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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Jun 09. 2021

아름다웠던 그의 식물 팔레트

 ‘다섯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을 보고

한 도시를 여행을 하게 될 때, 좋은 건축 공간에 잠시 머묾을 통해 나도 그 순간만큼은 그곳에 어울리는 자그마한 오브제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그보다 좋아하는 것은 한 도시의 아름다운 공원에 들러 유유자적한 시간을 거니는 것이다.


이십 대의 끝자락의 3년 동안 첼시에서 지냈는데 다행히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하이라인’의 일부가 공개되었다. 대학원으로 인해 낯선 공간에 한정된 체류 기간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내 삶에 있어 가장 긴 여행이라 꼽을 수 있는 기간이지 않을까 싶어 순간순간이 소중 했다. 그 시간 동안 동네 공원이었던 하이라인을 자주 걸으며 조경디자인과 색의 조화에 감탄했던 기억이 세월이 흘러도 참 많이 난다.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었던 팔레트. 피트 아우돌프의 ‘식물 팔레트’의 색감이 충격적으로 아름다웠다. 근처 베이커리에서 레드벨벳 컵케익을 하나 사들고, 벤치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풍경에 매번 가슴 설렜다. 아마도 그 순간 내 옆에 누군가 있다면 바로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마법 같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몇 년 후, 늦가을 여행으로 한번 더 찾았던 하이라인은 수많은 이야기가 더해서 한층 더 풍성하고 편안해 보였다.


이런 풍광을 기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얼마 전 피크닉의 전시, ‘정원 만들기’에서 그의 정원 설계 도면을 보고 흠뻑 빠져, ‘다섯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 /FIVE SEASONS: THE GARDENS OF PIET OUDOLF’를 보기 위해 한번 더 피크닉을 찾았다.


그는 우리가 야생 그대로의 자연에서 보고자 하는 장면을 디자인한다고 했다. 그러나 겉보기엔 날 것 그대로 일 것 같지만 철저한 계획과 끊임없는 관리와 변화하는 자연과 식물의 관계를 복잡한 연산처럼 계산하는 수학자와 같았다.


내가 잠시 바라보는 정원은 한순간일 뿐이다. 빛의 양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고 순환한다. 그래서 그는  꽃 자체보다는 식물이 변화하는 과정을 더 염두하며 디자인했다.


다큐멘터리 내내 그의 생각에 한 번 더 반하고 만다.


“아름다운 걸 잘라내려면 용기가 필요하기도 해요. 여전히 할 말이 많아 보이잖아요. 삶이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죠. 정원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에게는 한평생에 걸쳐 진행될 과정이 정원에서는 한 해 동안 이루어져요. 그런 과정이 사람의 마음속에 어떠한 울림을 주는 것 아닐까요?”


마흔둘. 나의 계절은 이제 늦여름에서 가을 넘어가려나?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나머지 계절을 채워갈 테지만, 자연의 사계절을 여러  겪으며 우리는 배운다.  안의 아름다움을. 첫눈에 아름답지 않은 것에서 조차 아름다움을 찾는 지혜를 배운다.


“Beautiful! only one word.”

그가 자연의 한 풍경을 보고 그저 ‘아름답다’ 한마디면 된다고 했다.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마음에 한가득 담아 저마다의 생각과 작업과 삶으로 재현하면 된다.


그는 자연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언젠가 만나리라 기약하는 일종의 약속”이라고 했다.


그가 “꽃이 지고 난 후에도 아름다울 것”을 생각하는 것처럼, 나의 꽃들이 사그라지는 불씨처럼 시든 후에도 어떻게 아름답게 나이가 들까 생각을 한다. “진짜 좋은 정원은 빛이 안 좋을 때도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다큐를 보며 불이 꺼진 무대에서도 여운이 따뜻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원 디자인이 “마치 현대미술처럼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했는데, 켜켜이 쌓인 그의 시간과 노력과 재능만큼 자연이란 변수와 인간의 한계를 이미 뛰어넘은 예술가가 아닐까?


언젠가 다시 한번 그의 공원을 거닐고 싶은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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