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베란다 가드닝의 시작
Botanical illustrator만은 아니지만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작업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2008년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외부 전문가가 특별 크리틱을 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 받은 평가 또한 포트폴리오가 한 사람이 그린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같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 아마도 지루함에 난 또 직업을 바꾸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리는 여러 스타일 중 식물을 그리는 일을 종종 의뢰받는다. 그 시간이 반복되고 길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식물의 예쁨에 천천히 물들었을까? 초록색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반려식물이 인기를 끌지만, 생명을 다루는 것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오랫동안 그저 5월이면 양재 꽃시장에 들러 작약을 한 아름 사들고 오는 기쁨이 나의 연례행사일 뿐.
가장 좋아하는 꽃이자 가장 좋아하는 식물은 작약이다. 오랫동안 언젠가 나도 작약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언젠가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면 5월의 봄날 흐드러지게 피는 그 아름다운 꽃을 피워보고 싶고 그 마당을 뛰노는 Coton de Tulear라는 복슬강아지도 키워보고 싶다. 늘 언젠간이란 생각뿐이지만…
작약은 기다림의 꽃이다. 어떤 꽃보다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지만 그 짧은 아름다운 시간을 갖기 위해 늦가을과 겨울, 잎과 줄기를 숨기고 땅 속 깊이 뿌리의 형태로 다시금 그 찬란한 시간을 기다린다. 해마다 묵은 뿌리에서 움이 다시 돋기에 봄이 되면 어여쁜 핑크빛 촉으로 빼꼼히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작약 구근을 심은 첫 해나, 옮겨 심으면 그 해는 꽃을 보기 힘든 예민한 식물이기도 하다. 그 기다림에 꽃을 피운 순간 더 행복할 것 같다.
난 뜨거운 태양의 여름과 혹독한 추위의 겨울을 힘들어함에도 불구하고 사계절이 참 좋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생동의 빛을 얻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작약도 영하의 온도에 노출이 되어야 생장점이 감응하여 꽃을 피운다 한다.
봄의 시작, 3월이다. 마침 연말 카드와 함께 뉴욕에서 날아온 꽃씨들이 서랍에 있었다. 너희들은 누구니? 식물을 기르는 것에 무관심했던 나의 호기심을 움직이게 하는 누군가의 작은 선물을 풀었다. 그리고 작은 씨앗들에게서 봄이란 계절이 나왔다. 작고 보드랍고 제각각인 형태로.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참에 작약도 도전할까? 한정 없이 미루기만 하는 성격에 어느 때도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는 없겠지? 사랑하는 이 계절에 첫 베란다 정원이라 실패할지라도… 덜컥 작약을 주문했다. 평소에는 선택 장애가 전혀 없음에도, Sarah Bernhardt, Bowl of Cream, Angel Cheeks, Sorbet, Raspberry Sundae, Coral Charm 등등 끝없이 아름다운 선택지가 있으니 며칠을 고민을 하다, 처음 보는 원예 도구들을 검색하고 공부하고 사들이기 시작했다. 작약은 가을에 심는 것이 제일 좋다던데 벌써 봄이니 활착 된 것이 실패의 확률을 줄일 것 같아, 이름도 처음 들어 본 Festiva Maxima를 구입했다.
꽃이 찬란하게 피는 기간이 짧으면서 커다란 토양을 필요로 하고 햇볕을 사랑하는 이 식물을 과연 아파트 1층에서 잘 기를 수 있을까? 게다가 분갈이를 좋아하지 않는 식물이라 처음부터 큰 화분이 필요했다. 50cm가 넘는 대형 화분은 흙도 만져 보지 않은 초짜가 엄두도 나지 않아 내재적 타협으로 지름 38cm의 손잡이가 있는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로 주문했다. 그마저도 흙을 가득 채우고 물을 주니 옮기는데 만만치 않은 덩치이다.
화이트 작약만으로는 뭔가 아쉬워 꽃시장에서 자주 샀던 코랄참을 하나 더 주문했다. 세 개의 핑크빛 촉에서 싹이 이미 올라온 예쁜 아이였다. 두 개의 화분도 이미 사이즈가 어마어마해서 엔젤칙스 같은 연핑크빛 작약도 하나 더 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각인된 이름표도 벡터 파일로 제작하여 주문하고, 화분을 꾸며줄 Doiy Design의 panther도 한 마리 들이고, 백호의 재입고가 정해지지 않아, 박정선 작가의 snowball 작업을 올려놓았다.
어쩌다 좌충우돌 서툰 초보 식물 집사의 베란다 가드닝 시작이다!
한 해가 지나 다시 봄이다. 지난 봄 베란다에서 Festiva Maxima는 예쁘게 꽃을 피웠고, Coral Charm도 내년이면 예쁘게 자랄 거라고 했는데 농장에서 같이 온 뿌리파리 싸움에 패했다. 오빠 가족의 반려견, 모찌도 놀러오는데 강한 약을 쓰기도 어렵고, 벌레도 너무 무섭고, 약해진 뿌리를 집 앞에 옮겨 심었다. 스스로 알아서 살아남거라. 기특하게 따뜻한 봄 기운에 coral charm의 새싹이 올라온다. Festiva Maxima도 욕심이 나지만 자취를 감춰서 생사여부를 모르겠다. 하나라도 살아있어서 고마워! 올해도 예쁜 꽃을 피우길!
Spring brings new life to everything around us. Although I'm not experienced with peonies, I successfully grew Festiva Maxima peonies indoors last May. A flower seller suggested Coral Charm peonies would bloom beautifully this year, but I couldn't eliminate harmful insects like fungus gnats without pesticides because of my brother's pet. So, I decided to replant them in the public garden in front of my home. Now that spring has arrived, Coral Charm sprang up while Festiva Maxima still remains dormant. I hope to see both peonies bloom beautifully again this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