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이야기 #쌉쌀한맛
조금 독특하고, 남과 달라도 '취향’의 울타리 안에서는 생명연장이 가능하다.
변두리의 작은 에너지가 사회적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 사이를 이어주며
고유한 why를 간직한 온전한 나로 남을 수 있게 도와줄 것임을 믿어보며
오늘도 초콜릿을 아끼는 나를 응원해본다.
장래희망에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정확히는 왜 직업을 써내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의식이 생기고 자리 잡아가는 유아기부터 우리의 장래희망은 교실 뒤편과 앨범 속을 장식했고, 아동기와 청소년기에는 다음 교육기관으로 진학할 때 평가될 학생부에 낙인처럼 적어졌다.
대통령, 외교관, 과학자, 선생님, 무용수, 공연기획자.......
세상에 퍼져있는 직업의 가짓수는 방대한데 왜 그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장래희망이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항상 의문을 가진 상태로 가장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답변인 '선생님'을 써냈다.
"커서 뭘 하고 싶어?"
반면, 이 질문을 받을 때는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저는요 커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책에서 본 고대 유적지를 돌아다니고 싶어요. 그 나라 전통춤도 보고 문화들도 보면서 책에 나온 내용들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거든요. UN에서 일하는 것도 멋있을 것 같고요, 내 이름을 딴 장학재단도 만들고 싶어요. 세상에는 멋진 아이들이 많잖아요. 어른이 돼서 다른 어린아이들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지금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한 건지 의문이지만 기본적으로 역사책을 좋아해 늘 끼고 있었고, 당시 필독서들의 주인공이 홍정욱, 반기문, 한비야인 걸로 미루어 보아 책의 영향이 지대했던 듯하다.
어린아이의 답변이 그렇듯 당연히 How는 없었다. 강한 Why가 있을 뿐. 누군가 '어떻게?'라는 질문을 했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돈을 벌어서라는 답변 아닌 답변을 했을 것이다.
N잡러 DNA가 그 시절부터 스멀스멀 자라났나 보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더 이상 서로에게 '장래희망'을 묻지는 않는다.
대신 '앞으로 뭐 할 거야?'라는 질문을 한다. 문장의 구성은 "커서 뭘 하고 싶어?"와 비슷하지만 더 이상 미래의 꿈에 대해 묻는 질문은 아니다. 뭘 하며 돈을 벌고 먹고살 것인지 구체적인 How를 묻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서 Why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생존'을 위해 하는 일에 굳이 다른 이유까지 찾을 필요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상은 여전히 교실 혹은 앨범 속에 전시된 장래희망처럼 단조로워진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면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무슨 길을 선택하든 자신만의 Why를 찾으라는 것. 평범하고 무난한 선택이더라도 저마다의 스토리가 입혀진다면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길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 수 만 가지라고 끝도 없이 늘어놓던 소녀에게도 어느 순간 '왜'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문이 찾아왔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왜'를 부르짖으며 한숨 쉬고 후회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시들했던 초콜릿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난 것도 이 시기 즈음이었던 것 같다. 두꺼운 책만큼이나 밀도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지는 않지만 자신의 다층적인 맛처럼 나 역시 여러 가지 맛을 가진 사람임을 일깨워주는 바람직한 알람 이어서다.
세월이 흐르며 거대한 돌덩이였던 꿈은 돌멩이가 되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더군다나 요즘의 세상은 흑이면 흑, 백이면 백으로 확실하게 일관된 색을 정할 것을 강요한다. 당장 사회를 바꿀 수 없다면 이 또한 변화의 순간으로 여기고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잃지 않으려면 취향의 영역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조금 독특하고, 남과 달라도 '취향’의 울타리 안에서는 생명연장이 가능하다. 변두리의 작은 에너지가 사회적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 사이를 이어 고유한 why를 간직한 온전한 나로 남을 수 있게 도와줄 것임을 믿어보며
오늘도 초콜릿을 아끼는 나를 응원해본다.
© JINA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