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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아 Mar 21. 2023

22. 박민아이유 편

박민아의 행복편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축제 사회를 봤습니다. 1학년 후배와 둘이서요.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했지만, 저는 내심 좋았습니다. 하고 싶었거든요. 


축제는 아주 성공적이었어요. 제일 반응이 좋았던 건 문자 메시지를 읽어주는 코너였어요. 사회자인 저의 연락처로 메시지를 보내면 몇 개를 골라 읽어주고 상품을 줬는데요. 제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로맨스로 연결할 수 있는 메시지도 많이 왔는데 말이죠. 그런 건 눈에 안 들어오고, (왜 그랬을까) 


“A 남자 고등학교 학생인데, 본인 학교 축제 사회를 봐줄 수 있나요?” 이 문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장난인 줄 알았지만, 상대는 꽤 진지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파파이스에서 만나 회의를 시작했어요. 


그 학생은 기대가 컸습니다. 우리 학교 축제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고 하면서요. 제가 무대에서 했던 멘트를 하나하나 얘기하면서 이런 식의 진행을 해주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케이준 감자튀김을 우적우적 씹으며 이거 큰일 났다고 직감했습니다. 


남학교 축제에는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많이 온다는 걸 알았더라면 괜찮았을까요? 잘생긴 남학생을 보러 왔더니 털털한 여학생이 사회를 보고 있으니 관객의 눈은 아주 싸늘했습니다. 그런데도 잘했더라면 통쾌한 마무리일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싸늘한 관객의 눈빛에 흔들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저야 뭐 프로가 아니니 당연히 마구 동요하지 않았겠어요? 준비했던 너스레며 애드리브며 불꽃 카리스마는 발휘하지 못한 채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 


남학생과는 단숨에 연락이 끊겼습니다. 꽤 말이 잘 통해서 기대하고 있던 바가 있었는데 말이에요. (뭘..?) 



그해 가을은 참 아찔했습니다. 

이런 게 나의 재능이 아닐까 하며 풍선처럼 부풀고, 

그 재능에 대해 기대받아 설렜다가, 

누군가를 실망시킬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두려워하다 결국

그 기대를 박살 내버리는 경험까지 내달린 가을이었습니다. 


제가 이 가을을 자주 잊고 지내는데요. 눈치 없이 아이유 콘서트 실황을 보는데 불쑥 떠오르는 거 아니겠어요. 너 지금 튀어나올 때가 아니라고 해봐도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이유와 박민아라니.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말이에요. 


저는 고작 몇백 명 앞이었고, 다시 모른 척하고 책상 앞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었고, 연락 끊긴 남학생도 지금쯤 새카맣게 잊고 지낼 일이었지만요. 


그처럼 사는건 어떤 걸까 생각합니다. 기대하는 눈과 마음이 너무 많고, 선의를 가지고 찾아온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괴롭겠지만. 동시에 몇만 명이 한목소리로 노래하고 벅차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말이에요.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파도처럼 몰아치는 삶은 어떤 걸까. 

내게도 재능이 있어서 누군가가 ‘저 사람의 다음이 궁금해’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삶도요. 

그러나 결국 상상의 마지막은 ‘감당할 수 있을까?’로 끝이 납니다. 

견뎌내는 사람만 누군가의 기대도 받는 거죠. 기대도 비난만큼이나 무거운 것이니까요. 



실망은 싫고 그래서 기대조차 싫을 때

아무것도 감당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봐요. 

아이유처럼 살기는 이제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나도 내 인생의 아이유니까. (아이유 님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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