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디톡스 (Dopamine Detox)
지지부진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오늘은 집에 가서 꼭 해야 할 일을 하겠노라고 다짐했지만, 막상 집에 와서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잡고 있기 일쑤였다. 머릿속에선 할 일을 하라고 외쳤지만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게으름 탓에 몸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릴없이 인터넷의 망망대해를 떠돌다 우연히 ‘도파민 디톡스 (Dopamine Detox)’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을 보게 되었다. 영상을 본 뒤 며칠간 ‘도파민 디톡스’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맴돌았고 별 기대 없이 시도해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파민 디톡스’는 꽤 효과적이었다. 하릴없이 보내는 시간이 절반 이상 줄었고 다시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핸드폰 대신 책을 집어 들었고 여러 나쁜 습관들을 하나씩 좋은 습관으로 대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정녕 이렇게 쉬운 것이었단 말인가? 물론 장기적 효과를 장담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적어도 머릿속에서 아무리 외쳐도 말을 듣지 않던 몸이 움직였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꽤 놀랄만한 결과였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점은 ‘도파민 디톡스’가 사실 전혀 새롭지 않은 뻔한 행동이라는 점이었다. ‘도파민 디톡스’란 그저 하루 이틀 정도 자신이 고치고 싶은 행동 (TV, SNS, 야식 등)을 일절 하지 않는 이른바 ‘도파민 단식 (Dopamine Fasting)’ 기간을 갖는 것이다.
이 허무하리만큼 단순한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물론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경험과 생각이므로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담배, 술과 같은 강한 중독을 하루 이틀의 도파민 단식으로 끊어낼 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릴없이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하루를 조금 더 생산적으로 보내고자 한다면 ‘도파민 디톡스’는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미심쩍다면 내가 마지막으로 쓴 글의 날짜를 확인해 보기 바란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내가 한없이 무거웠던 몸을 비로소 일으켜 세웠다는 증거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미 ‘도파민’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게임에서 이겼을 때, 술을 마실 때, 돈을 벌었을 때, 승진했을 때, 모든 종류의 즐거운 경험에서 뇌는 도파민을 분비하고 그 도파민이 우리에게 쾌감을 준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가 어떤 행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 행동이 도파민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성이 우리 자신을 지배한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도파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책을 읽는 대신 게임을 한다면 이는 게임이 주는 도파민이 독서가 주는 도파민보다 많기 때문이다. 샐러드 대신 햄버거를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으로는 샐러드를 먹고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햄버거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면 이는 햄버거로 받았던 도파민 보상의 기억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항상 더 많은 도파민을 더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길을 찾는다. 담배든 마약이든 모든 중독을 끊어내기 어려운 이유는 그 행동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도파민을 얻을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확실한 행동을 애써 외면한 채 당장 보상을 주지 않는 불확실한 행동을 하는 것은 뇌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게임하지 말고 공부해야 하는데!”라고 말한다면 이는 뇌에 “시급 10만 원짜리 일 대신 5시간에 만 원을 주는 일을 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지금껏 뇌에 잘못된 명령어를 입력하고 있었다.
뇌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는 대신 아예 강제로 도파민을 끊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하루 동안 마음을 굳게 먹고 나에게 도파민을 주던 모든 행동을 차단해 버리자. 그러면 뇌는 적은 양의 도파민이라도 어떻게든 얻으려 할 것이다. 그러면 점차 독서, 운동, 공부와 같은 원래 마음먹었던 일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고 그 일을 할 의지도 조금씩 생겨날 것이다. 밥투정하던 아이가 배가 고파져 슬금슬금 식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원래 계획했던 일을 비로소 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성취감이라는 도파민을 받는다. 이렇게 한 번 도파민을 얻으면 그 행동을 반복하기는 훨씬 쉬워진다. 그리고 이 행동이 주는 보상의 경험이 점차 쌓이며 우리는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름도 거창한 ‘도파민 디톡스’의 정체이다. 그럴듯해 보이는가? 아니면 전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가?
사실 나의 경우는 후자였다. 나는 지금껏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꽤 많은 방법을 시도해봤고 대부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렇게 간단한 원리로 나의 습관이 바뀔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본 후 생각이 바뀌었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비로소 찾은 느낌이었다. ‘도파민 디톡스’가 나에게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한 남자가 담배를 끊으려 한다. 그의 ‘목표’는 ‘담배를 더는 피우지 않는 것’이다. 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간단하다.
‘담배를 피우지 말아야 한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A를 하지 않기 위해선 A를 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괴상한 논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의 목표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늦잠을 자지 않는다’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는다’ 등 우리의 목표는 항상 목표임과 동시에 이 목표를 이루는 방법 자체이다.
“아무 일도 하기 싫다.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위에 언급한 목표들이 실패하기 쉬운 이유는 이 장난스러운 말처럼 말이 돌고 돌뿐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점을 긍정적인 쪽으로 돌려도 마찬가지다. ‘일찍 일어난다.’ ‘몸에 좋은 식사를 한다.’와 같은 목표 역시 유일한 방법은 그저 행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방법이 목표이고 원인이 결과인 목표는 특별한 동기가 없이는 달성하기 매우 힘들다. 목표가 본질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담배 얘기로 돌아가 보자. 흡연의 본질은 사실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아닌 니코틴이 주는 도파민에 있다. 우리는 보통 흡연이라는 행동을 흡연의 욕구로 인한 결과로 생각하지만 사실 결과는 도파민의 분비이며 흡연은 이를 위한 수단이다.
도파민 디톡스가 효과적인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파민 디톡스는 우리가 행동을 결과가 아닌 수단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작은 관점의 차이는 생각보다 큰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와 같은 욕구를 “내 뇌가 도파민을 원한다”라는 생각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수단으로써의 행동을 자제하기란 훨씬 수월해진다. 또한 모든 안 좋은 습관의 원인과 본질을 ‘도파민’이라는 하나의 호르몬으로 일원화하게 되면 여러 안 좋은 습관을 동시에 자제하기가 쉬워지고, 생각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생활패턴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행동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본질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도파민 디톡스가 효과적인 첫 이유이다.
도파민 디톡스가 효과적인 두 번째 이유는 도파민의 관점에서는 우리가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독서와 게임 중 독서를 ‘더 바람직한 일’로, 게임을 ‘덜 바람직한 일’로 나눈다. 하지만 뇌에서는 그저 도파민을 ‘덜 주는 일’과 ‘더 주는 일’ 일뿐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행동의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우리는 항상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 뒤 후회하고 자책하는 자신을 맞닥뜨린다. 하지만 이런 후회의 감정이 우리의 행동을 바꿨던 적이 얼마나 될까?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후회의 감정은 도파민에 굴복하게 되어있다. 이런 끝없는 후회와 그로 인한 죄책감은 결국 자기혐오로 이어지고 그 자기혐오는 무기력으로, 무기력은 다시 시간 낭비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반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배제하면 우리는 이와 연관된 감정적 연결고리 역시 끊어낼 수 있다. 그리고 나쁜 습관에 대해 “네 의지가 부족하거나 못나서가 아니야!” “그저 도파민의 작용일 뿐이야”라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내가 ‘도파민 디톡스’로 행동을 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행동의 본질을 파악하고 이와 연관된 후회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파민 디톡스는 도파민 자체를 끊어내는 것에 집중할 뿐 내가 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행동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내가 해야 할 행동의 중요성을 잠시 내려놓고 차분하게 고요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점차 하려던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한 즐거움도 느끼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도파민 디톡스를 시도하며 경험한 것들이다.
나의 도파민 디톡스 실험이 장기적으로 나의 생활 습관을 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라는 자아비판이 내 삶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은 점은 ‘도파민 디톡스’가 나에게 가져다준 큰 교훈이었다.
결국 행동의 본질은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에 있다. 우리의 일차적인 목표가 안 좋은 습관이 주는 도파민을 끊어내는 것이라면 그다음 목표는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행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정의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운동을 열심히 한다.’ 대신 ‘식스팩을 만든다.’를 목표로 세워야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 대신 ‘성적을 10점 올린다.’를 목표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지금껏 우리의 개인적 성장에 발목을 잡았던 것은 ‘못난 우리 자신’이 아닌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었다. 우리는 ‘도파민’에 진 것이지 우리 자신에게 진 게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누군지도 모르는 적과 싸우며 패배하고 자신을 탓해온 것이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제 적이 누구인지 알았으니 우리에겐 이기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