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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플러그 Aug 16. 2022

지치고 힘들 땐 쉬어가자

나의 선택이 가장 최선의 결정이 될 수 있도록,


오전 7시 59분~8시 나방


2021년 6월 8일 출근길, 신호 대기받으며 섰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나방 한 마리가 내 차창에 털썩 주저앉았다. 작은 모기나 하루살이 같은 게 앉으면 유리창을 톡톡 친다. 그럼 대개는 다시 날아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 녀석, 아무리 톡톡 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날아다니는 일에 많이 지쳤구나 싶었다. 그래, 그럼 잠시 쉬어가렴.


오전 8시 8분 나방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바람이 세차게 불어올 테니까 당연히 날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이 녀석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틴다. 여섯 개의 다리, 특히 앞다리 두 개에 힘을 꾹 주고 맞바람을 끝까지 버텨낸다. 머리를 둔 방향을 천천히 바꾸기도 하면서. 더듬이도 몇 번 움직인다. 여섯 발에 어찌나 힘을 주고 버티는지 운전대를 잡은 내 손에도 힘이 꾹 들어간다. 국도를 달리던 때라 시속 80km로 주행해야 했다. 딱 규정속도만큼만 달렸다. 바람에 날려 가버리면 몸을 주체하지 못해 다른 차에 치일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세찬 바람을 맞으며 계속 버티기는 힘들 테니 스스로 날아갈 수 있도록 틈틈이 유리창을 톡톡 두드려줬다. 물론, 빨간 신호등을 만났을 때에. 얼른 날아가렴.


결국, 8시 15분


결국, 이 녀석은 나와 함께 우리 학교 주차장까지 왔다. 그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내며.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여섯 다리에 엄청난 근육이 숨어 있었나 보다. 온 근육의 힘을 다 쥐어짜 내며 그 바람을 버티고 버텨 결국 주차장까지 왔다. 보이는가? 이 녀석이 그 바람에 날려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운전석 정면에서 약간 왼쪽에 털썩 내려앉았던 이 녀석은 15분 사이 차 가장 왼쪽 구석 유리창으로 옮겨갔다. 장하다. 그 바람을 견뎌낸 이 녀석이 정말 대단해 보였고, 생명의 신비란 정말 경이롭다 생각했다.


동시에 미련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빨간 신호등을 만난 자동차가 잠시 쉬는 시간, 세차게 몰아치던 바람이 잠시 그치던 때, 발아래로 진동을 통해 신호를 줄 때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면 좀 더 편할 수 있지 않았을까? 피곤한 날개 잠시 쉬어 가자고 유리창에 앉았는데, 강한 맞바람으로 온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무려 15분을 버텨야 했다. 끝까지 버티는 이 녀석을 보며 이런 마음이 들었다. 지치고 힘들 땐 쉬어가며 재충전해야 한다. 그런데 잘못된 곳에서 쉬다가 재충전은커녕 오히려 더한 육체적 곤비함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 쉬는 것도 제때, 제대로 잘 쉬어야겠네 하는 다짐을 했달까.



더하기.

아쉽게도 퇴근길 사진은 없다. 퇴근하려고 주차장에 왔더니 이 녀석 그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쉬고 있다. 이 녀석은 그 고된 15분을 견디고, 정말로 제대로 된 곳에서 충만한 휴식을 누렸던 것일 수도 있겠다. 8시간 15분 여를 꿀잠을 잤을 테니. 아침 8시 15분에는 알 수 없었으나 오후 4시 30분에는 알게 된 사실. 


순간을 사는 우리는 이것이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 그 순간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야 그것이 현명했던 또는 어리석었던 결정인지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니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결정 내리되 그것이 가장 최선의 결정이 될 수 있도록 지금 이 시간 정성을 다해 살면 되지 않을까. 정성을 다해 견디고, 정성을 다해 지친 몸을 누이고.



퇴근길, 또다시 약 30여 분을 그 세찬 바람을 견디게 하고 싶진 않았다. 유리창 바깥 창을 톡톡 두드리니 이 녀석, 이제야 날갯짓을 하며 날아간다. 뜻하지 않게, 혹은 뜻한 바대로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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