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오기로 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건 언제의 일이었을까.
방송작가로 일하던 10년 전쯤? 쟤(는 나다.)는 이번에도 늦게 찾아서 여러 사람 힘들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나. 쟤는 아이템 못 찾는 애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였나.
그 말이 틀렸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나라고 왜 복수하고 싶지 않았을까. 보란 듯이 괜찮은 아이템을 찾아 인정받고 싶었지만, 나는 그런 성정의 사람이 아니었다. 나에게 못할 거라고 하면, 나는 그 말을 증명하는 사람이었다. 못할 거라고 하면, 못했다.
결국 그 프로그램을 그만두며 그간 내가 찾았던 아이템을 모두 다른 팀원들에게 나눠주고 나왔다. 방송 안 된 것들이었다. 웃긴 건 그 아이템들 모두 좋은 시청률로 방송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못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라도 나를 믿어 줬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일보다 해낸 일에 더 빛을 쬐어 주었어야 했는데.
나는 이제 할 수 있어, 라는 말을 달고 산다. 어렵지만 할 수 있어. 쉽지 않지만 못 할 일은 아니야.
누군가가 나에게 물으면 그렇게 대답하려고 애쓴다. 적어도 내가 해본 일에 대해서는.
낙천적이라거나 희망찬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절대인가? 아니지. 사실 내가 낙천적인지 비관적인지 모르겠다. 나는 무엇도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이룬 것이 많아서? 이건 진짜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룬 게 별로 없다. 이걸 읽고 있을 당신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을 거다. 그건 분명하다.
나는 그냥 가능의 증거가 되고 싶다.
누군가 일말의 희망이라도 필요해서 두리번거릴 때, 지푸라기처럼 잡히고 싶다.
내가 무능한 인간일까 봐 조마조마했던 10년 전 밤에, 아이를 낳고 얘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두려웠던 밤에, 일은 애 다 키우고 하라는 말을 들은 밤에 나한테 필요했던 건 가능의 증거였으니까.
하기 싫어서 이 핑계 저 핑계 대는 사람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증거겠다. 그러나 하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나는 사람에게는 희망의 증거가 될지 모르니까. 사람들이 넌 못할 거야, 라고 했을 때보다 할 수 있지, 이미 하고 있고, 라고 말해주었을 때 이룬 것이 훨씬 많다. 내가 했던 대부분의 좋았던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거다.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해서,
“그거 내가 해봤는데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그거 나는 잘 안됐지만, 너라면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강해 보이지 않나?
간지(?)와 강도(?)측면에서라도 나는 후자가 더 좋다. 훨씬 근사하고 훨씬 멋지다.
2022년 10월 14일 금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