 교장이 물러나야 한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려면 원래 있던 것이 사라져야 한다. 생태계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려면 누군가가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바로 '멸종'이다.
찬란한 멸종
“소설보다 재미있고 다큐보다 감동적이다!” 책소개의 첫 문장이다. 인공지능, 범고래, 산호초, 네안데르탈인 등 다양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이 일인칭 시점으로 인류의 멸종, 지구 온난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을 이야기한다.
인간들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말할 때마다 빙하가 녹아서 굶주리게 된 동물들을 걱정한다. 참 재밌다. 펭귄 걱정해 주고, 바다표범과 우리 범고래 걱정을 해준다. 고맙다. 그런데 우리는 당신들이 더 걱정이다. (p 75. 2024년 범고래가 말하는 지구 온난화)
모든 물질은 고체보다 액체의 부피가 크고, 액체보다 기체의 부피가 더 크다. 그런데 물은 액체인 물보다 고체인 얼음의 부피가 더 크다. 즉 빙산이 녹으면 해수면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진다. 그런데, 빙산이 녹는 상황이면 육지 위에 있는 얼음도 녹는다. 지구에 있는 대부분의 얼음은 육지에 있다. 육지 얼음이 녹으면 그대로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진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비만, 탈모, 그리고 자폐
5~6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교배가 집중적으로 일어났고 이때부터 이 사이에 유전자가 교환되었다. 현대인의 몸속에 남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비만, 탈모, 그리고 자폐이다. 뛰어난 사냥꾼이었던 네안데르탈인은 먹을 것이 있을 때 잔뜩 먹어 몸에 지방을 쌓아둘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야 평소에 적게 먹어도 생존할 수 있다. 이 유전자가 현대인의 비만과 당뇨를 일으킨다. 전 세계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없는 아프리카의 일부 종족에게는 대머리가 없다. 바로 대머리 유전자도 네안데르탈인에서 왔다는 것이다. 또한 네안데드탈인은 사회성이 상당히 떨어져 항상 작은 사회만 구성했다고 한다. 자폐 유전자도 이들에게서 왔다.
유아기의 중요성
네안데르탈인은 뇌도 크고 언어생활을 했는데 왜 빙하기를 보내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살아남고,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을까. 여러 가지 가설이 있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기대수명'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구석기시대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지만, 대신 유아기를 지나면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크로마뇽인은 60~70세까지 수명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네안테르탈인의 기대수명은 30~35세였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열 살쯤 어금니가 나오지만 네안데르탈인은 여섯 살에 어금니가 나온다. 사춘기도 빠르다. 유년기가 짧은 것이 바로 네안테르탈인의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유년기는 부모의 보살핌 속에 사회 규칙을 배우고 놀면서 창의력을 키우는 중요한 시기이다. 그들은 창의력이 없었기에바늘을 발명하지 못했다. 빙하기가 찾아왔을 때 크로마뇽인은 옷을 지어 입었지만 그들은 동물 가죽을 걸쳐 입는 것이 전부였다. 추위에 약해 먹이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식량이 줄자 인구도 줄었고 결국 멸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룡의 등장
공룡이 지배자가 되기 전 지구는 파충류가 지배했다. '지배하는 파충류'라는 뜻의 아르코사우루스이다. 그런데 아르코사우루스 중 일부가 트라비아스기의 저산소 환경에서 편하게 숨을 쉬기 위해 뼛속을 비우고 독특한 호흡기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들이 바로 공룡이다.
인간 같은 포유류는 날숨과 들숨을 교대로 쉰다. 들숨 때는 외부 공기가 허파로 공급되고, 날숨 때는 허파의 공기가 몸 밖으로 나간다. 이 과정에서는 몸으로 산소를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산소 농도가 떨어지는 트라비아스기에 이런 호흡방식은 매우 힘들다.
공룡은 뼛속까지 연결된 기낭, 즉 공기주머니를 발명해 호흡에 사용했다. 허파에서 공기가 한 방향으로 연속적으로 흐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남기에 용이했다. 공룡의 후손인 새도 이 장치를 사용한다.
화산 폭발과 네 번째 대멸종으로 아르코사우루스가 사라지고 공룡의 시대가 되었다.
미토콘드리아와 호주제
호주제에 대한 찬반이 오랫동안 지속될 때 미토콘드리아가 논의의 중심에 등장했다. 법률 토론의 현장에서 최재천 교수가 미토콘드리아는 고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난자를 통해서만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소개했다고 한다. 즉, 후손은 수컷보다 암컷에게서 더 많은 유전자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남계혈통의 호주제는 2008년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