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erkat Jun 10. 2019

여성도 통치자가 될 수 있다

플라톤, 여성 철인왕(Philosopher-Queen)의 가능성을 말하다

이른 새벽에 비가 내려, 물안개가 피어있던 날이었네. 늘 그렇듯 나는 거대한 케라미코스(Kerameikos) 성문을 지나 아카데미아(Akadēmeia)로 향하고 있었네. 아카데미아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그 앞을 서성이며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 자가 보이더군. 바로 젊은 아리스토텔레스였네.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를 보고, 급하게 다가왔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선생님, 아테네에서 오시는 길이십니까? 조금 늦으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플라톤: 자네가 나를 기다렸다고? 무슨 일인가,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의 <국가>를 읽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학당에 들어가시기 전에 제 고민을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플라톤: 그건 자네가 무슨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겠네.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에게 올바름(정의; 正義; dikaiosynē)은 무엇입니까? 제가 이해하기로는, 선생님은 ‘각자가 제 할 일을 하는 것’을 올바름으로 여기신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플라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찌 맞다, 틀리다고 확실히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내가 써놓은 <국가>라는 책에 한해서 본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네.

아리스토텔레스: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생님의 책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각 사람의 기능과 역할이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어찌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게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까? 그리고 여성이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요? 이게 정녕 선생님의 생각이 맞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눈빛이 지적 탐구를 위해 이글이글거렸네. 그리고 등 뒤에 왠지 모를 차가운 분위기가 들었고. 학당 앞에 서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렇게 말했네.  

플라톤: 음, 질문을 들어보니 여기서 대답할 게 아닌 거 같구먼. 아리스토텔레스, 학당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세.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군. 들어가서 함께 지적인 공동 탐구를 떠나보자고.




위 대화문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을 설명하기 위해 세운 가상적인 상황입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 철학, 정치학, 형이상학, 예술론, 자연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저작들을 남겼습니다. 여기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에 초점을 맞춰보고자 합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제지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플라톤은 약 40세(기원전 385년)의 나이에 고대 그리스 아테네 서북쪽으로 약 1.5km 남짓한 거리에 아카데미아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17세(기원전 367년)에 이 학원에 입문하여 플라톤이 사망하기까지 향후 20년간 이곳에 머무르며 학문을 공부했습니다.


플라톤의 초중기 저작인 《국가》에서 남성과 여성의 평등한 교육을 주장하는 장면을 본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생각이었을까요?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주로 플라톤은 “여성의 동지이자 여성주의의 선구자”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의 적이자 성차별주의자, 여성 혐오주의자, 남성우월주의자 또는 그들의 대변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글을 전개하기 전에 양해를 부탁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을 나름대로 설명하고자 하는 글입니다. 아직까지도 여러 해석이 나오는 두 철학자이기 때문에, 제 글이 성급한 설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혹여 두 철학자의 여성관 이해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부족하지만 글을 써봅니다.


사적 영역 안에 갇힌 여성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을 살펴보려면, 당시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여성의 지위를 알아야만 합니다. 고대 공동체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자들은 우선적으로 재생산을 위한 존재로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여성의 재생산 능력은 여성으로 하여금 가정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공동체는 이를 공동체를 위한 여성의 정치적 의무라고 보았습니다. 여성은 가정 혹은 사적 영역 안에서만 존재하게 되고, 정치 혹은 공적 영역의 일에서는 배제되었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법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제도적으로 더욱 공고화되었습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브라운(Wendy L. Brown)은 “정치는 그 어떤 활동보다도 남성적 정체성으로 태어났다. 정치는 그 어떤 활동보다도 남성적이었다”라고 지적합니다. 고대 아테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고대 아테네에서 이뤄진 민주주의는 남성들만의 잔치였으며,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여성들은 정치, 사회, 법적, 문화적으로 철저히 소외되고 무시되었습니다. 정치철학자 줄리아 애너스는 당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여성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데, 여성의 삶이 남성을 위한 일종의 도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플라톤 시대에 아테네 여성들은 억눌리고 무기력한 삶을 살았다. 그들은 법적인 인격체들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여자 상속인은 가족의 재산을 보존하기 위해 그녀와 결혼하리라 기대되는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에게 소유물을 넘겨줬다. 상류계층의 여성들도 집안의 별채에 머물러야 했고, (심지어 물건 구입도 남자들이 했으며) 축제 때를 제외하고는 전혀 외출하지 못했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이나 남편 외에 다른 남자들을 만나지 못했다. 또한 그들은 남성들의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낭만적인 삶과 실질적으로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 심지어 여성들은 남성들의 우선적인 성적 대상도 아니었다. 즉, 우리가 남성의 ‘애정생활’과 ‘성생활’이라 생각하는 것은 그가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삶을 공유할 수 있던 어린 소년들에게 집중되었던 반면에, 실질적으로 자기 아내와는 어떤 관심사도 공유하지 않았다.


기원전 403년, 아테네를 혼란으로 몰고 간 30인 과두 정권이 민주파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이후 정권의 주도자들에 의해 한바탕 정치적 보복이 진행되는데, 뜻밖에도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고발을 받게 됩니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게 됩니다. 당시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28세의 플라톤은 홀연히 사라진 후, 약 40세의 나이로 다시 아테네로 돌아옵니다. 플라톤은 42세 무렵 그의 학문 활동의 본거지인 아카데미아 학당을 세우고 학문 연구에 전념합니다. 플라톤은 기원전 380년대에서 370년대 사이에 플라톤 철학의 중심을 이루는 《국가》를 저술합니다. 플라톤은 《국가》를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플라톤의 여성관을 이해하기 이전에, 플라톤이 말한 정의관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플라톤(Πλάτων, Plátōn, Plato; 기원전 428/ 427년 ~ 기원전 348/347년)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국가》는 소크라테스가 피레우스 항구로 ‘내려간 것’으로 첫 문장이 시작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정의에 대한 논의의 출발이 현실세계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제 ‘현실’로 내려온 ‘철학자’는 여러 난관을 거치면서 이상 국가의 본(paradeigma)을 탐구합니다. 플라톤은《국가》전체에 걸쳐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합니다. 여기서는 《국가》 제1권에서부터 논의되는 플라톤의 정의관을 차분히 따라가면서, 그가 남녀평등을 말한 《국가》 제5권까지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플라톤은 《국가》제1권에서 케팔로스(Cephalus), 폴레마르코스(Polemarchus), 트라시마코스(Tharasymachus)의 정의관을 논박하고 자신의 정의관을 설파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일행들과 함께 피레우스 항구에서 열린 밴디스 여신의 축제를 보고 돌아가던 길에 폴레마르코스의 초대를 받아 그의 아버지 케팔로스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에게 노년의 삶이 어떤지 질문을 받은 케팔로스는 노령(나이)이 문제가 아니라 생활 방식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케팔로스가 노년을 수월하게 견뎌내는 것이 재산을 많이 가졌기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많은 재산을 가짐으로써 덕을 본 것 중에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인지 묻는다. 케팔로스는 재산의 소유가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고, 또는 신께 제물(祭物)을 빚지거나 남한테 재물(財物)을 빚 진채로 저승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큰 기여를 한다고 말하면서, 올바름(정의, 正義; dikaiosynē)이란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건 정의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케팔로스는 이제 제사를 지내러 가야 한다며, 정의에 관한 논쟁을 아들 폴레마르코스에게 인계합니다. 케팔로스의 주장을 이어받은 폴레마르코스는 시인 시모니데스(Simōnidēs)를 인용하면서 다시 한번 정의란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반문한다.

                          

친구한테서 무기를 맡았다가, 나중에 그 친구가 미친 상태로 와서 그것을 돌려주기를 요구한다면, 그런 걸 돌려주어서도 안 되거니와, 그런 걸 되돌려 주는 사람이 그리고 더 나아가 그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진실을 죄다 말해 주려고 드는 사람이 올바른 것은 결코 아니라고 누구나 말할 것이라는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시모니데스가 말한 정의의 의도는 단순히 받은 것을 갚아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갚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폴레마르코스는 소크라테스의 의견을 받아 ‘친구에게는 이득을 주고, 적에게는 손해를 주는 것’이 정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또다시 폴레마르코스에게 “친구들이라 함은 좋은(선량한) 사람들 인걸로 생각(판단)되는 이들인지, 실제로 좋은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이 선량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잘못 판단하게 될 경우, 좋은 사람들은 적이 되고, 나쁜 사람들이 친구가 됩니다. 폴레마르코스는 잘못을 인정하면서 실제로 좋은 사람을 친구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폴레마르코스는 실제로 좋은 친구는 잘 되게 해 주되 실제로 나쁜 적은 해롭도록 해주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든 해롭게 하는 것이 올바른 사람이 할 짓인가? 사람이 해를 입으면, ‘인간적 훌륭함’(덕: anthrōpeia aretē)이 나빠지게 됩니다. 올바른 사람이 올바름에 의해 사람들을 올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사람이 ‘훌륭함’(덕: aretē)으로 사람들을 나쁜 사람들로 만들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폴레마르코스가 정의라고 주장한 ‘친구들한테는 이득을 주고, 적들에게는 손해를 주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마무리 짓습니다.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이 올바르다고 누군가가 주장하면서, 이 말로써 올바른 사람한테서 적들로서는 해를 입되 친구들로서는 이로움을 입어야 된다는 걸 뜻한다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결코 현명한 이가 아닐 것이오. 그 사람은 진실을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오. 누구에게 해를 입힌다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명백해졌으니 말씀이오.


소크라테스와 폴레마르코스의 정의에 관한 논의를 듣고 있던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가 논의에 끼어듭니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더 강한 자의 편익’이라고 주장합니다. 트라시마코스는 각 나라의 정치 체제를 예를 들어 그의 정의관을 설명합니다.

                        

적어도 법률(nomoi)을 제정함에 있어서 각 정권(archē)은 자기의 편익을 목적으로 삼고서 합니다. 민주 정체(dēmokratia)는 민주적인 법률을, 참주 정체(tyrannis)는 참주 체제의 법률을,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정치 체제들도 다 이런 식으로 법률을 제정합니다. 일단 법 제정을 마친 다음에는 이를, 즉 자기들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다스림을 받는 자들에게 올바른 것으로서 공표하고서는, 이를 위반하는 자를 범법자 및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른 자로서 처벌하죠. … 모든 나라에 있어서 동일한 것이, 즉 수립된 정권의 편익이 올바른 것이지요. 확실히 이 정권이 힘을 행사(지배)하기에, 바르게 추론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디에서나 올바른 것은 동일한 것으로, 즉 더 강한 자의 편익으로 귀결합니다.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들은 전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법률을 제정할 때 옳게 제정된 법률과 옳지 못하게 제정된 법률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옳지 못하게 제정된 법률은 더 강한 자의 편익이 못 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트라시마코스는 주장을 바꿔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더 강한 자로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적어도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통치자도 마찬가지로 실수를 하지 않으며, 자신을 위한 최선의 법률을 제정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를 반박하기 위해 올바른 의사와 선장의 예를 듭니다. 올바른 의사는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며, 올바른 선장은 선원들의 통솔자입니다. 따라서 의사의 기술, 즉 의술은 의사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몸에 편익이 되는 것입니다. 선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장이 가진 항해술은 선원들에게 편익이 되는 기술입니다. 결국 어떤 전문적 지식도 더 강한 자의 편익을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더 약한 자이며 제 관리를 받는 자의 편익을 생각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케팔로스, 폴레마르코스, 트라시마코스의 정의관을 논박하는 데 성공합니다.                         


다른 어떤 통솔을 맡은 사람이든, 그가 통솔자인 한은,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통솔을 받는 쪽 그리고 자신이 일해 주게 되는 쪽에 편익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오. 또한 그가 말하는 모든 것도, 그가 행하는 모든 것도 그쪽을 염두에 두고서 그쪽에 편익이 되고 적절한 것을 염두에 두고서 말하고 행하오.


각자가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정의이다.


이어서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정의에 관한 논의를 이어갑니다. 먼저 《국가》 제4권에서 소크라테스는 나라(polis) 전체가 갖고 있는 올바름 혹은 정의에 대해 알아봅니다. 소크라테스는 완벽하게 훌륭한 국가는 지혜(sophia), 용기(andreia), 절제(sōphrosynē), 정의(正義; dikaiosynē)가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여기서 ‘정의’는 ‘각자가 제 일을 하는 것’(to ta hautou prattein)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각자가 저 마다 제 일을 할 때의 ‘자신에게 맞는 자신의 일을 함’(제 할 일을 함: oikeiopragia)은 올바른 상태로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나라에 사는 사람이 각자 제 일을 하지 않고 참견(polypragmosynē)이나 상호 교환(기능의 바꿈: metabolē)하는 것을 나라에 대한 최대의 해악(blabē)이며 악행(잘못함: kakourgia), ‘올바르지 못함’(올바르지 못한 상태, adikia)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지혜, 용기, 절제, 정의가 바로 플라톤의 4주덕입니다. 4주덕 중에 플라톤이 좀 더 강조하는 덕목이 바로 ‘정의’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로운 나라는 그 안에 있는 세 부류가 저마다 ‘제 할 일을 함’에 의해서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개인에 있어서 정의가 무엇인지 고찰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에게는 혼이 있으며, 혼에는 나라와 마찬가지로 세 부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혼은 헤아리는(추론적, 이성적: logistikon) 부분과 헤아릴 줄 모르는 부분(비이성적: alogiston), 욕구적인(epithymētikon)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올바른 나라가 갖고 있는 세 부류들, 즉, 지혜, 용기, 절제를 자신의 혼 안에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의’의 개념 자체의 관점에서는 올바른 사람은 올바른 나라와 아무런 차이도 없고, 닮은 것이라 전제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 올바르게 되는 것도 나라가 올바르게 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 말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따르면, 나라가 올바르게 됐던 것은 그 안에 있는 세 부류가 저마다 ‘제 일을 함’(to hautou prattein)에 의해서였습니다. 결국 정의란 자기 안에 있는 각각의 것이 남의 일들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스스로 자신을 지배하며 통솔하고 화목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조화시켜 완전히 하나인 절제 있고 조화된 사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플라톤의 정의관을 살펴봤습니다. 플라톤의 정의관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각자가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훌륭하고 정의로운 국가는 여러 부류의 시민들이 ‘성향에 따라 제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플라톤이 보았을 때, 당시 고대 아테네는 각 계급과 영혼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사회였습니다. 플라톤은 《국가》를 통해 이상국가, 정의로운 국가의 본(paradeigma)을 구상합니다. 그리고 정의로운 국가의 수립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말하는 ‘세 차례의 파도’를 넘어야만 이룰 수 있습니다.


이상국가를 향한 '세 차례의 파도'


첫 번째 파도는 남녀평등, 두 번째 파도는 처자식 및 재산의 공유, 세 번째 파도는 철인왕의 통치입니다. 첫 번째 파도와 두 번째 파도를 넘어 정의로운 국가를 실현시키는 것은 바로 철인왕(哲人王; Philosopher-king)의 통치를 통해 가능합니다. 철인왕이란 철학과 정치권력이 합쳐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철학자가 통치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철학자란 누구일까요?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이’(ho philosophos)이며, ‘진리’(alētheia)를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철학자는 누가 될 수 있을까요? 플라톤에 따르면, 그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플라톤은 각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성분(성향)ㅡ금의 성분, 은의 성분, 동의 성분ㅡ이 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이 나라에 있는 여러분들은 실은 모두가 형제들입니다. 그러나 신은 여러분을 만들면서, 여러분 중에서도 능히 다스릴 수 있는 이들에겐 탄생 시에 황금을 섞었는데, 이들이 가장 존경받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반면에 보조자들에겐 은을 섞었습니다. 하지만 농부들이나 다른 장인들에게는 쇠와 청동을 섞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모두가 동족이기에, 대개는 여러분 자신들을 닮은 자손들을 낳지만, 때로는 황금의 자손에서 은의 자손이, 그리고 은의 자손에서 황금의 자손이,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자손이 이처럼 서로의 자손에서 탄생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치자들에게 신은 무엇보다도 첫째로 지시하기를, 통치자들은 그들의 자손들의 혼에 그것들 중의 무슨 성분이 혼합되어 있는지부터 지켜보는 것에 있어서 훌륭한 수호자가 될 것이며, 또한 무엇보다도 이를 예의 주시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그들의 자손이 청동 성분이나 쇠 성분이 혼합된 상태로 태어나면, 어떤 식으로도 결코 동정하지 말고, 그 성향에 적합한 지위를 주어서 장인들이나 농부들 사이로 밀어 넣을 것이로되, 반대로 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황금이나 은의 성분이 혼합된 상태로 태어난다면, 그런 사람을 예우하여, 수호의 지위나 보조의 지위로 상승시킬 것입니다. 이는 쇠나 청동의 성분을 지닌 수호자가 나라를 지키게 될 경우에는, 나라가 멸망하리라는 신탁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에는 성(性)의 구분이 없다


통치자는 금의 성분, 수호자는 은의 성분, 장인은 동의 성분을 타고났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여성이 금의 성향을 타고 태어났다면 어떻게 될까요? 플라톤은 만약 여성이 금의 성향, 즉 통치자 혹은 철학자, 수호자의 자질을 타고났다면, 여성도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성 철인왕(Philosopher-Queen)’이 가능한 것입니다. 영혼과 성향에는 성(性)의 구분이 없습니다. 플라톤은 <국가> 제5권에서 글라우콘과의 대화를 통해 여성을 남성과 같은 목적에 이용하고자 한다면, 똑같은 교육이 베풀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감시견(監視犬)들의 암컷들은 수컷들이 지키는 것들과 똑같은 것들을 지켜야 하고, 사냥도 함께 하며, 그 밖의 것들도 공동으로 해야만 한다고 우리는 생각하는가? 아니면 암컷들은 강아지들의 출산과 양육 탓으로 그런 일들을 할 수 없는 것들로서 집 안에만 머물게 하는 한편, 일을 하고 양 떼에 대한 모든 보살핌을 떠맡는 것은 수컷들이어야만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가?

모든 것은 공동으로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여성은 한결 힘이 약하나, 남성은 한결 힘이 센 것들로 대하는 것만 제외하고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자네가 어떤 동물이든 같은 양육과 교육을 받게 하지 않는다면, 같은 목적에 이용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자들을 남자들과 같은 목적에 이용코자 한다면, 여자들에게도 같은 것을 가르쳐야만 하네.


플라톤은 '최초의 여성주의자'인가?


여성에게도 통치자가 될 수 있는 성향과 자질이 있다면, 남성과 똑같은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은 당시 그리스 여성의 지위를 생각한다면 획기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이렇게 플라톤은 《국가》에서 여성 철인왕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플라톤을 여성주의자로 규정한 대표적인 철학자인 블라스토스(Vlastos)는 <플라톤은 여성주의자였는가(Was Plato a Feminist)?>라는 논문에서 여성주의를 “성별 때문에 인권의 평등이 거부되거나 제한되지 않아야 한다”는 이념으로 정의한다면, 플라톤을 ‘최초의 여성주의자’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영혼에는 성(性)의 구분이 없고,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그리고 나라를 이끄는 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마치 당시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플라톤을 '최초의 여성주의자'라고 선뜻 부를 수 있을까요? 과연 플라톤 여성관의 한계는 없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여성을 지워 버린 칸트 철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