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름차차 Aug 05. 2019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근대적 인간이 된 여성들

근대의 시대정신과 근대적 인간


근대(modern period)는 초기 근대기인 근세(近世, early modern period)와 프랑스혁명 이후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의 후기 근대기인 근대(近代, late modern period) 모두를 포함한다.

사상사에서 고대와 근대 사이에 단절적인 암흑기인 중세를 두고 있다. 기독교 신앙이 모든 사상과 철학을 압도하는 최고 가치였던 이 시기에 인간은 철학의 중심 주제가 아니었다.


ⓒ Leonardo da Vinci


초기 근대기는 단절되었던 사상사를 고대사상과 다시 잇는 역할을 하였다. 속박된 인간의 이성을 고대와 다시 잇는 작업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14~16세기에 진행되었다.


볼테르(Voltaire)가 표현한 대로 르네상스(Renaissance)는 “해방된 이성의 빛에 싸여 찬란하게 빛나는 시기”였다. 르네상스와 동시에 진행된 종교개혁은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는 정치를 종교와 도덕에서 분리시켰다.



근대, 개인의 시대


초기 근대기부터 후기 근대기까지 근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인간, 그중에서 인간의 이성(理性, ratio)이었다. 재발견된 인간은 이성을 통해 설명되었으며, 이는 모든 학문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온 철학의 주제는
공동체 중심에서 개인으로 전환되며
시대는 “개인”을 발견한다.


 교회 권위에서 해방된 인간은 자율적인 주체가 되었으며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개인으로 존재하기 시작하였다.


개인의 발견과 더불어 “자연상태(state of nature)”도 발견되었다. 자연상태를 경험한 사람이 현존하지 않은 상황에 근대의 정치철학자들은 인간이 사회와 제도를 만들기 전의 상황을 자연상태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근거를 가진 역사라기보다 철학자들이 자신의 통찰력과 인간관을 바탕으로 진행한 인류사에 대한 추적 혹은 추론이라 할 수 있다. 사회나 국가의 성립 이전의 인간 본성 그대로의 생존상태를 각기 상상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제도의 구조적 기원을 맞춰가며 자연상태를 발견하고 정의하였다.




근대기에 국가 형성 과정을 추론하는 일이 중요했던 것은 정치적으로도 독립적인 개인이 등장하고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정치적 혁명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사회구성원을 차지하는 민중 다수의 의식화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이는 인민이 이성을 바탕으로 계몽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성의 시대는 지성인과 예술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이내 전 사회 구성원이 계몽되어야 한다는 계몽의 시대로 전환된다. 이 과정은 프랑스혁명을 추동했으며 혁명의 결과이기도 하였다.



여성도 프랑스혁명에 참여했지만 혁명의 제도화 과정에서 여성은 배제되었다




근세의 인물 루소(Rousseau) vs 근대의 인물 밀(Mill)


 1789년 혁명을 기점으로 근대의 전기와 후기가 구분되는데 루소와 밀은 근대 철학자이지만 시대 구분을 엄밀히 하면 루소는 근세, 밀은 후기 근대의 인물이다.

루소는 근대의 분기점이 된 혁명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여 근대적 인간이 제도화되는데 영향을 미쳤다.




 혁명을 실제로 목도하고 경험하는 것은 철학자들에게도 강렬함을 선사한다.
프랑스혁명 이후 모든 철학자는 혁명의 딸과 아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혁명 이후에 태어난 밀의 사상은 혁명의 아들이라기보다 손자에 가까웠다.


프랑스혁명이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노예제가 종식되는 것을 본 밀은 계몽의 시대에 마지막 종속관계인 여성의 종속에 목소리를 더 크게 내기 시작한다.


최초의 남성 여성주의자(페미니스트 feminist)라고 불리기도 하는 밀과 달리 루소에 대해서는 그가 제시하고 제도화하는데 영향을 미친 근대적 인간에 과연 여성도 포함되어있는가 하는 논쟁이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루소는 여러 편의 저작을 남겼지만 여성관은 일관적이지 않았다. 루소 역시 자유주의자로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루소는 자유의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는 자율성 개념을 확립하고 자유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자연적 자유는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자연상태의 자연인이 누리는 자유이고, 시민적 자유는 <사회계약론>에서 주권자인 시민의 자유이다. 도덕적 자유는 <에밀>에서 교육을 통해 형성된 에밀이 누리는 자유이다. 그러나 결국 도덕적 자유를 누리는 에밀은 남자이고 <에밀>에서 다루는 자유와 교육은 성차별을 전제로 진행되었다.



"근대적 인간"을 "제도화"하는 것은 근대(modernity)시대과제였다. 


"근대적 인간"을 제도화하는 과정에  이성의 개념이 확장되고 지역적으로 확산되며 진행되었고 인류는 진보하였다. 진보는 양적인 성장과 질적인 팽창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근대에 이러한 진보는 전 분야에서 진행되었다.


민중의 의식화와 시민계급으로의 전환은
수직적 진보인가,
아니면 수평적인 진화인가


경제적 진보란 우상향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직적(vertical) 상승의 개념이다. 반면 철학적인 의미의 진보는 수평적(horizontal) 확장을 의미한다. 후대에 등장한 사상이나 개념이라고 앞 시대의 것 보다 더 낫다는 비교우위의 진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없는 새로운 개념, 새로운 사상이 발견되고 정립되었다는 점에서 인류 지성사의 수평적 확장을 의미한다.



근대는 제도화를 통해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였고 시민으로서의 개인을 만들었다. 이러한 진보의 이득을 모든 성(性)이 동일하게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성의 참정권은 유럽과 북미에서도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하였고 이 시기에도 여전히 인정하지 않은 국가가 더 많았다.





참정권이 없는 시민이란 정치적으로 독립한 개인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은 현대에 와서야 겨우 근대적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루소와 밀의

근대적 인간과 근대적 여성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과 사상가 개인의 경험은 철학자의 사상을 정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진리를 발견해 내는 특징을 가진 학문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확장시키는 철학의 특성상 더욱 그러하다.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노예제 폐지를 지켜본 밀과 그 이전의 시대의 사람인 루소를 동일선상에서 두고 여성성과 여성주의를 비교할 수 없다. 다른 시대에 위치해 있었기에 그들의 시대정신과 사상도 다르게 정립될 수밖에 없다.


특히 밀과 루소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극단적인 개인사를 경험한 철학자들이다.


루소는 부모의 부재 특히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성장하였다. 연애나 결혼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가정에서 아내와 동반자적 관계를 맺기보다 가사를 담당하고 성적 욕구를 해소할 대상으로만 여겼다.


반면 밀은 시대의 지성이었던 헤리엇을 친구이자 아내, 학문적 동지로 만나 함께 연구하고 책을 썼다. 각기 다른 생을 살았던 루소와 밀은 각기 다른 여성관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종속의 문제는 우선순위가 달랐다.


근대적 인간이 제도적으로 가능했던 것은 프랑스혁명 덕분이었다. 근대적 인간, 개인, 시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화국으로의 이행과 제도화가 필요했다. 제도화 과정은 구체제(Ancien Régime)와의 단절로 가능해졌는데, 이러한 혁명에 사상적 근거를 제공한 것은 루소였다. 하지만 루소의 근대적 인간 탄생과 시민해방은 여성에게까지는 미치지 않았다. 루소의 근대적 인간에 여성은 배제되었다.



혁명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밀(Mill)에 이르러서야 근대적 인간에 여성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인간 해방, 시민해방이 아닌 또 다른 종속관계 속 여성의 해방에 대한 논의가 비로소 본격화된 것이다.

루소가 있었기에 프랑스혁명이 가능하였고 이러한 시대적 경험 이후 태어난 밀이었기 때문에 당대의 시대정신을 여성주의(페미니즘)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었다. 루소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당대의 시대정신을 정립하였지만 여전히 여성문제에 있어서는 이를 묵인하고 외면하였다. 루소는 새로운 시대의 아이디어를 제공하였지만 여성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시대에 갇혀있었다.


루소 보다 조금 더 진보된 시대에 살고 있었던 밀 역시 자신의 사는 시대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시대의 철학자가 가지고 있는 소임을 다하면서도 지금 시대의 눈으로 보면 여전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대의 인간이었지만 근대와 현대 사이 어디쯤에 서있던 밀은 한계를 가졌음에도 시대를 깨고 시대보다 먼저 나가려 시도했던 철학자로 기억될 것이다.




시대에 갇힌 철학자들 매거진에 연재한 책이 2020년 4월, 

<평등은 미래진행형: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철학>으로 출간되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89847398


전자책으로도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digital.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Detail.ink?selectedLargeCategory=001&barcode=4801190149311&orderClick=LAG&Kc=




매거진의 이전글 하희(夏姬), 비련의 여인인가? 요부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