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lish Dec 18. 2020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려 #12

열두 번째 이야기



콘텐츠 제작에는 특이한 속성이 있다.

시작하기 전에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고, 시작하고 나서는 아이템이 지나치게 빨리 고갈돼서 뭐로 이어나가야 하나 고민된다.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내는 것만으로 콘텐츠 제작의 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초콜릿으로 글을 써보자 결심하게 된 것도 지속가능한 아이템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다. 기분이 좋을 때, 우울할 때, 힘이 넘칠 때, 에너지 보충이 필요할 때.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파블로프의 개 마냥 나는 초콜릿을 찾을 테니. 맛을 음미하며 그 순간 떠오르는 단상들과 일상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면 소재가 고갈될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2020년, 코로나 19는 일상 속 당연함이 절대 그냥 주어진 기본권이 아니었음을 일깨워주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 당연함이 있다고 은근히 믿고 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의 혼란으로 가득 찬 한 해가 끝나갈 무렵, 또다시 당연하다 믿었던 것이 부서졌다.




구내염이 생겼다.

마스크 때문인지 유난히 약해진 면역력 탓인지, 입술 주변 피부염과 구내염이 괜찮은 듯하다가 심해지는 사이클을 반복해 몇 달간 고생했었다. 스테로이드 효과가 미미해서 면역 체계 자체를 개선하기 위해 식단과 영양소를 조절하고 운동량도 늘린 결과 다행히 호전되었다. 이제는 괜찮겠지 했지만, 방심이었나 보다.


이번 구내염은 조금 특이했다.

혀끝을 시작으로 입 전체에 번지더니 혀 아래가 칼로 난도질당한 듯 쓰라려 통증 때문에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 입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먹을 수 있는 음식에 제약이 커진다지만 혀를 거치지 않다시피 조심하며 식사를 하니 메뉴 선택이 대수가 아니였다. 맛을 느끼는 감각들이 혀에 있는 게 확실함을 체감했달까.


음식에서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맛있다는데. 공감할 수가 없었다.


초콜릿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맛의 매력이 마음에 들었던 초콜릿이 그저 녹아내리는 '무언가'로 보일 뿐이었다.

먹는 게 고통스러우니 음식을 탐하는 마음마저 사라져 버렸다. 늘 먹는 초콜릿을 벗 삼아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에도 균열이 생겼다. 눈앞에 있어도 먹지 못하는 그림의 떡. 아니, 먹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 무관심의 대상에 가까운 것.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오브제를 두고 창작을 하자니 캄캄하기만 하다. 이름난 아티스트들이 저마다의 뮤즈를 찾는 이유를 알 듯 하다.


적어도 향후 10년 이상은 없어서 애타는 뮤즈가 될 것이라 확신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나의 뮤즈는 멀어져 버렸다.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면서 망각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신체의 일부처럼 끈끈하게 붙어있는 줄 알았던 사소함이 언제든 뚝, 끊어질 수 있는 특별함이었음을 일 년 내내 배웠지만, 여전히 당연함은 있다고 금세 믿어버린다. 어쩌면 망각하기 때문에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건강이 회복되면 나는 다시 초콜릿을 집어 들 것이다.

그리고는 새길 것을 새기고, 잊을 것은 잊을 것이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초콜릿을 톡, 톡 조각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짝 미소짓고,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초콜릿을 책장 구석으로 치웠던 기억은 지울 것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게 있다고 끄덕이며 창작이 부담이 아닌 일상의 행복이라 믿으면서.

초콜릿과 함께 글을 끄적일테다.



© JINALISH

매거진의 이전글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려 #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