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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lish Dec 01. 2020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려 #9

아홉 번째 피스 #달콤한맛


며칠 전 성수동 인근을 들렀다.
3년가량 살다 올해 초 이사를 떠난 곳이다. 동네를 떠나기 직전 마음에 드는 디저트 가게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안에는 마음에 쏙 드는 초콜릿 가게가 없었다.


배달의 민족 앱을 켰다.
꼭 배달을 시키지 않더라도 주변에 있는 가게 리스트와 메뉴, 리뷰를 한 번에 다 찾아볼 수 있어 검색 툴로 선호하고 있다.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초콜릿을 메인으로 하는 상점이 제법 생겼다. 그중 '최콜릿'이라는 가게가 눈에 확 들어왔다.


최 씨가 하는 초콜릿인지 최고의 초콜릿인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호의 의미가 어느 쪽이든 맛있을 것 같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집도 '최고'라는 타이틀을 걸어 놓는 집도 모두 자부심을 가득 갖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메뉴를 살펴보니 추측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수제 초콜릿 메뉴들은 카카오 함량을 달리해 취향껏 달콤함과 쌉쌀함을 고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동네 디저트 가게에서 이 정도 디테일만 있어도 단골로 삼고 싶은 마음이 충분히 드는데 꼭 주문해봐야겠다는 결정타를 날린 것은 브라우니였다. 진한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생긴 기호이지만 여러 초콜릿 샵의 브라우니들이 초콜릿 피스의 우수함과 달리 카카오 맛으로도, 베이커리로도 어중간한 위치인 경우가 많아 다른 취향의 덕후에게도 만족스러울지 의문이다.


초콜릿 맛이 훌륭한 가게라 할지라도 브라우니 맛은 아쉬운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고로 브라우니란 파운드 케이크 같은 촉촉한 식감 보단 소보루 마냥 보슬보슬하거나 초콜릿 반죽을 씹는 것 같이 꾸덕한 느낌이 나야 한다는 주의다.  최콜릿의 브라우니 메뉴의 구성은 독특했다. 단순히 다크, 밀크, 말차 등 맛으로만 구분을 지어놓은 것이 아닌 꾸덕, 폭신과 같이 식감 면에서도 차이를 두었다.



"진하고 꾸덕한 맛을 좋아하는 덕후는 다크로 오십쇼.

무난한 게 최고라고 생각하신다고요? 그렇다면 밀크 브라우니가 딱입니다."



성공한 맛집의 검증된 레시피를 갖고 있다고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명 모두 미세하게 다른 입맛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식사류는 그나마 배를 채운다는 공통된 목적이 있으니 평균 만족도를 어느 정도 끌어올릴 수 있지만 '기호식품'에 해당하는 것들은 평균적인 만족도를 끌어올리기가 만만치 않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엄선된 재료와 공법으로 만들어도 누군가에게는 별점 하나에 그칠 수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제 입맛에는 맞지 않네요." 취향이란 좁게는 개인의 입맛이지만 넓게는 그 사람의 존재를 차별화 짓는 요소이다.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취향을 존중받을 때, 업무적 인정이나 높은 학점을 받을 때 보다 훨씬 큰 충족감을 얻게 된다.


초콜릿이라는 하나의 장르에도 갈래는 무궁무진하다. 모든 갈래를 다 충족시킬 순 없지만 '달콤, 쌉쌀'에 간과되기 쉬운 '꾸덕, 담백' 카테고리까지 함께 다뤄 메뉴를 구성한 것에서 가게를 내기까지 이 세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브라우니를 종류별로 주문하고 커다란 한 덩어리를 크게 베어 물었다. 
이사를 떠난 것에 대한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최고의 덕후를 만난 것 같다.



© JINA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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