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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인이십팔호 Jul 25. 2019

하희(夏姬), 비련의 여인인가?
요부인가?

춘추시대 원형적 여성상은 모두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소개되고 있을까? 

사실 진문공으로 하여금 공적 영역으로의 복귀라는 동기를 유지하게 했던 원천적인 동력으로 여성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작용했으며, 춘추시대 현실정치에서 여성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당대의 모습이 보다 원형적인 남녀관계, 특히 공적 영역에 참여한 남녀 관계만큼은 후대 이데올로기적 왜곡에 의해 정립된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가부장적 가치와는 달랐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자신의 의지와 판단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던 여성들이 있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극적인 운명으로 점철된 여성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로 진(陳)나라 하희의 얄궂으면서도 말할 수 없이 안타까운 인생을 들여다 보려고 한다.





하희라는 여성의 운명에 대해서 관심가져야 할 이유는
이 여인이 관련된 사건 하나가 춘추시대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진나라 영공(陳靈公)을 시해한 하징서(夏徵舒)의 난이 바로 그것인데, 하희의 아들이 하징서였다. 하징서의 난은 당시 중원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진(晉)나라에 다시 도전하게 되는 초나라 장왕(莊王)을 패자의 지위에 올려놓게 되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사기]  「楚世家」는 이 사건에 대해서 “장왕은 진(陳)나라를 정벌하고 하징서를 죽였다. 하징서가 자신의 임금을 시해했기 때문에 그를 주살한 것”이라고 간단히 언급만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리 단순한 성격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사실 하징서의 난은 진영공과 진나라 대부 의행보, 공녕과 하징서의 모친인 하희의 통정이라는 불순한 사유로 인해 하징서가 진영공을 사적으로 복수한 사건이었다.


[춘추좌씨전]에는 이 사건의 전말이 적나라하게 소개되어 있다.


진나라 영공은 공녕과 의행보와 함께 하희와 정을 통하여 각자 하희의 속옷을 입고 조정에서 희롱하고 있었다. 이에 설야가 “군주나 경들이 음탕한 짓을 보이면 백성이 본받을 것이 없습니다. 또한 소문이 나면 영이 서지 못하니 군주는 그 속옷을 거두시오”라고 간언하자 군주가 내가 고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진영공이 공녕과 의행보에게 말하자 두 사람은 설야를 죽일 것을 요청했다. 군주는 막지 않았고 마침내 설야를 죽였다. - 춘추좌씨전-



[춘추좌씨전]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곤란한 진(陳)나라의 내부사정을  [사기]보다 상세하게 설명한다. 즉 진(陳)나라 군주인 영공과 경(卿) 지위에 있던 공녕과 의행보 등 세 명의 남성과 하희라는 여성 간 부적절하고 일탈적인 애정 관계가 있었고, 그 행동의 제약이나 거리낌 없이 조정안에서까지 음란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세 주인공, 순애보적인 자보와 이기적인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그리고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여주인공 일로나. 영화 곳곳에서 보이는 동아시아와 한국적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삼각관계의 지속 등 두 남자가 각각 반쪽씩 차지하고 싶어했던 여인과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도 쉽게 납득할 수 없건만, 2300년전에 아직까지 형식상으로 도덕과 규범이 지배하던 춘추시대 일국의 왕과 재상이 이런 행동을 보였다는 것 역시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임을 생각해보자.

   

진영공과 공녕, 의행보의 행동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비도덕적이고 일탈적이다. 더욱이 공적 영역인 조정안에서까지 자신들의 사적 욕망과 추태를 드러냈다는 것은 세 사람 모두 공적 행위자로의 기본적인 태도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따라서 세 사람의 운명 역시 사적 동기에 의해 결정될 것이 예단 가능하다(그리고 당연히 하늘이 있다면 이런 자들을 응징해야 하지 않을까?)



세 사람의 운명은 하희의 아들 하징서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도 아주 패악스러운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진나라 영공이 공녕과 의행보와 함께 하씨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영공이 의행보에게 말하기를 “하징서는 그대를 닮았다”고 하자 의행보가 “또한 군주를 닮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징서는 속이 상해 괴로워했다. 영공이 나오자 마구간에서 활을 쏘아 죽였다. 두 사람은 초나라로 달아났다.    


초나라로 달아난 공녕과 의행보에 의해서 초장왕은 군주시해 사건이 발생한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 다음해 하징서의 난을 이유로 진나라를 정벌해버린다. 그리고 진나라로 쳐들어가서 하징서를 죽여 그 시체를 양쪽 수레바퀴에 매어 수레를 끌게 함으로써 찢는 형벌(轘)을 가하고 진나라를 초나라의 한 고을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왜 [춘추좌씨전]은 이런 사건 전말을 상세히 기록했을까? 

초장왕의 처분이 합당해서일까? 하징서의 행동이 정말 잘못한 일이었던가? 우리는 이 사건을 따라가면서 이러한 사건 종결이 합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징서는 군주를 시해한 포악무도한 테러범일까? 그리고 초장왕의 하징서 처벌이 과연 춘추의 예에 부합하는 정당한 조처였던 것일까?


사실 춘추시대이건 현재이건 개인적 모욕에 대한 복수(復讐)행위는 법률과 도덕 모두가 금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따라서 하징서의 진영공 시해는 처벌받아야 할 사안이었다. 그러나 과연 춘추시대이건 현재이건 정서상 하징서의 처벌이 마땅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진영공을 비롯한 세 사람은 모두 모두에게 지탄받을만한 욕망에 따라 행동했고,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하는데 그치지 않고 관계없는 하징서까지 모욕했다. 하징서에게는 자신의 인격과 정체성 모두를 조롱하는 세 사람에 대해 수치와 모멸감을 가졌을 것이고, 하징서의 대응은 극단적인 것이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정서에 호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어머니와 통정하는 세 사람의 저급한 행동은 이미 하징서에게 충분히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을 정도였겠지만, 어머니 하희 자신도 어쩌면 불가항력의 상황에 놓인 처지에 자괴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래야 했다. 그렇다면 세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와 통정하는 것조차 모자라 하징서 자신에게 들으라는 듯이 '널 닮았네 아니 나를 닮았네'하고 농지꺼리를 해대는 그들에게 굽신굽신거려야 하는 것일까? 어머니를 모욕하는 것도 모자라 그 아들까지도 모욕하는 것이 과연 일국의 왕과 재상이라는 자들이 가려야 할 치부를 들쳐내면서 할 짓인가!




그렇게도 춘추시대가 예를 중시하는 에토스를 가졌다면,
하징서와 그 어머니를 능욕하고 사실상 모르는 그 아버지까지
모욕한 이들에 대해 하징서가 직접 응징을 가한 것이
과연 예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 효도를 실천한 것은 아닐까? 그 어머니인 하희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의아한 것은 하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나 생각을 피력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역사서도 이 여인의 심리와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이 여인이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거나 제나라 공주들처럼 과감하게 불륜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여러 남자들의 욕망에 대응했기 때문에 아마도 논할 가치도 없는 존재로 치부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런 의구심이 일정부분 타당하다면, 이것이야말로 여성에 대한 당대의 시각, 더 나아가 후대 동아시아의 문화에 정착된 남존여비의 편견과 무지에 대한 단서일지도 모르겠다. 이 여인의 기구한 운명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종결되었는지는 다음에 살펴보고 당장 사건전개에 따른 의미로 돌아가보자.




하징서의 문제는 지금 우리가 공감할 기준에 따라 처리할 사안이 아니라 

당대 공적 권위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이미 진(陳)나라는 내부의 권위가 무너졌고 하징서의 군주시해라는 하극상이 발생했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처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춘추좌씨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의로써 제후국들을 통제하여 패자가 되었던’ 큰 나라가 개입해야 할 사안으로 확대된 것이었고, 그 문제해결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경우, 바로 그 결정자가 춘추시대의 패자라는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초장왕은 춘추의 논리에 따라 패자로 부각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만약 초장왕이 예와 의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공적 행위자로서 패자라면, 하징서에 대한 부당한 조롱과 일탈에 대해서도 처벌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럴 경우 하징서에 대한 처벌 역시 이러한 선행조건에 의해서 좀 더 합리적으로 다루어졌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은 정서에 기초한 도덕적 관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판단일 뿐, 초장왕의 동기와 목표는 진(陳)나라를 정벌하여 초나라의 국가이익을 증진시키고 패자의 권위를 획득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징서를 ‘부도하여 군주를 죽인 자이기에 제후들을 이끌고 토벌하여 죽인 것’이다.    

결국 초장왕은 하징서의 군주시해를 응징한다는 명분하에 진(陳)나라를 정벌하여 병합하려고 시도했으며, 진(陳)나라의 동맹국인 진(晉)나라의 패권에 도전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필의 전투’로 귀결되었다. 물론 초장왕은 필의 전투에서 승리한 뒤 물리적 폭력사용의 절제를 보여주었지만, 초장왕 역시 하징서의 군주시해를 사적 복수로 규정하고 도덕적 응징으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 하희라는 여성의 존재가 등장한다.  

그 여자는 상서롭지 못한 사람이다. 자만을 일찍 죽게 하고 하어숙을 죽게 했고 영공을 죽게 했고 하징서를 죽게 했고 공녕과 의행보를 나라밖으로 도망하게 했으며 진나라를 잃게 했다. -춘추좌씨전-


 특히 [춘추좌씨전]는 평가처럼 공적 영역의 한 변수(變數)로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으로 인해 패권이동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던 셈이다.    



초장왕의 패자 등극이라는 사건을 통해 그 저변에 공적 영역의 행위자로서 ‘여성’의 존재가 진문공의 사례와 달리 ‘남성’의 사적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 역사의 전환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은 춘추시대 인간 욕망과 왜곡된 ‘여성상’의 노골적인 민낯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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