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lish Nov 25. 2020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려 #7

일곱 번째 피스 #쌉쌀한맛


밥 챙겨 먹으면서 해라. 어디 아픈데 없니. 일찍 일찍 자라…….



여전히 자주 듣는 말, 귀찮아하는 잔소리들. 내가 아기도 아니고. 알아서 잘할 텐데 왜 이리 꼬치꼬치 물어보는지 살짝 짜증이 난다. 하지만 이런 잔소리도 누군가 해주었으면 하는 순간이 있다. 컨디션이 좋지 못할 때가 그렇다. 가끔씩은 각진 모양의 말이 쓰디쓴 약처럼 필요하다.


초콜릿을 많이 먹지 말라는 말은 집에 갈 때마다 빠짐없이 듣는 잔소리 중 하나다. 선천적으로 약한 몸 때문에 어려서부터 먹을 것, 입는 것, 움직이는 것 모두 일일이 신경 써야 했던 큰딸이니 항상 걱정되시는 모양이다. 내 몸의 고난의 역사는 끝이 없는 대서사라 말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 시작을 잘하지 않는다. 알면 알수록 특이한 신체에 고개를 저으며 죽고 나면 기증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수차례 해봤으니 부모님의 걱정은 당연할 것이다. 


이런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기계처럼 자동적으로 대답한다.

“요즘은 초콜릿 많이 안 먹어요.”


대답은 언제나 진실이다. 초콜릿에는 긴장을 낮춰주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긍정적 효능이 있다. 뇌에게 엔도르핀을 만들어 보라고 보채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공식품인 만큼 각종 첨가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언제 내 몸 어딘가에서 비상 경고등을 울릴지 모를 일이다. 첨가물은 줄이고 좋은 재료를 엄선해 만든 다크 초콜릿은 가격이 비싸다. 매일, 많이 먹다가는 남아나는 게 없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많이 먹어서는 안된다는 걸. 

어느 쪽이든 감당하기 쉽지 않을테니까.



어른이 되면 ‘내 돈’으로 어릴 때 펼치지 못한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눈치 보지 않고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쓸어 담거나 한정판 피규어나 앨범을 컬렉팅 하는게 대표적이다. 어릴 적 귀에 딱지 나게 듣던 잔소리도 하나 둘 졸업하고 떠나간다. 물론 더 강력한 타격감을 가진 잔소리들이 생겨나지만 인간으로서의 내가 아닌 나의 역할이 타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초콜릿을 많이 먹지 말라는 말이 어서 귀찮기만 했으면 좋겠다. 싫어도 따라야 하는 처방이 아닌 말 그대로 잔소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집에 내려가는 길에 두 손 가득 초콜릿을 들고 가 엄마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식탁에 빼곡히 펼쳐 놓고 네 식구가 함께 즐기고 싶다. 그중에 제일 전투적인 사람은 역시 나였으면 한다.



© JINALISH


매거진의 이전글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려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