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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Mar 25. 2022

엄마

[아주 오래된 Movie Review]

엄마와 함께 영화 ‘나의 어머니(Mia Madre)’ 관람 

88 올림픽 할 즈음이었나?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즈음인 것으로 어렴풋하게 기억한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계셨고, 흐느낌에 어깨를 들썩거리며 외할머니와의 이른 이별을 아파했다. 그땐 난 너무 어렸고, 아주 어릴 때 외가가 모두 이민을 가셨기 때문에 외할머니의 부재가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아 그 슬픔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의 울음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아릿한 정적은 두렵고 슬펐다.


며칠 전 친한 친구와 식사를 했는데, 그 친구는 친할머니 상을 당한 직후여서인지, 그녀의 부모님이 그들의 부모와 이별을 할 시기가 왔듯 우리도 언젠간 부모님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오겠구나에 관해 화제를 꺼냈다. 맞이로서 책임감이 느껴지는 결심과 걱정 등등을 터놓았을 때, 난 막내의 철없음을 드러내듯, “에잇. 요즘은 100세 시대인데 벌써 그런 걱정을 해.”하고 애써 언젠가 닥칠 수 있는 이별을 부정하고 싶었다.


‘나의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한없이 약해진 존재로서의 어머니가 아닌, 비록 육체는 노쇠해졌지만 죽음 직전의 순간까지 인자하고, 우아하며, 변함없이 기대고 싶은 존재로서의 ‘엄마’를 딸의 시점으로 담담히 다룬 부분이 좋았다. 극도로 힘든 순간 ‘엄마 도와줘’를 마음속에서 외칠 수 있는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주는 존재.


극 중 아들은 어머니에게 존칭어를 사용하지만 딸에겐 엄마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아마도 아들에겐 나이 든 어머니는 돌보야 하는 대상이기에 자신이 더 강해야 져야 할 수밖에 없지만, 딸에겐 엄마는 늘 안식처인지 모르겠다.

그러한 유일무이한 존재를 잃어버려야 하는 슬픔. 두려움은 어떤 것일까?


할머니가 손녀에게 얘기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멍청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야.” 때론 머리가 컸다고 부모님을 생각 없이 무시하는 말을 내뱉었던 기억들이 튀어나와 뜨끔뜨끔했다. 세대의 차이, 사고의 차이의 격차가 있을진 모르지만 아직 난 그 ‘연륜’을 갖추지 못한 채 옳고 그름을 지적할 자격이 없을 텐데 말이다. 할머니는 무조건 예쁘고 옳다는 조카 재윤이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부모님에게 받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때때로 아니 자주 잊어버린다.


연극 ‘레드’처럼 우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한 세대에서 또 다른 세대로 넘어가며 홀로서기를 배운다. 그리고 주인공은 더 이상 누군가의 딸이 아닌 자기 자신과 자신의 딸의 어머니의 역할만이 남겨진다. 그렁그렁한 커다란 눈이 클로즈업된 채...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묻는다.

“엄마, 지금 무슨 생각해?”

그녀의 어머니는 온화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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