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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아 Mar 21. 2023

26. 치열함 편

박민아의 행복편지 



얕은 허들 몇 개 넘고 그래도 나 열심히 살았다고 어깨 으쓱하던 때를 떠올려 봐. 딱 봐도 가벼운 상자만 골라 옮기는 얌체처럼 살아왔으려나. 특별히 좌절해본 기억도, 대차게 실패해본 역사도 없었던 건 자랑이 아닐지도 모르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금 부끄러운 일이었어. 


인생에는 치열함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궤도가 있다는 걸 믿게 됐거든. 지독하게 애써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지위가 있다는 것도. 


그건 아주 우쭐해도 좋을 일이었지만, 

끝까지 부딪혀보고 애써본 사람들은

더 나은 게 뭔지 알고 있으므로, 

여전히 계속 그곳으로 가길 원하므로

쉽게 우쭐해하지 않더라. 


내가 어떤 일도 숙달하지 못한 채로 지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늘 초심자의 마음으로 설레는 것과 영원히 지망생으로 사는 건 아예 다른 일이니까. 조금 더 좌절해봐도 좋았을걸. 오래 걸려도 조금 더 애써볼걸. 


이제 2살이 된 나의 아이에게는 스스로 눈물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면서, 스스로 식사하는 걸 배울 때까지 더 많은 실패를 하더라도 지켜봐 주면서 말이야. 정작 왜 나는 당장 쉽게 이룰 수 있는 일들과 혼자서만 감당하면 되는 일만 벌이며 짧은 호흡으로 사는 걸까 싶었어. 


괴로울 정도로 해본 일이 드물어. 

안될 것 같으면 빠르게 정리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인생의 전부를 그렇게 살아온 건 문제가 있지 않겠어? 





오늘 아이가 화장대를 뒤지다가 내 목걸이 몇 개를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놨더라고. 평소 같았으면 목걸이 그거 당장 차고 나갈 일이 없으니까 그대로 뒀을건데, 오늘은 서서 다 풀었어. 아이가 혼자 놀다가 나에게 와 엄마 뭐하냐고 보채고, 그러다 지쳤는지 다시 자신의 놀이 자리로 돌아가는 걸 서너 번 반복할 때까지. 



오늘은 목걸이였지만, 내일부터는 다른 게 되길 바라. 내 미간을 구기는 일이. 

아니 근데 나 며칠 전에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는 안다면서 좋아하지 않았었나? 




2022년 10월 25일 화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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