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희찬이는 놀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초등학교 남자아이입니다.
내가 조금 부담스러워했던 희찬이를 얼마 전 놀이터에서 만났습니다. 희찬이는 여전히 까맣고 빠르게 뛰어다닙니다. 거침없는 희찬이는 기다란 나무막대기를 들고 친구를 쫓아가다가 나와 아이를 발견하고는 멈춰 섰습니다.
희찬이의 첫마디는 예상 못한 거였어요.
“어? 아줌마 발 다 나았어요?”
인대가 늘어나 붕대 감고 놀이터에 갔던 날 희찬이를 마주쳤었거든요. 나를 보자마자 달려오더니 다리는 왜 그러냐고 물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봐요. 지금은 붕대는 풀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았냐고 묻더라고요.
희찬이의 하루에는 신나고 재미난 것이 많아서, 해야 할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아서 놀이터에서 만난 아줌마 다리는 까맣게 잊고 지냈을 줄 알았습니다.
저는 놀라서 어버버 거렸습니다. 예상 못한 다정함을 받고 나니 그간 희찬이에게 무뚝뚝하게 굴었던 일이 새삼 미안했어요.
희찬이는 아줌마가 옆에서 어버버하고, 내심 미안해하고, 사실 엄청 고마워하는지 마는지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우리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꿇고 앉아 말을 걸어줬어요. 흙이 잔뜩 묻은 손으로 아이의 볼을 톡톡 두드려줄 땐 미안함이고 뭐고 말리고 싶었지만, 어차피 아이도 흙구덩이에서 놀고 있었으므로 가만있었습니다.
아이들의 기억은 참 신기합니다. 어른인 나는 아이보다 아는 게 많으니까 당연히 기억하고 있는 일도 훨씬 많을 거로 생각하지만, 아이들과 얘기해보면 아이들의 생각 주머니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크고 넓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가 천재인가 봐.. 감탄하지만 나중에는 알게 돼요. 매일 재미없다고 노래 부르고 다니면서, 내 인생에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맘에 담아두느라 중요한 걸 잊고 사는 건 어른이라는 것을요.
아이는 당연히 자라면 어른이 됩니다. 지금보다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지고, 게다가 대부분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요. 아이의 어떤 면은, 우는 사람을 보면 바로 손 내밀고 토닥인다거나,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바로 호호 불어주는 그런 면은 잃지 않길 바라기도 해요.
희찬이의 기억에 나의 반깁스 왼쪽 다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아이가 어른이 되면서 잃는 건 다정함과 솔직함이 아닐까.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 친구 희찬이, 고마워.
아줌마 발 이제 괜찮아. 침이라는 걸 맞았거든. 침이 더 아팠어. 다친 것보다...
2022년 10월 7일 금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