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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rkat Sep 07. 2019

여성 철학자를 본 적 없는 사람

시대를 관찰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그리스 북부 트라키아 지방의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7살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에 입학합니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아카데미아의 예지'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아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20년간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했습니다. 이후, 기원전 335년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시움(Lyceum) 학당을 세우고 약 12년간 논리학과 철학, 수사학, 정치학, 윤리학 등을 가르쳤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학문 분야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사상은 중세의 아퀴나스, 근대의 마키아벨리, 몽테스키외, 홉스, 로크, 루소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까지도 꾸준히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의 절반인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보통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의 적이자 성차별주의자(sexist), 여성혐오주의자(misogynist), 남성우월주의자(male chauvinist 또는 masculinist)”로 알려져 있습니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여성 관련한 발언들을 짚어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성은 손상된 남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생성론(Generation of Animals)』에서 여성을 손상된(불구가 된) 남성이라고 묘사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적으로 남성은 온전한 존재이며, 여성은 남성에서 무엇인가 손상된, 부족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적, 형이상학적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적으로 모든 자연물들이 '질료'와 '형상'으로 이루어진다는 '질료형상론'을 주장합니다. 즉, 형상을 갖지 않은 질료가 있을 수 없고, 질료를 갖지 않은 형상이 있을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도끼가 도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도끼질을 잘 할 수 있도록 날카로운 날의 형태가 필요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사물의 형상적 측면이다. 그리고 그 도끼가 아무리 날카로운 날을 가졌다 하더라도, 만약 그것이 쇠로 만들어지지 않고 두부나 치즈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도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도끼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의 형태, 즉 형상적 측면은 물론이고, 그것의 재료, 즉 질료적 측면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사물은 형상적 측면과 질료적 측면을 갖고 있다. 질료와 형상은 서로 떨어뜨릴 수 없으며, 또한 그 가운데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덜 중요하다고 할 수도 없다." 
(유원기, 2013, 「여성의 위상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형상론을 바탕으로 4원인설을 말합니다. 모든 사물은 네 가지 원인ㅡ질료인,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ㅡ에 의해 생성된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문제는, 4원인설을 인간의 탄생에 적용시키면서 그리스의 남성우월주의적 견해가 반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은 형상을 제공하고, 여성은 질료를 제공한다고 말합니다.


“남성은 형상과 운동의 원리를 제공하나, 여성은 신체, 즉 질료를 제공한다.” (『동물생성론』 729a10-11)


아리스토텔레스는 탄생의 과정에서 남성은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의 역할을 하고 여성은 질료인의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남성은 아이의 형태를 모두 구성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에, 여성은 단지 태아가 자라나는 장소만을 제공하는 수동적인 역할로 보여집니다. 결국 이러한 시각은 '형상의 제공'이 우월한 것으로, 반대로 '질료의 제공'이 열등한 것으로 비춰지게 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남성우월주의자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구별(區別)의 정치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인 동물이다(Man is political animal by Nature)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유명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로고스(logos)를 가진 동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윤리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폴리스(polis)를 형성하고 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이 똑같이 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적으로 목적론적(Teleology) 세계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물은 동물의 먹이가 되기 위해 존재하고 동물은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 사람의 기능과 역할이 본성적으로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구성원을 남성, 여성, 아이, 노예로 분류해 각 사람의 역할을 설명합니다. 먼저, 남성은 가정에서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하고 국가에서는 정치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여성은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가정에서 남편이 획득한 재산을 유지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노예는 주인의 욕구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남성입니다. 여성과 노예는 남성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도구적 역할만 할 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차별적 발언들을 자신의 저서인 『정치학』에 남겨 놓았습니다.


“노예는 기획 능력(to bouleutikon)이 전혀 없고, 여성은 기획 능력이 있긴 하지만 권위가 없고, 아이는 기획 능력이 있지만 아직은 그것이 성숙하지 못했다.” 『정치학』 1260a2. 
“남자의 용기는 치자의 용기이고, 여자의 용기는 섬기자는 자의 용기다.” 『정치학』 1260a 14.
“수컷이 본성적으로 더 우월하고, 암컷은 열등하다. 그래서 수컷이 지배하고, 암컷은 지배받는다. 그리고 이런 원칙은 인관관계 전반에 적용되어야 한다.” 『정치학』 1254b2. 
“남편과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을 지배한다. ... 연장자나 어른이 젊은이나 미성숙한 사람들보다 우월한 것과 마찬가지로, 본성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명령을 내리는데 더 적절하다.” 『정치학』 1259a 38-b 16.
“농사는 남자들이 돌보겠지만 가사(家事)는 누가 돌볼 것인가?” 『정치학』 1264a 36.
“가사 관리에서도 역할이 서로 다른데, 남자의 역할은 획득하는 것이고 여자의 역할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학』 1277b 18.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과 여성을 구별(區別)했습니다. 여기서 스승인 플라톤과의 차이점을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형이상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고찰했습니다. 플라톤은 남성과 여성은 종적(in kind) 차이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통치에 재능이 있고 적절한 교육을 받는다면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연(Nature)이 무엇인지 탐구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고찰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적으로 관찰된 사실들, 그 시대에 너무 당연했던 것들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남성과 여성을 관찰한 결과, 종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당시 여성들은 가정에서 가사 일을 책임지고 있었던 반면에, 남성들은 도시국가의 정치에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경험적 사실들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시대에 너무 당연한 것들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했을 수 있습니다만, 그는 잘못된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을 세웠습니다. 당대의 사상가는 그 시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닙니다. 그 후에도 인간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마치 우리가 현재까지도 약 2500년 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학습하면서 영향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시대에 갇힌 철학자들


이 글을 발행하는 매거진 제목이 <시대에 갇힌 철학자들>입니다. 저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을 살펴봤습니다. 플라톤은 여성 철인왕(Philosopher-Queen)의 가능성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플라톤은 당시 시대에서 여성을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마찬가지로 남성과 여성을 구별 짓고 이론화할 때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적으로 억압된 여성들만 관찰했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여성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로버트 메이휴(Robert Mayhew)는 "The Female in Aristotle’s Biology"이라는 저서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갈릴레오의 망원경을 이용할 수 있었더라면, 그는 자신의 우주론을 수정했을 것이라고 말해지곤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가 현미경을 가졌었더라면, 그가 발생학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많이 수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초기 입장에 대한 증거로 쉽사리 사용할 수 있었을 아주 강력한 일부 여성 비평가들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여성 과학자나 철학자와 한 번만 대화했더라도, 그는 (예를 들어,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되는 그들의 능력에 대한) 여성들의 능력들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을 것이다.” (Mayhew, R. 『The Female on Aristotle's Biology』 )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여희와 하희, 제임스 밀과 루소, 니체와 데리다, 칸트와 마르크스, 한나 아렌트. 이들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도 이 시대에 갇혔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있는걸까요? 미래는 지금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할까요? 한치 앞도 모르는 미래지만, 우리는 앞으로 한 줄 한 줄 무엇이라도 써내려 가면서 살아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맨 처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상의 대화로 <여성도 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글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 대화문에 단 한 줄을 추가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판도라(Pandora)지금 남자 두 명이서 뭘 쑥덕거리고 있는겁니까? 그런 중요한 문제는 여성 철학자인 저와 같이 이야기해야 되지 않겠어요?



이른 새벽에 비가 내려, 물안개가 피어있던 날이었네. 늘 그렇듯 나는 거대한 케라미코스(Kerameikos) 성문을 지나 아카데미아(Akadēmeia)로 향하고 있었네. 아카데미아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그 앞을 서성이며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 자가 보이더군. 바로 젊은 아리스토텔레스였네.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를 보고, 급하게 다가왔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선생님, 아테네에서 오시는 길이십니까? 조금 늦으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플라톤: 자네가 나를 기다렸다고? 무슨 일인가,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의 <국가>를 읽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학당에 들어가시기 전에 제 고민을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플라톤: 그건 자네가 무슨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겠네.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에게 올바름(정의; 正義; dikaiosynē)은 무엇입니까? 제가 이해하기로는, 선생님은 ‘각자가 제 할 일을 하는 것’을 올바름으로 여기신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플라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찌 맞다, 틀리다고 확실히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내가 써놓은 <국가>라는 책에 한해서 본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네.

아리스토텔레스: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생님의 책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각 사람의 기능과 역할이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어찌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까? 그리고 여성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요? 이게 정녕 선생님의 생각이 맞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눈빛이 지적 탐구를 위해 이글이글거렸네. 그리고 등 뒤에 왠지 모를 차가운 분위기가 들었고. 학당 앞에 서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렇게 말했네.  

플라톤: 음, 질문을 들어보니 여기서 대답할 게 아닌 거 같구먼. 아리스토텔레스, 학당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세.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 들어가서 함께 지적인 공동 탐구를 떠나보자고.

판도라(Pandora): 지금 남자 두 명이서 뭘 쑥덕거리고 있는겁니까? 그런 중요한 문제는 여성 철학자인 저와 같이 이야기해야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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