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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May 03. 2020

조제 호랑이  그리고 계란말이

<아주 조금, 젊지 않은 여자에게>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던 P가 자신의 인생영화를 '조제 호랑이... '라고 했을때

아 저 사람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겠다 싶었다. 나아가,

P가 지지하는 신자유주의는 아주 싸가지가 없지만은 않겠다는 핑계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영화는 그런 영화였다.

계란말이를 만들어낸 조제가 살모넬라균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고 심드렁하게 말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살모넬라 균은 먹을만하겠군.


 먹어보았던 계란말이 중 최고는 광화문 파이낸스 빌딩 지하에 있던 스시집, 이름도 이제는 아예 생각나지 않지만 비쌌던 기억은 생생한 그 집에서다. 월급날에 그 집엘 종종 갔고 영혜 월급에 비하면 비싼 가격의 식당이었지만 다음 달에도 갔다. 그 집은 비싸고 고급스러워 조제의 계란말이의 맛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그 집에서 학습된 맛의 기억 때문인지 조제의 계란말이도 매우 부드럽고 달콤했으리라.

 단 P와는 그 집에 간 적이 없었다. 영혜가 P와 함께였을 때 그들은 더 가난했으므로. 영혜는 P와 한번도 계란말이를 먹은적이 없었다. 하지만 P와 헤어진 후 어느 집에서든 계란말이를 먹으면 조제가 생각이 났고 이어서 P가 생각났던 것도 당연지사.


오늘 저녁엔 계란말이와 명란젓찜으로 저녁을 했다.

명란젓은 그냥 먹으면 염분이 많으므로 영혜는 항상 그것을 쪘다. 명란을 찔때는 충분히 찌는 것이 좋다. 그래야 소금기가 빠져나가고 명란이 쫀득해진다.

명란젓찜은 찜기에서 건지자마자 참기름을 듬뿍 둘러 흰밥에 올려먹으면 그만인데

흰밥 위에 담긴 맑은 명란과 고소한 참기름의 조화는 계란말이를 부른다.

파이낸스 센터 스시집도 남의 나라 이야기 되었고 조제도 가물가물하게 만드는 날들을 영혜는 지나왔다.

다만 조제가 했던 말,

" 언젠가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 날도 오겠지"

그런 대사는 슬프지도 않게 P의 입술을 빌려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영혜가 걷는 길가 어드메 서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부터 명란젓이나 계란말이 같은 것들은 생활의 주인으로 행세하고 있다. 영혜는 아주 오랜만에 조제나 계란말이 같은 것들을 기억했을 뿐이다.

세 식구 조촐한 저녁상에 아이 밥에 그것들을 놔주며 그런 생각들을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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