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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lish Nov 27. 2020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려 #8

여덟 번째 피스 #달콤한맛



“치즈 라볶이 하나 주세요.”


오늘의 저녁은 또다시 이 녀석이다.
초콜릿과 1, 2위를 겨루는 또 하나의 소울푸드 떡볶이. 탄수화물에 탄수화물을 더한 매콤한 음식에 치즈를 올리는 건 단순한 토핑 추가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간단한 분식이던 한 끼 식사에 치즈를 더 하면 어쩐지 특별한 요리가 된 것 같다. 물론 하얀색과 새빨간 소스의 대비에서 오는 시각적 만족감도 한몫한다.


한때 SNS에서 유명한 맛집이 되려면 치즈가 필수이던 때가 있었다.
철판 스테이크 위에 치즈 폭포, 주꾸미와 등갈비에 치즈 퐁듀, 토스트 위에 스노잉치즈……
이미 다 아는 맛의 평범한 메뉴들. 유제품 가격이 국내에서 저렴한 편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치즈 역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 평범에 평범이 얹어졌을 뿐인데 사람들은 열광했고 1시간이 넘는 기다림을 감내하고서라도 만나기를 갈망했다. 흐르르 흘러내리는 치즈의 요염한 몸놀림에 모든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 테니.


금세 녹아 사라지거나, 굳어버린다 한들 어떤가. 찰나의 순간에 이미 만족도 최고치를 찍고 시작하는 게임이다. 음식의 맛이 최악만 아니라면 꽤 인상 깊은 식사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디저트류로 넘어오면 치즈의 바통은 초콜릿이 이어받게 된다. 파이를 덮고 있는 초콜릿 코팅, 아이스크림에 초콜릿 소스, 스낵들의 사이를 폭신하게 받쳐주는 초콜릿 크림, 겉바속촉 쿠키에 콕콕 박힌 초콜릿 청크칩, 얼음 알갱이를 감싸고 있는 초콜릿 파우더. 인싸(Insider)도 이런 인싸가 있을까. 어디에 껴도 잘 어울리고 매번 다른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초콜릿의 깊숙한 침투력은 '넣으면 맛있다'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맛이 별로일 테고 먹고 싶지도 않지만 먹어야 할 것 같은 보충제나 단백질에 초코맛이 많은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녹차, 바닐라, 딸기, 쿠키앤크림 등 취향껏 먹을 수 있는 여러 종류가 있다 해도 대다수의 브랜드가 초코맛은 빼먹지 않고 출시한다. 시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은연중에 초콜릿이 들어가면 입맛에 안 맞아도 먹을만한 맛까지는 보장될 거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녹아내릴 때 논개의 정신으로 '맛없는 맛'도 같이 끌어안고 사라져 줄 것 같달까.


다재다능한 활용도가 장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디선가는 쓰일 테니 버릴 만 한 것도 나중을 위해 버리지 않고 계속 남겨두다 위생상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파이를 코팅하고 남은 초콜릿을 몇 달 후 대목인 빼빼로를 만들 때 쓰기 위해 남겨놓는 식으로 말이다. 뉴스에서 접한 이 씁쓸한 소식은 덕후의 프라이드에 흠집을 냈다. 동시에 초콜릿에 열광하는 보이지 않는 동지들이 많다는 사실에 연대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는 먹는 것으로 비양심적 행동을 일삼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요즘 시국에는 엄두도 못 낼 곳이지만 뷔페를 가면 원하는 대로 음식을 마음껏 집어 먹는 재미가 있다. 그중에는 평소에는 많이 먹지 못하던 음식도 있고 먹으면 돈이 아까워지는 메뉴도 있다. 디저트 코너로 가면 퐁듀가 흘러나오는 3층짜리 미니 분수대가 눈에 띈다. 원하는 음식을 흐르는 퐁듀에 촉촉이 코팅 시켜 새로운 맛을 입히는 것도 뷔페의 즐거움 중 하나다. 꼭 장난을 치는 것 같은데 먹는 거로 장난치면 안 된다고 혼내는 사람도 없다.
환상 속에서만 깨 보던 금기를 현실에서도 아주 살짝 깨보는 듯한 짜릿함이다.


도사는 아니지만 어떤 매장이든 분수 속 퐁듀의 정체를 맞출 수 있다.


치즈 퐁듀 혹은 초코 퐁듀.



치즈와 초콜릿은 참 많은 공통점을 나누고 있다. 스스로가 괜찮은 주연이다. 조연일 때는 주연의 존재감을 뛰어넘을 것 같으면서 잡아먹지는 않는다. 귀티가 흐르는 듯한 반지르르함을 뽐내다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져 버린다.


누군가는 말한다.
치즈나 초콜릿을 더 해놓고 비싼 가격을 받는 음식에 왜 열광하느냐고. 명작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대사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기 직전 위태로운 조선. 명문가 애기씨 고애신(김태리)은 서양식 호텔에서 쿠도 히나(김민정)를 통해 가베차(커피)를 처음 마시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질문을 던진다.



- 이 쓴 걸 왜 마시는 거요?


쿠도 히나는 답한다.


- 처음엔 쓴맛만 나던 것이 어느 순간 시고 고소하고 달콤해지지요
 무엇보다 아주 비싸답니다. 마치 헛된 희망 같달까요?
 헛될수록 비싸고 달콤하지요.
 그 찰나의 희망에 사람들은 돈을 많이 쓴답니다.



© JINA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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