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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lish Dec 03. 2020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려 #10

열 번째 피스 #쌉쌀한맛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



나는 원하던 메뉴를 먹어도 기대했던 맛의 범위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만족하지 못하는 예민함을 갖고 있다. 음식이 이 정도니 평상시에도 지나치게 디테일에 집착하는 면이 있어 참 피곤하게 산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예민함은 예술과 같이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일상생활에는 불편함을 많이 준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행동과 사소한 표정들까지도 굳이 머리에 입력되고, 평온한 상태가 아주 미세한 숨결에도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향이 이렇다 보니 입력되는 스트레스 양도 많을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는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니 누군가 줘도 안 받으면 그만이라고 한다. 하지만 받지 않으려고 머리로 거부해도 감각기관들이 스펀지처럼 빨아들여버리는걸 컨트롤하기란 쉽지 않다.


저녁시간, 병원을 찾았다.

운동을 하면서 만성 무릎 통증과 허리디스크로 인한 뻐근함이 조금씩 찾아와서다. 해부학 수업을 해주신 교수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라 움직임 시 발생하는 통증의 특수성에 맞춰 설명을 잘해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갔다. 기대한 대로 친절하고 자세히 상담을 해주셨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단어를 듣게 되었다. 


Highly Sensitive People(HSP)



남들보다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을 뜻하는 용어로 어떤 사회든 15~20%가량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고쳐야 할 질병은 아니지만 의학적으로 주목할 만한 지점은 이러한 사람들은 통증에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살이 까졌을 때 쓰라림을 더 크게 느끼는 정도인가 생각했는데 더 듣다 보니 아예 차원이 달랐다. 우리 인체는 호르몬 분비는 물론이고 생리학적 반응들이 무수히 일어나는 공장이다. 검사기계들은 공장에 에러가 발생한 부분이 있는지를 잡아내는 검침원 역할을 한다. 어느 곳이든 완벽히 정상상태는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은 '정상범위'를 벗어나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문제는 민감한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도 빠르게 알아차리므로 통상적인 '정상범위' 안이라고 해도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 병원에서 검사를 하면 정상인데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 중 일부도 HSP에 해당한다고 한다.


고로 나는 '무척 민감한 사람'이라고 한다.
아직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감각을 제어해야 나아진다며 지나가는 말로 병원의 단골 멘트를 읊조려 주셨다.
잠을 충분히 많이 잘 것, 잘 먹을 것, 그리고 운동을 좋아하니 다행이지만 운동을 하되 너무 열심히는 하지 말 것.


사람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존재다. 풀리지 않는 고민으로 끙끙 앓고 있을 때, 누군가 그 고민의 원인을 짚어주면 뒤죽박죽 날아다니던 조각들이 차분히 내려앉아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밤거리. 어느덧 방한용품처럼 느껴지는 마스크를 더욱 조으고 걷는다. 뻐근했던 무릎과 허리는 나아졌는데 마음은 어쩐지 복잡하다. 왜 피곤하게 사는지에 대한 답을 알아낸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두려운 마음도 든다.


초콜릿을 꺼내 든다.

역시 복잡할 땐 초콜릿이 최고이니.
영하의 온도에 마냥 따스하지만은 않은 입 안의 온도에 초콜릿이 서서히 녹아가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누군가는 초콜릿을 먹을 때 못 느끼고 지나갈 수도 있는 미묘한 맛을 나는 온전히 쪼개어 음미할 수 있겠구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유한한 시간 안에서 더 많은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겠구나.'


'부정적인 자극을 많이 받는 만큼 긍정적인 자극도 훨씬 많이 받을 수 있겠구나.'


'아픈 곳이 많은 만큼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피드백의 경험치도 많겠구나.'




사람은 그냥 피곤해지지 않는다. 자극에는 어떠한 활동이 전제된다. 민감함의 단점이 주는 불편함에 시달린다면 장점에도 열심히 시달려보자. 베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특별한 성장의 길을 알려줄지도 모르니까. 


운과 노력의 조화로 예민함을 통제하는 법을 배운다 해도 드라마틱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나는 꾸준히 피곤하게 살 것이다. 그리고 지친 순간마다 나는 초콜릿을 입에 넣을 것이다. 신의 선물 같은 작은 알맹이를 오롯이 즐길 수 있게 해 준 나의 민감함에 감사하며. 피곤에 시달리게 한 만큼 보상을 알차게 받아낼 것이다.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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