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으로 경험하기 동시대미술 2편_아니쉬 카푸어
소유라는 개념만큼 인간에게 중요한 것도 있을까? 인류의 역사는 더 풍부한 먹을거리, 더 넓은 땅, 더 많은 사람을 차지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살벌했던 이념갈등에서 결국 자본주의가 우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해왔던 ‘소유’에 대한 갈망 때문일 것이다.
땅이나 건물 같은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에 비해 다소 느슨하게 관리되었던 음악이나 사진, 영상물, 공연 같은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도 최근 10년 들어 많이 강화되고 인지 수준이 높아졌다.
뭐든지 사용 전 주인에게 묻는 것이 필수라지만 다른 디자인도 아니고 색(Color)을 쓰는데도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잘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색을 소유할 테니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 색을 쓰지 못한다는 말을 한다면 무슨 헛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2016년, 아니쉬 카푸어는 거금을 들여 ‘반타 블랙(Vanta Black)’이라는 색의 독점 사용권을 구입했다. 반타 블랙은 Vertically Aligned Nano Tube Arrays(수직으로 정렬된 나노튜브의 배열)의 머리글자와 Black(검정)의 합성어로 2014년 영국의 서리 나노시스 템즈에서 개발한 새로운 색상이다. 이 색은 무려 99.96%의 빛 흡수율을 자랑해 검정보다 더 검정 같은 포토샵 수준의 색상을 자랑한다. 뛰어난 빛 흡수율 때문에 인공위성 위장용 도료부터 천체망원경까지 산업용 재료로 사용돼 왔고 가격 또한 무척 고가이다. 여전히 다른 분야에는 반타 블랙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독점 사용권 구입으로 인해 예술작품 제작에는 오직 아니쉬 카푸어만 이 색을 사용할 수 있다.
반타 블랙이 가진 색상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특정 색을 오직 한 작가만 예술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논란이 일었다. 다른 작가도 아니고 시각예술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으부터 기사 작위와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은 작가가 순수함에 가까운 색을 자신 혼자만 독점하겠다는 것은 예술의 발전을 막는 일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아니쉬 카푸어를 비판하기 위해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 작가도 있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예술가 스튜어트 셈플(Stuart Semple)은 세상에서 가장 분홍/노랑/파랑/초록다운 분홍/노랑/파랑/초록 색상을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서 ‘누구나 이 색을 사용할 수 있다. 아니쉬 카푸어나 아니쉬 카푸어와 관련된 사람만 아니라면. 이 색이 아니쉬 카푸어의 손에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신신당부하고 SNS에 작품을 업로드할 때 #ShareTheBlack을 공유해줄 것을 명시했다.(https://www.culturehustle.com/)
이에 아니쉬 카푸어는 보란 듯이 가장 분홍다운 분홍(The World’s Pinkest Pink)’를 구입해 가운데 손가락에 흠뻑 묻힌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여전히 색의 독점과 관련된 논쟁이 해결된 바는 없다. 새로운 기술이나 신소재가 개발될 때도 비슷한 논란들이 생긴다.
예술은 반 공공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상업성이 들어가는 것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각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예술은 다른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분야가 아니던가! 좋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소유욕을 드러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정도와 대상이 문제겠지만.
자금력이 풍부한 작가가 특정 재료를 대가를 지불하고 독점계약을 맺은 것은 시장논리에 따라 획득한 권리일까, 아니면 가질 만큼 가진 원로작가의 횡포일까? 풀리지 않았기에 더욱 흥미로운 이슈이다.
© JINA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