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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lish Nov 24. 2020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려 #6

여섯 번째 피스 #쌉쌀한맛



"여자 친구한테 선물할 초콜릿 추천해줄래?"


종종 지인들이 초콜릿에 유별난 나의 미각에 기대를 걸고 추천을 부탁할 때가 있다. 선물이란 단어는 언제나 설렘을 주는 단어다. 소중한 사람의 행복을 그리는 마음이 만들어낸 마법 같다. 그 마법의 효력을 높이는데 나의 경험치 한 스푼이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감사한 일이다.


냉장고 문을 연다. 찬장 위도 살펴본다. 그들에게는 미처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죽고 못 사는 초콜릿이기도 하지만 연간 가장 많이 버리는 음식이기도 하다는 것을.



좋아하는 게 확실하다는 말은 싫어하는 게 확고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해진 답이 없는 게 취향이라지만 이미 자신의 답을 만든 사람이라면 수학의 법칙 못지않은 엄격함으로 법칙을 따른다. 수많은 착오 끝에 발견해낸 진리인 만큼 어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의 진리는 모두의 진리가 될 수는 없다.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취향이 확고해지는 과정에는 인간의 취향의 갈래 수는 무한대로 뻗어 나간다는 걸 인정하는 단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미슐랭에 선정된 유명한 맛집이라도 돌아서 나올 땐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최악의 맛이었노라 고개를 젓는 경험들의 축적이다.


인간은 숫자가 아니다. 부등호를 건너지 않아도 +가 -로 변하는 일이 빈번하다. 제도적 장치로 옳고 그름의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은 취향의 영역은 더욱 무법지대다. 하늘이 맑기가 바뀌는 것에 따라 태블릿 형태의 달달한 밀크 초콜릿을 뜯었다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면 흐릿함에 어울리는 설탕의 맛을 비틀어 짜낸 스모키 한 맛의 다크 초콜릿이 떠오른다. 더 이상 밀크 초콜릿에 손길이 닿질 않는다. 규칙에 어긋난 것도, 변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취향에는 보편적인 정답이 존재할 수 없다. 경제적 득실이 걸려있지 않다고 해도 절대 가벼이 권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나는 ‘추천’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연인일 경우 앞으로의 유효 연애기간을 예측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인 관계는 ‘괜찮은 선물’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묻어나는 선물인지가 더 중요하다. 부탁을 받고 대화를 하다보면 연인의 취향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상대방이 평소 어떤 맛과 식감,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세세하게 알고 있고, 어떤 사람은 부탁받는 사람(나)의 기준에서 괜찮은 옵션을 묻는다. 같은 듯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방향에 옳고 그름 역시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서로의 취향을 더 많이 알고 있는 쪽에 더 진심을 다하는 편이다. 그들은 각자의 우주를 존중하며 교집합을 늘려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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